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옥천신문에 실린 내 글을 읽으신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11월 26일 토요일에 답사를 할 예정이니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옥천학연구소’ 소장님이셨다. 특별한 일이 없어 참석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나는 처음 함께하는 터라 조심스럽기도 했다. 

일정은 오전 8시에 옥천에서 청주로 가서 지역과 관련된 강의를 듣고 남당항으로 이동, 점심을 먹은 후 한용운 생가를 답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답사 내용을 두, 세 번에 나누어 정리를 해 보려고 한다. 

처음 도착한 곳은 청주시 옛 도지사 관사였다. 

약간 높은 언덕에 세워져 있어 탁 트인 공간이 시원스럽다.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살 공간을 마련했으니 좋은 곳을 택한 것이라 생각된다. 옛 건물을 새로 수리를 해서 깨끗했다. 일본식으로 ‘다다미’(두툼하게 속을 넣은 돗자리를 깐 방)에 ‘오시이레’(물건을 넣어 둘 수 있는 벽장, 또는 ‘후시마’ 라고도 부른다)는 책을 꽂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바꿔 놓았다. 단지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어 좀 불편했다.

이 곳에서 도종환 전 장관의 강의를 짤막하게 들었다. 내용은 옥천과 관련이 있는 작곡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린이들을 위해 노래와 ‘어린이헌장’을 제정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들이었다. 

유엔이 1924년 정한 어린이 헌장보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것이 일년 더 빨랐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또 ‘엄마 앞에서 짝짜궁…’이라는 어린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이  최시형의 외손자인 옥천출신 정순철이라는 것도 나에게는 새로운 사실이었다. 

관사 옆 건물에서는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다. 

건물이 깨끗해서인지 1, 2층에 걸린 민화들도 깔끔해 보인다. 그 중에서 내 눈에 들어 온 그림은, 김춘열의 <도원행주도>이다. 이 그림은 마치 조선 초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 ‘덴리 대학’(天理 大學)에 소장되어 있다. 20여년 전 전시 할 때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길게 두루마리 형식으로 된 이 그림은 도교적인 내용으로 왼편에서 오른쪽으로 상승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즉 왼편은 인간의 세계라고 본다면 점점 오른편으로 갈수록 그야말로 꿈에서 본 복사꽃이 피여 있는 신선의 세계로 옮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원행주도는 구성이 조금 달랐다. 화폭 앞쪽에 복사꽃과 수직으로 상승하면서 분홍색의 꽃은 보이지 않고 초록의 숲으로 되어 있다. 

설명을 해주는 해설사가 이왕이면 민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설명해 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실 민화는 다양한 내용을 그림의 소재로 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면 모란이나 국화, 연꽃 등 다양하게 그려진다. 이 들 꽃들은 대부분 부와 관련이 있다. 경제적인 부와 아울러 자식의 풍성한 탄생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로 여자들과 관련이 있다.

그에 반해서 용, 호랑이 등 크고 용맹스런 동물들은 남자의 호기를 위해 그들의 출세와 관련된 서책과 책장, 책상, 그리고 문방구 등 기물과 함께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남편이나 아들의 방에 걸어 둔다. 그 외에도 한 쌍의 새가 나무에 앉아 얼굴을 맞대고 있는 그림은 부부의 화합을 위하는 것으로 그들 처소에 둔다. 

사실 우리는 일제 시대 이런 그림들이 거의 다 없어지고 관심 밖 이었다. 이 민화에 관심을 가진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 宗 悅)가 있다. 우리의 그림을 ‘슬픈 역사의 그림’이라는 묘한 말로 표현해서 오늘날 그를 두고 조선을 아낀 인물이니, 또는 원래 일본인들의 속과 겉이 다른 비하하는 말이라 느니 하고 있다. 

또 아이디어가 새로운 다른 그림도 전시되어 있었다. 차를 마시고 난 다음 찻잎을 말려 그 모양을 계속 반복해서 그린 그림들이다. 그림의 바탕이 되는 색으로는 흰색, 검은색 군청색 등이다. 바탕에 찻잎 모양을 꽉 채워 반복한 것도 있고, 화폭의 한 반 정도만 그린 것, 또는 위 쪽에 한 5cm 정도만 그리고 나머지는 공간으로 남겨둔 것 등 다양하게 표현했다.  

이들 그림을 전시한 건물 밖에는 사임당의 ‘초충도’ 그림을 가림막 모양의 작은 병풍처럼 늘어 놓았다. 이왕이면 충청권의 화가들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면 강릉 출신화가가 남긴 것보다는 이곳 출신들 그림을 펼쳐 놓았으면 어떨까? 아니면 지금 전시하고 있는 작품 중 어느 하나를 펼쳐 보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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