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파스화' 선구자 권영숙 화백
'미술의 대중화가 나의 사명'
혼자서도 배울 수 있는 교본 펴내

부드럽다. 첫 느낌은 그랬다. 말하는 목소리, 말투, 흰 회벽에 걸린 그림들, 한편에 가득한 낡은 책들... 이야기를 하면서는 그 속의 강하고 단단한 무언가를 마주했다. 아, 그 부드러움은 여기에서부터 나왔던 거구나. 튼튼하게 다져진 그것에 무어라고 이름을 붙이자면, ‘사명’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벽 마다마다에 걸린 그림들에서 그 사명을 엿볼 수 있다. 모두 크레파스로 그린 것이다. 크레파스라고 하니 흔히들 초등학교에서 미술시간에 사용하는 그것을 생각할 것이다. 이제 그 크레파스가 아니라고 말할 것 같지? 그 크레파스 맞다.

권영숙 화백의 자택 이곳저곳 빼곡히 크레파스화가 걸려있다.
권영숙 화백의 자택 이곳저곳 크레파스화가 걸려있다.
군북면 비야코코 갤러리에 전시된 권영숙 화백의 그림이다.
군북면 비야코코 갤러리에 전시된 권영숙 화백의 그림이다.

 권영숙(61, 옥천읍 금구리) 화백은 옥천에 익히 알려진 서양화가다. 이렇게 말하니까 참 평범하다. 사실은 이 사람의 모든 점이 그런 느낌을 준다. 어떤 느낌이냐면, ‘겉으로는’ 평범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속으로 들어가면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권영숙 화백이 사용하는 재료는 크레파스다. 그것도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림이 있는 55색 크레파스. 문구점에서 파는 그거 맞다.

권영숙 화백이 가지고 다니는 크레파스다. 아이들 쓰는 그것, 맞다.
권영숙 화백이 가지고 다니는 크레파스다. 아이들 쓰는 그것, 맞다.

 이제 우리는 또다른 평범함을 마주했다. 애들 쓰는 그 크레파스? 그걸로 뭘 한다는 거야? 뭘 한다.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유채의 느낌이 난다.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 수채의 느낌이 나기도 하고, 종이의 질감이나 긁개의 사용에 따라서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신기한 일이다.

권영숙 화백의 크레파스화다. 수채화 느낌이 난다.
권영숙 화백의 크레파스화다. 수채화 느낌이 난다.
수채화에 사용하는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원래는 수채화에 사용하는 종이다. 그 특유의 질감이 느껴지도록 그렸다.

 모두 크레파스화의 선구자인 권영숙 화백이 스스로 개발해낸 기법들이다. 재료에 접근하기가 쉬울 뿐이지, 그것으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그렇게 여기에까지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다. 이유가 궁금했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먼저 말을 꺼냈다. “TV도 많이 나가보고, 인터뷰도 많이 해보고, 휴먼다큐도 찍어봤지만 늘 물어보는 게 같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냐는 게 가장 단골질문이에요. 그거 물어보려고 했죠?”

권영숙 화백의 자택 이곳저곳에 크레파스화가 걸려있다.
권영숙 화백의 자택 이곳저곳에 크레파스화가 걸려있다.
수강생 각각의 크레파스가 가득 쌓여 있다. 모두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수강생 각각의 크레파스가 가득 쌓여 있다. 모두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크레파스는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재료 중 하나다. 들고 문지르면 되니까 시작하기도 쉽다. 간단히 말하면 ‘접근이 쉽다.’ “제가 원래 유화를 했는데, 유화는 어렵고 돈도 많이 들어서 취미로 하기가 힘들어요. 그림에 대한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물감만 찍어 바른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재료값도 비싸고, 정해진 규격도 있고요. 3개월을 넘기는 사람이 드물죠.”

권영숙 화백의 새 크레파스화 교본인 '크레파스화로 행복 찾기'의 표지 뒷면 문구이다.
권영숙 화백의 새 크레파스화 교본인 '크레파스화로 행복 찾기'. 쉬운 내용부터 시작한다.
권영숙 화백이 그린 그림이 들어있는 스케치북. 보고도 믿기 힘들었지만 진짜 저거 쓰신다.
권영숙 화백이 그린 그림이 들어있는 스케치북들. 보고도 믿기 힘들었지만 진짜 저기에 그린다. 그리고 그 안은 더 놀랍다.

