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시니어기자
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시니어기자

겨울이 되면 초대하지 않아도 설레게 하는 반갑고도 유쾌하지 않은 손님이 온다. 그 손님인 눈이 내리고 있다. 눈이란 참으로 경이롭다. 눈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 그리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기쁨과 사랑, 이별 등등 엮여 매달려 있는 굴비 같다. 손 안에 꼭 움켜지면 눈물이 되고 뭉쳐서 형체를 만들면 한동안 그로 인하여 기쁨이 된다. 앙상한 가지에 소복이 쌓이면 한 장의 묵화가 된다. 그 손님이 북풍을 몰고 춤을 추며 도시도로에 활주하면 교통은 마비가 되는 악동이 된다. 눈이 오지 않으면 겨울 가뭄이 되고 너무 많이 오면 산골 동네는 쌓인 눈에 고립되어 버린다. 자연의 섭리는 무한하다. 

작년 이맘때쯤 익산 촬영 갔다가 정읍에서 옥천으로 돌아오는 눈길에 안개까지 겹쳐 차선이 보이지 않아 역주행을 한 경험이 있다. 그 뒤로 눈과 안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서 눈이 내리면 그날의 기억이 나를 짓누른다.   

부산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혹한 추위 겨울 날씨에도 눈을 만난 적이 없었다. 눈에 대한 동경심은 서울에 유학하면서 경험했다. 새로운 세계였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친구랑 목적지도 없이 마냥 너무 좋아서 깔깔대며 하염없이 걸었다. 하얀 세계가 아름답기만 했던 꿈 많은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칠순을 넘기면서 하얀색의 추억은 묻어버리고 현실의 삶 속에 살아가고 있다.

눈이 쌓여가는 것을 바라보고 쌓여지는 눈의 미끄러움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내리는 눈을 나도 모르게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귀농하여 올해로 3번째 맞는 겨울이다. 귀농 첫 해의 흰 눈이 펼쳐진 전경에 압도당하여 미친 듯이 카메라의 샷을 눌러 행복했었다. 개들도 풀어주어 눈 속을 개구쟁이들처럼 지칠 줄 모르고 뛰어 놀았다. 눈이 쌓인 임도길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빗자루로 쓸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또 쓸어도 힘든 줄 몰랐었다.   

이젠 앞 들판의 풍경이 흰색으로 온통 칠을 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길이 미끄러우면 우선 바깥 출입의 그림이 먼저 그려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귀농귀촌의 겨울이 어렵다는 것을 지금 깨닫고 있다. 

산과 들판에서 휘몰아치는 눈을 헤치고 다녔던 매 순간은 패기와 낭만 사랑 즐거움으로 가득 넘쳤었다. 하얀색의 전경이 아닌 일년 열두달 내내 초록색으로 바꾸어 칠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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