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시니어기자
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시니어기자

기온의 차가 조석으로 다르다. 입동이 지나서 인가? 

여기저기 밤사이 바람 불어 헤쳐진 풀잎을 덮어주는 친절한 하얀 서리가 눈을 호강시킨다. 바라보는 아름다움, 밑바닥에 숨죽이며 깔려있는 살얼음, 양면성이다. 사람으로 보면 이중인격자다. 그래도 초겨울을 알리는 이 신호를 나는 좋아한다.

황금들판이다 싶었는데 어느새 허전한 들판은 커다란 공룡 알들의 정체가 널부러지게 온 들판을 누비고 있다. 처음엔 신기했다. 그래서 안개 낀 새벽녘이면 카메라 샷을 누르고 좋아했다. 

별로 알고 싶지는 않아 지나쳤는데 이제는 알아야 한다. 조사해 본 결과 소의 조사료로 이용되는 곤포 사일리지라고 한다. 두 달 정도 숙성 발효시키면 질 좋은 사료가 된다고 한다. 즉 김치라고 쉽게 생각하면 된다.

땅에 퇴비를 주고 마늘과 양파의 밀린 나머지 숙제를 마쳐야 하는데 깜박했다. 건너편 지인님이 오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창고에 걸려있는 마늘은 언제 심으시려나, 늦긴 해도 지금 심어도 된다고 한다.  

내일 비온다고 하니 서둘러서 심으라고 한다. 다급해졌다.
점심은 라면으로 대충하고 서둘러 마늘을 쪼개었다. 2년 전에 한접에 좋은 것 4만원 주고 2접은 2~3만원 8접을 구입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년째 씨알로 심고 있다. 작년에는 2접 반을 심었는데 큰 것 작은 것 합쳐서 8접이 되었다.
한접을 씨알로 쓰면 1/3은 껍질밖에 없다. 어쨌든 그 한알의 씨알이 6쪽이 되고 7~8쪽으로 변신한다. 

너무 신기하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인디언감자, 하늘마, 야콘, 쪽파, 콩 등등 어느 하나 신비롭지 않은 게 없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땅의 경이로운 예술에 정말 감탄하고 있다. 

농협에서 나누어준 배추모종을 텃밭에 간격도 생각지 않고 그냥 촘촘히 심었더니 보는 사람마다 누가 심었냐고 물었다. 어쨌든 그 배추로 월동준비의 김장을 하려고 한다. 땅이 비옥하지 않아 배추 무름병이 왔다. 정말 정성을 다 했다. 

무우는 커다가 지쳐서 병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잎이라도 무성하게 잘 자라 주었다. 여기 집에선 김치는 거의 먹질 않아 김장은 하지 않는다. 
아들 내외가 내려와서 김장을 하기로 했는데 내가 사진출사 약속이 연속으로 잡혀 있어서 결국 배추를 절구어 인천으로 가져가야 한다. 

혼자 40포기를 뽑아서 옮기고 절구어 씻어 마무리를 하고 나니 나이는 속일 수가 없구나를 혼자 중얼거린다. 3대가 한집에 살적에는 정말 일이 많았었다. 어른이 계시다 보니 이것 저것 챙겨 놓고 다녀야 하니 밤잠을 설칠 때가 많았었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었다. 

지금 나는 시장도 아니고 집앞 텃밭에서 배추를 뽑고 쪽파를 뽑아서 다듬고 꿈 같다. 넓은 마당에 한치의 여백도 남기지 않고 꽉 채워주는 공간 예술의 진가를 맛보고 행복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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