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11월이 되면 마음이 바쁘다. 이것 저것 겨우살이 준비를 해야 한다. 김장도 해야 하고, 두터운 이불과 겨울 옷도 꺼내 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마음 쓰게 하는 것이 수능 시험이다. 수험생을 둔 가정에서는 온 통 거기에 신경을 쓰게 된다. 

‘60년대 학교를 다닌 나에게는 오늘날과 같은 수능 시험이 아니라 각 대학에 따라 자체적으로 치러지는 시험 이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1차와 2차로 나누어져 있었다. 

지금과 다른 것 또 하나는 시험을 치르는 날 점심은 도시락을 싸와서 교실에서 먹어도 되고, 교문 밖으로 나가 사 먹어도 되었다. 너무 추워서인지 도시락을 싸 온 학생들보다는 사 먹으려고 교문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교실이 엄청 추워 밥을 먹기가 쉽지 않아서 인 것 같았다. 시험을 치는 때는 거의 매 해 한파가 몰려와 엄청 추웠다. 그래서 ‘입시추위’라는 말이 생겨났다. 따뜻한 교실은 생각도 못했다.

내가 시험 본 학교에서도 점심시간 교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어리버리 했다. 교실에서 나오는데, 맞은 편 교실에서 수학과 시험을 치른 아이들 중 한 아이가 내 손을 잡으며 아는 척을 한다. “우리 밥 먹으러 같이 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길도 잘 모르고 어디에 식당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가 가는 대로 따라갔다. 교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골목길로 올라가는 그에게 “니 어느 고등학교 나왔노?” 사투리로 말을 걸었다.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어느 집 안으로 들어섰다. 가정 집이었다. 좀 허름하고 별로 크지 않은 집 이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라” 고 하신다. 방 안에는 둥근 상이 펼쳐져 있었다. 곧 떡국을 상 위에 놓으시면서 “식기 전에 얼른 먹어라.”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는지 어떤지 기억이 없다. 점심 시간이 한 시간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먹었다. 나는 먹는 동안 내내 ‘이 집에서 밥을 파는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다 먹고 내가 지갑을 꺼내자, 친구가 “여기는 우리 친척 집이야”라며 내 손을 밀었다. 아무튼 모르는 친구 따라가서, 모르는 아주머니가 해 주신 떡국 한 그릇을 잘 먹었다. 나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시험에 관한 이야기 보다 점심 먹은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3월이 되어 입학식을 끝내고, 그 아이를 찾기 위해 수학과 문을 두드렸다. 조교에게 신입생 사진을 보여 줄 수 있냐고 물어 보았다. 친한 친구를 찾으려 한다고 이야기 했다. 이름은 모르고 얼굴만 기억한다는 내 말에 “오래된 친구인가 보네” 라며 사진 첩을 보여 주었다. 몇 번을 살펴 보아도 그 아이의 얼굴은 없다. 그 아이는 참 예쁘게 생겼었는데. 갑자기 미안하고 허탈해졌다.

언덕 골목길, 점심을 주신 그 분의 집도 찾지 못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고마운 친구와 고마운 아주머니를 찾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새기고 있다니… 고운 얼굴 만큼이나 고운 마음을 가진 너와 아주머니 덕에 잘 살고 있습니다. 나도 그대를 닮고 싶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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