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시니어기자
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시니어기자

벽에 달려있는 달력이 11월이 되면 뒷장에는 보내기 아까운 12월이란 숫자가 사람의 마음을 괜시리 싸~아하게 만든다.    

마늘, 양파, 시금치 씨앗을 뿌리고 나서 한숨 돌리려나 싶었는데 텃밭의 무우, 배추가 생긋이 웃고 있다.  

농협에서 해마다 농지부원본이 있는 귀농 농가에 품질 좋은 배추모종 120개를 나누어 주어 심게 한다. 그 배추 모종을 텃밭에 간격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고 그냥 심으면 되는 줄 알고 나름대로 열심히 심었다. 얼마 지나니 배추가 다닥다닥 붙어서 제대로 크질 않고 알도 차지 않고 있었다.

누가 배추를 이렇게 심었냐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퉁을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 중간 중간의 모종을 뽑아서 버리기 너무 아까워 양봉 앞의 텃밭에 모종을 옮겨 심었다. 또 핀잔을 받았다. 그냥 삶아서 시래기나 해 먹어야지 옮겨 심는 순간 다 죽는다고 했다.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사니깐 걱정을 말라고 큰 소릴쳤다. 은근히 걱정이 나를 짓눌렀다. 비실비실 무배추의 잎이 말라붙어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마다 물을 주면서 ‘미안해 미안해’를 연신 외치며 물을 열심히 준 결과 모두 죽지 않고 다 튼튼하게 지금까지 땅을 지키고 있다. 이제 조금씩 농사를 알아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김치는 여러 가지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리고 집집마다 들어가는 재료가 다 다르다. 한 겨울의 김장김치는 우리 밥상의 영원한 꽃이다. 
김치가 주는 행복도 여러 가지다. 맛과 품위도 갖추고 있다.
한국의 김치는 세계적이며 김치의 풍기는 매력은 최고의 발효식품이다.

김장을 몇 년 동안 하지 않아서 걱정이다. 요즈음은 절임배추가 택배로 집까지 배달이 되니까 주부들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배추 값에 소금 노동까지 합쳐보면 절임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김장은 버무리는 것보다 절이는 것이 귀찮아서 너무 싫다. 그런데 올해는 아들이 내려와서 김장을 해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온다는 그 날짜에 한사협 다큐분과 모임의 1박2일 떠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내 시간에 맞추려니 배추를 절구어 인천으로 가져가겠노라 약속을 해 버렸다. 더 춥기 전에 뽑아서 절구어야 한다. 마음과 손이 바쁘다. 배추에 무름병이 생겨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배추가 잘 영글어주었다. 

40포기 뽑아서 5포기는 나눔하고 소금을 뜨거운 물에 풀어서 김장봉지에 넣어 절구었다. 

무우는 엉망이다. 제일 큰 것이 15cm 정도, 그 외는 동치미 담기에 좋을 정도다. 쪽파도 뽑아서 다듬고 씻어 랩으로 꼭꼭 포장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마늘은 텃밭에 심고 남은 나머지 전부 껍질을 까는데 지겨워서 혼났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저절로 실감이 났다. 백수 과로사가 따로 없다. 차에다 절임배추, 무우, 쪽파, 새우젓, 마늘, 생강 찧은 것, 차에 실으니 빈 공간이 없다. 

화요일 옥천에 와야 하니 친한 지인들 만날 시간적인 겨를도 없다.
그 날 따라 고속도로는 왜 그렇게 밀리는지 집까지는 210km, 막히지 않으면 2~3시간이 통상적인데 휴게소에 들리면 기본이 30분,  그래서 언제나 통과한다.  

가는 도중에 볼 일이 생겨도 참고 집까지 가는 것 때문에 약간의 고통이 따르긴 하지만 참고 간다. 요즈음은 수요일과 목요일 때문에 인천과 서울도 자주 갈 수가 없다. 

11월 11일부터 왔다갔다 주로 서해안 쪽으로 해서 여정을 보낸 것 같다. 오랜만에 긴 시간의 운전을 했다.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가워졌다. 간밤에 내린 비로 능수홍매의 가지 끝에 상고대가 매달려 있다. 겨울의 발톱을 내미는 것 같다. 영하로 뚝 떨어져서 배추밭의 나머지를 다 캐어내고 포기가 작은 것들은 모두 절구어 양념을 적게 넣고 봄에 먹을 김치를 담구었다.  

난로불에 고구마와 인디언감자를 구워 차거운 겨울 바람소리를 따끈한 커피 한잔에 녹여 마신다. 하루의 피로도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밤 시간 차창에 날리는 엷은 첫눈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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