 유화는 공간도 체력도 많이 필요하다. 그러니 아무래도 모두가 함께 즐기기는 힘들다. 그에 비해 크레파스화는 쉽고 편안하다. 책상 위에 크레파스 한 통만 놓으면 남녀노소 이야기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래서 권영숙 화백의 집에는 할머니와 손주, 아빠와 딸, 부부,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권영숙 화백이 270여 개 그린 바로 그 그림이다. 빈 공간에 스스로를 다독이는 문구가 가득하다.
권영숙 화백이 270여 개 그린 바로 그 그림이다. 빈 공간에 스스로를 다독이는 문구가 가득하다.

 “이제 팔거나 보여주는 것에는 미련이 없어요. 지금도 전시를 하자 치면 1천 평도 채울 수 있지만, 그게 진짜 행복이 아니더라고요.” 집에 걸린 그림들도 다른 사람을 위해 그린 건 아니다. 권영숙 화백 자신이 걸어두고 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사겠다고 나서면 너무 아깝다. 그럴 때는 새로 그려 다시 걸어둔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한 그림을 열 번도 그려요. 그러고 나니까 도전정신이 생기는 거예요.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2년을 꼬박 그려 270개를 그린 그림도 있어요.” 따뜻한 색으로, 차가운 색으로, 같은 그림을 다양하게도 그렸다. 아대를 차고 침을 맞으면서도 계속했다. “저만큼 한 사람이 없잖아요. 제가 처음이고 1인자인데. ‘내 한계가 어디인가’를 알고 싶었어요. 모든 게 다 실험이었죠.”

권영숙 화백의 새 크레파스화 교본이다. 전체 4권 중 3권의 모습.
권영숙 화백의 새 크레파스화 교본이다. 전체 4권 중 3권의 모습.
비야코코 갤러리에서 즉석 1대1 간단 수업이 진행됐다.

 자신의 경지는 이뤘다. 남은 건 하나다. 단지 대중이 미술을 배우고 즐기고 사랑했으면 한다. 그 생각뿐이다. 권영숙 화백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4권짜리 새 교본이 그 말을 대신하는 것 같다. ‘크레파스화로 행복찾기.’ 몇 해 동안의 노력을 전부 쏟아부었다. 전국의 누구라도, 권영숙 화백을 만날 수 없더라도, 혼자서 크레파스화를 배우며 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거 알려줄게. 지금 보고 집에 가서도 알려줘서 같이 해, 알았지?"

 “이게 내 사명인 것 같아요. ‘내가 이 땅에 왜 태어났나’ 하고 생각하면, 유화를 시작한 것도, 신랑을 만난 것도, 생활해온 환경도 다 이걸 위해서 그랬던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수강생 중에 사고로 몸이 불편하게 된 분이 계세요. 처음 만날 때 멀리서부터 횡단보도를 건너오시는데, 갓 태어난 아이를 받아드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저 분을 평생 데려가야겠다. 절망하고 좌절한 사람들을 다시 태어나게 해야겠다. 이걸 위해 내가 이 길을 가는구나.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잖아요. 그렇죠?”

권영숙 화백의 자택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다. 270여 개의 그림 중 몇몇이 보인다.
권영숙 화백의 자택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다. 270여 개의 그림 중 몇몇이 보인다.
권영숙 화백의 스케치북 속 스스로를 다독이는 문구들이 보인다.
권영숙 화백의 스케치북 속 스스로를 다독이는 문구들이 보인다.
권영숙 화백은 주저앉지 않게 스스로를 일으키려 글을 쓰곤 했다.
권영숙 화백은 주저앉지 않게 스스로를 일으키려 글을 쓰곤 했다.
권영숙 화백은 같은 그림을 다른 색채로 여러 점 그렸다.
권영숙 화백은 같은 그림을 다른 색채로 여러 점 그렸다.
비야코코 갤러리에 전시된 권영숙 화백의 그림이다. 군북면의 한 장소를 그렸다. 옥천의 풍경을 많이 그린다고.
비야코코 갤러리에 전시된 권영숙 화백의 그림이다. 군북면의 한 장소를 그렸다. 옥천의 풍경을 많이 그린다고.
즉석 수업에서 나무를 그려 보여줬다.
즉석 수업에서 나무를 그려 보여줬다.
즉석 수업에서 나무를 그려 보여줬다. "봤으니까 집에 가서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밥 아저씨' 같다.
즉석 수업에서 나무를 그려 보여줬다. "봤으니까 집에 가서 할 수 있겠지?" '밥 아저씨'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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