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그때는 그 사람이 남쪽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한 문장이 정남향이었습니다
덕분에 한 시절 잘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봄이 이듬해 봄 만나기를 서른몇차례
많은 시대가 한꺼번에 왔다가 사라졌습니다
오래된 미래는 더 오래가 되었고
온다던 미래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꽃 진 자리에서 하늘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남쪽일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어느 생에게 정남진일 수 있을까요

그때는 여기저기 남쪽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함께 남쪽을 바라보던
착하되 강하고 예민하되 늠름한 벗들이
도처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그랬습니다

남쪽은 저기 여전히 많고 푸르러 드높은데
이 겨울이 봄 여름 가을을 건너뛰어
다음의 긴 겨울을 만나고 있습니다
처음 같은 마지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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