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시니어기자
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시니어기자

계절은 육상경기의 릴레이식 바톤을 넘겨주듯 물 흐르듯 흘러간다. 

옷깃을 여밀게 하는 찬바람이 활짝 열어 제켰던 창문까지도 닫아 버리게 한다. 그동안 힘들게 농사지은 온갖 채소와 식량들이 보상을 하는 따끈한 아랫목의 이야기가 기다리는 계절이다. 부산하게 움직이던 농삿일도 돌아서면 쉴 사이 없이 온 땅을 기어 다니며 가득 메꾸어 주던 지겨운 이름 모를 풀들도 고개숙여 너무도 조용해졌다. 간혹 굴뚝에서 춤을 추며 빠져나오는 연기의 현란함이 정겹다. 

논과 밭을 가득 채웠던 작물들의 잔해는 산불감시하는 사람들의 출퇴근 시간 전과 후에 알게 모르게 태워진다. 예전부터 농번기가 끝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논두렁 밭두렁에 불을 지폈다. 타고남은 재는 농작물에 거름이 되고 병충해의 예방차원에서 전해 오던 방식이었다. 지금은 불을 지피는 것이 발각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어릴 적 통조림 빈 깡통을 주어서 못으로 구멍을 숭숭내어 철사로 길게 손잡이를 만들어 그 속에 짚을 넣고 불을 붙여서 빙빙 돌리면 깡통 속에 불꽃이 활활 타오르며 구멍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러면 깔깔대며 환호성을 지르며 노래를 부르고 늦은 시각까지 놀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떠한 소각행위도 금지된 상태이다. 

시골의 각 호는 대개 연로하신 노인들이다. 분리수거 쓰레기 수거 장소까지 무겁게 들고 가야 한다. 도시처럼 문 앞에 두면 치워가는 것이 아니기에 소각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이다. 

어쩌다 땅을 파면 그 속에서 온갖 쓰레기와 비닐들이 수도 없이 묻어져 있다. 그나마 음식 쓰레기는 땅을 깊게 파서 묻어주면 해가 바꿔 거름이라도 되지만 이럴 땐 도시 생활이 그립다.    

어쨌거나 대보름날 한해 풍년의 기원을 비는 쥐불놀이는 아무데서 누구나 행할 수 없는 민속놀이예술로 법으로 정해졌다. 

크고 작은 추억들이 세월 속으로 하나하나씩 묻혀서 우리 곁을 떠나 기록으로 남겨져 가는 씁쓸함이 차거운 계절만큼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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