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제 (조숙제 수필집 『바보의 노랫가락』)

  창문을 여니 새소리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침이면 이렇게 다시 존재할 수 있게 해준 모든 인연들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다. 현관의 장미도 하루가 다르게 붉은빛이 선연하다. 눈 비비고 맞이하는 저 현란한 빛의 향연, 돌연 압도된다. 몇 년 전 이사를 오면서 돌로 기둥을 세우고, 번식력 강한 장미와 능소화를 심었다. 자식 기르듯 애지중지 키운 보람이 이제야 결실을 보듯, 동리 초입인 장미 터널을 불 밝힌 오월의 싱그러움이 마냥 즐겁다. 나는 가난하지만 꽃을 좋아한다. 꽃은 희망이요, 순수함이요, 열정이므로 보는 이의 마음을 늘 위안해 주기에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 조그만 정원에 철 따라 꽃이 피고 지게끔 가꾸는 것이 나의 오랜 염원이었다. 그 숙원의 일환으로 현관에 장미 터널을 조성한 것이다.
  내 청춘의 꿈도 꽃답게 피기를 기원했었다. 그러나 가난의 굴레는 온몸을 휘감고 돌아 사정없이 유린했다. 짓밟힌 청춘은 늘 방황했고, 굶주림과 배우지 못한 서러움이 온몸을 기어 다녔다.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데 부모님께 말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수학여행을 못 갑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날 나는 부모님과 함께 발에 나가 일을 했다. 부모님께는 임시방학을 했다고 했다.
  수업료 고지서를 받으면 늘 고민을 해야만 했다. 고지서를 부모님께 드릴 자신이 없었다. 교무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벌을 대신 받았다. 수학 문제를 푸는 데도 돈이 필요했다. 연습용 종이를 살려면 어머니가 고추 팔은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영 말이 나오질 않았다. 연습지 위에 연필로 쓰고 지우고, 연필로 쓰고 나중에 볼펜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개발했다. 궁색한 삶의 여정 속에서도 꽃은 피어났다. 등잔불과 씨름을 하면서 노력한 결과 영어, 수학 점수 만점을 획득했다. 
  양귀비꽃만 꽃은 아니다. 찬 서리 맺힌 들국화 매듭이 굵고 향기가 맵다. 가난으로 불살라 올린 삶의 진솔한 노래는, 잊을 수 없는 이 땅위의 가난한 민초들의 삶의 가락이다. 나는 이 노랫가락을 사랑했기에 청춘을 불살랐고, 거칠지만 후회는 결코 하지 않는다. 음지에서도 얼마든지 뿌리를 내려 숙명처럼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빈곤과 무지와의 싸움은 사람을 짐승처럼 만든다. 그러나 때로는 짐승처럼 일하고 살았기에, 사람답게 사는 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터득했다. 내가 귀하기에 남의 가치도 소중함을 몸소 깨친 진정한 가치의 체험이었다. 무언의 흙에 바치는 땀의 열정에는 거짓이 없다. 우리는 삶이 나를 속일 때 괴로워한다. 괴롭다는 것은 의지의 결핍이다. 희망은 늘 우리들 곁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를 품을 여력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현실이다.
  이순의 나이에 되돌아보니 내 청춘의 꽃밭은 늘 만발해 있었다. 비록 가세는 빈곤해도 화목이라는 밑거름이 있었다. 역경과 고난의 길 앞에서도 꿋꿋하게 소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연유는 당당함이라는 자양이 늘 작은 심장 가에서 용솟음치고 있었기에, 꺾이지 않고 나의 길을 개척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희망은 늘 그렇듯이 용감한 자의 편이다.
짙푸른 산하의 신록이 오월을 수놓고 있다. 장밋빛 정열이 불타는 아름다운 가절이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삶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꽃과 삶이 이음동의어이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희망이기에, 아니 도전하는 자의 기쁨이기에 오늘 내 삶의 거친 광야에서 홀로 서서 희망의 노래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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