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법명

중복에서 처서를 전후한 요즘 자다가 비지나 가는 소리에 잠 깨는 일이 잦다.
밤에 내리는 빗소리는 낮에 내리는 빗소리와 또 다르다. 잠결에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린다. 비 줄기 하나하나가 무슨 사연을 지닌 채 소곤소곤 내 안으로 스며든다.

밤을 스치고 지나가는 저 빗소리로 인해 숲을 조금씩 여위어가고 하늘은 구름 떨치고 하루하루 높아 간다.

날이 밝게 개어야 창문을 정리할 터인데 마음이 조급해온다. 이 산사에서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가는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십여 성상을 넘어서서 나도 세월에 실린 만큼 인생의 노년을 거니는구나 마음에 새겨진다.

내 곁에 모든 분들은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마음 떠보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는 그저 수행자로 여생을 살아간다는 것 외엔 아무런 거리낌 없는 이 길을 산다는 각오다. 

내가 이 산사에 살면서 겪은 일들을 이제 뒤돌아보면 내 자신을 형성하는 덕에 어떤 받침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진정한 수행히 무엇인지 몸소 겪으면서 나 자신을 다스려온 것이다. 

안으로 살피는 일이 없었다면 참으로 오늘에 이르도록 이렇게 넉넉한 삶은 없었을 것 같은데 모든 분들은 내 수행을 부러워하는 분들도 꽤 많다.

우리가 몸 담아 살아가는 이 세상이 천국이 아니라 참고 견디면서 살아야 하는 사바세계라는 사실을 안다면 어디에서나 참고 견뎌야 할 일들이다.
아무 어러운 일도 없이 그저 편하기만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수행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려움은 나를 좌절시키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일어서게 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 대접을 해 주겠는가. 그때마다 마음 더 가다듬고 이 산사에서 보람을 느끼며 중생의 목마름을 가슴적셔 주는 감로수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내 흐트러지는 자세가 이 좌상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고쳐지게 된다.

삼복더위 속에서 우리 모두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이라고 좌절하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내일의 희망 일구어 나가는 삶의 주인 되어 나보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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