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자

붉은 노을 돌아서는 아직은 회색빛 이른 저녁 
하루해는 일을 마치려 어둠을 깔고 있다

그제부터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온 노인은 흐릿한 눈으로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에서 걷은 옷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바로 뒤뜰에 나갔던 며느리는 어둠과 같이 들어와 늦은 저녁을 짓느라 분주하다
복숭아뼈까지 늘어진 치마소리는 늦은 저녁의 미안함을 대신하고 있는 듯 하다

얼마 뒤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기침소리는 1년 내내 시원찮다
벌써 사나흘 전 하늘에서 명단을 받고 대기 중인걸 그는 알았는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전날 손주가 사온 서양냄새가 나서 싫다던 빵을 몸에 저장하고 쿨룩댄다
365일 늘 그렇듯 기침소리에 밥하는 며느리는 재촉의 소리려니 무감각이다
한참동안의 기침소리는 그는 문을 열어 재치더니 마루에 쓰러지며 얼마동안 피를 토해낸다

그렇게 노인은 하늘의 부름을 받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평생을 쭈그렁밤송이처럼 살아온 그의 육체는 자궁에서부터 불량품이었는지
그동안 끈질기게 발버둥 치며 살아온 낡아빠진 육신을 이제는 벗어던지고 
저승 가는 길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갔겠지

까마귀도 이젠 보이질 않고 며느리는 주인 없는 사랑채에서 
노인의 숨결들을 정리하고 있다

살아생전 노인의 기침소리를 들랑날랑 거리던 고무신 끄는 소리
넘어질까 조심조심 더듬대던 지팡이 소리도 다 떠나가고

언제나 편안한 자리를 내주던 사랑채마루
비 맞을까 마루 밑에 깊숙이 숨어있던 나들이 고무신 

넉넉하게 따스함을 주던 마음 착한 햇상도 바닥에 주저앉아
주인 잃은 허전함을 달래고 있다

1978년 10월 5일 그는 하늘에 부름을 받고 
2018년 10월 5일 40주기 할아버지 제삿날 난 그 영정 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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