(편집자주) 취재를 하고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간혹 시작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군더더기처럼 보이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마을에서 오래 함께 자라 서로 얼굴을 알고, 또 오래 보고 지낸 땅과 강·생명들을 귀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로 한가지도 빼먹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듭니다. 돈이나 시간 무엇보다 사람과 생명이 귀할 수 있다는 그런 가능성을 발견할 때 그렇습니다. '옥천을 만나다' 코너를 만듭니다. 취재후기처럼 기자 1인칭 시점으로 종종 이같은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4일 이원면 장수건강원에서 촬영한 메기. 길이가 1m30cm에 달했다.

[옥천을 만나다] 4일 금요일 오후 1시30분 이원면 장수건강원, 진짜 1m가 훌쩍 넘는 메기다. 화들짝 놀라 정신이 번쩍했다.

"헐. 진짜 1m30cm네요."

이원면 김대환 이장협의회장이 옆에 와서 '내가 뭐랬어. 진짜라니까.' 말한다. 김대환 회장 옆에는 메기를 발견해 가져왔다는 이기우(87,이원면 두암리)씨가 있었다. 얼른 악수 요청을 했다. 광어나 숭어, 가자미 뭐 이런 건 많이 봤지만 메기를 실물로 만난 건 처음이었는데, 그것도 1m30cm짜리 메기라니.

경위는 이렇다. 4일 오전 9시 조금 넘어서였다. 개천절 쏟아졌던 폭풍이 그치고 햇빛이 쨍하니 이기우씨는 당신 배추밭 좀 둘러볼 심산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있었다. 이원다릿골 계곡 근처를 지나는데 풀숲에 뭔가 커다란 게 펄떡거리고 있었다. 메기였다. 

전날 비가 많이 쏟아져 도랑을 타고 여기 계곡까지 밀려 내려왔다가 물이 갑자기 쑥 빠지니 풀숲에 걸린 거다. 그도 그럴 만한 게 크기가 엄청 나서(나중에 재보니 길이가 1m30cm, 무게가30kg였다) 힘이 아무리 넘친다 해도 물 빠지는 속도에 저도 제 몸을 가누지 못한 것.

밤새 풀숲에 나와 있었는지 이미 꼬리 쪽을 짐승에게 뜯어먹혀 피가 줄줄 나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펄떡펄떡.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 일단 건강원에 가져가야겠다', 푸대에 담으려 했는데 몸통 반밖에 안 들어간다. 간신히 오토바이 뒤에 줄로 묶어 이원 장수건강원으로 갔다. 길종석(60,장수건강원)씨는 건강원 인생 이렇게 큰 메기는 처음 봤다고 화들짝 놀랐고, 전화 받고 온 김대환 회장도, 구경 온 송재복(61,이원면 신흥리)씨도 다 놀랐다. 제보 전화 받고 온 나는 이기우씨와 악수를 나눴고.

"살릴 방법이 있을까? 난 도통 모르겠어."

눈에 걸려 데려오긴 했는데 막상 데려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기우씨는 자못 곤란한 상황이 돼버렸다. 오전에는 군에 연락에 담당자도 한 번 왔다갔는데, 뾰족한 수 없이 돌아갔단다. 약으로 내릴 수밖에 없나? 그러자니 어째 마음이 찝찝하고, 돌려보내자니 상처도 커서 이제는 숨만 쉬고 있는 이것을 어떡해야 할지…

자, 그렇게 금요일 점심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게 된 거다. 백방으로 자문을 구하고 돌고 돌아 내수면연구소 남부지소에 연결했다. 남부지소 관상어사업관리를 일을 하고 있는 신재국씨가 문자메세지로 메기 사진을 받아 보더니 재빨리 전화를 줬다.

"이 정도 상처면 자연에서 회복 가능할 거 같은데요. 보통 큰 강에서 살던 어류는 전시관이나 사람이 관리하는 곳에 가면 비좁은 걸 못 견디고 폐사할 가능성이 크거든요. 상처 난 건 더욱 더요. 지금 바로 돌려보낼 수 있어요?"

"갑시다."

구원투수가 왔다면 꼭 이런 것일 테다. 송재복씨한테 1톤 포터트럭이 있었다. 이기우씨와 김대환 회장이 메기를 첨벙첨벙 빨간 고무 대야에 넣어 올렸다.

건강원 메기는 이원면 칠방리 강으로 잘 돌아갔다. 이기우씨와 김대환 회장이 끙끙 강으로 고무대야를 들고 들어가 메기를 슬며시 물에 흘려 내보냈다. 대야에서 가만히 숨만 쉬고 있던 게 물 속에 들어가니 느리게 유영했다. 깊은 강가로 미끄러지다 다시 강변 언저리 이기우씨 옆으로 나왔는데

"왜 일로 와. 절로 가." (이기우씨)

"인사하러 왔나 벼. 건강해야 할 텐데. 이렇게 살았으니 오래 살 거여." (김대환 회장)

이기우씨가 다시 가만가만 손으로 쓸어 깊은 강 수면으로 몰아냈다.

긴 한낮이었다. 송재복씨 트럭을 타고 돌아가다 문득 이제 다들 어디로 가시냐 물었다. 이기우씨는 배추밭 갈 힘을 다 뺐다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고, 송재복씨도 집으로, 김대환 회장은 고속철도에서 야간근무를 한다며 어서 가서 이만 자야한다 말했다. 우연히 발견한 메기 한 마리에 저가 무슨 일을 하려 했는지 다 잊고 모두 힘을 쭉 뺐다.

"크기가 꼭 영물같았지. 열심히 해서 살려줬으니 다덜 복 받을 거야." (송재복씨)

어쩐지 다같이 웃고 말았다.

살다 보면 수많은 생명을 만난다. 대부분 사람은 무엇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 오게 됐는지 모르지만, 지역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어디로 가게 되는지까지 잘 안다. 깨끗한 물에서 난 것을 찾고, 어떻게 보관할지 고민하고, 제철 농산물과 곁들여 잘 조리하고, '이걸 먹는 사람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또 어떤 것은 사람에게 갈 게 아니고 제자리로 돌아가 부디 건강하게 자라길 빈다. 

이날 취재는 후자였다.

메기를 처음 건강원으로 데려왔을 당시 모습. (사진제공=김대환씨)
메기를 처음 건강원으로 데려왔을 당시 모습. 이때까지만 해도 힘이 넘쳐 펄떡거리고 있었단다. (사진제공=김대환씨)
오후에 건강원에 직접 찾아가 촬영한 메기. 살아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히 숨만 쉬고 있었다.
송재복씨 트럭에 메기를 태우고 칠방리 계곡으로 갔다. 오른쪽이 이원 이장협의회 김대환 회장, 왼쪽이 이기우씨. 

 

송재복씨까지 함께 힘을 합쳐 칠방리 계곡으로 향하는 장면.
죽은 줄 알았던 메기가 슬며시 유영하기 시작한다.
깊은 강가로 들어가다 다시 이기우씨에게 돌아오는 메기.
메기 등 언저리를 잘 쓸어 다시 강 깊숙히 돌려보냈다.
왼쪽부터 이기우씨, 김대환 회장, 송재복씨, 길종석씨. 네 사람은 각각 이원초등학교 30회·52회·52회·53회 졸업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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