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영화를 보면 전쟁 중 피난을 가는 가족들 가운데 어린 꼬마들은 인형을 안고 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나도 이 아이들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어릴 때 나는 종이로 인형 옷을 만들어 성냥개비에 입히는 놀이를 많이 했다. 

초등학교 4, 5학년 쯤 되어서는 천으로 인형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몇 날 며칠 씩 몸체를 만들어 솜을 꾹꾹 집어 넣고, 얼굴을 색연필로 그렸다. 그리고 옷을 만들어 입혔다. 어느 날은 드레스를, 또 어느 날은 바지 저고리를 갈아 입히곤 했다. 오로지 그 일에 꽂혀 있었다. 그러느라 공부는 뒷전 이었다. 그러다 부모님께 숙제와 공부 한 것을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안 해놓아 혼이 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리고는 치열한 입학 시험을 치러야 하는 시기에 계속해서 입시에 매달리느라 인형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런데 대학을 들어 가자, 어느 날 엄마가 가슴에서 뭔가를 꺼내 놓으셨다. “이거 미제 물건 파는 아줌마한테 부탁해서 산 거다. 미국 아이들도 아주 좋아하는 거란다.” 마치 무슨 큰 일을 해낸 것과도 같은 모습이셨다. 꺼낸 물건을 보고 가족들은 모두 와하하~웃으며 뒤로 넘어졌다. “얘가 몇 살인데 이런 걸 선물해요?” 나도 놀랐다. 

연하늘색의 포근 포근한 천으로 만든 것으로 이 인형은 가방처럼 사용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잘 볼 수 없는 독특한 인형이었다. 나는 꼭 껴안았다. 공부 안 한다고 인형을 만들지도 못하게 다 치워 놓을 때 난 많이 훌쩍거렸었다. 아, 그런데 엄마는 그 때 내 마음을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이렇게 성인이 된 나에게 그 기쁨을 안겨주시다니! 이번에도 눈물이 났다. 

이제 엄마는 안 계신다. 그래서 일까, 엄마와 가까이 지냈던 아주머니께서 내 회갑 선물로 직접 인형을 만들어 선물로 주셨다. 이걸 다른 사람들은 웃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따스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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