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하루종일 버스 타고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다녔다. 1980년 1월이었다. 추운 건 한국이나 유럽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복장은 두꺼운 겨울옷 차림으로 단단히 무장했다. 처음 유럽 여행에 나선 우리는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부지런히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다. 그 때는 외국 여행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바빴다. 

‘라 스칼라’의 음악회를 보기 위해 그날은 서둘러 박물관과 미술관을 보고 밀라노로 급하게 달려왔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 그냥 그곳으로 직행했다. 문 앞에는 입장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미 입장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우리 일행은 나에게 입장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시킨다. 예상대로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아직은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지만, 우리의 복장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음악회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정장 차림을 한다는 원칙이 있다. 참으로 난감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한 번 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는 멀리서 아주 멀리서 왔다. 오직 당신네 나라 유물 유적 뿐 아니라 사람들의 따스함을 느껴 보고 싶어 왔다” 대충 이런 식으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갖도록 말을 꺼냈다. 한참을 자기네끼리 뭐라고 하더니 들어가도 좋다고 한다. 단 3층에 서서 관람할 수 있는 코너가 있으니 괜찮겠냐고 물어본다. 이 말에 오케이를 했다.

사실 다른 좌석은 너무 비싸서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데 오히려 잘됐다고 이구동성 좋아했다. 그렇게 입장한 우리는 꼬박 서서 거의 3시간 가까이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오페라였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그냥 무식하게 봤다. 

나중에는 너무 더워 위에 입은 점퍼를 벗고 싶었지만 어찌나 조용한지 바스락 소리도 다 들릴 지경이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몸도 비비 꼬이고, 집중도 안 되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 다리도 아프고 저녁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배도 고팠다. 

드디어 몇 사람은 고개가 앞으로 숙여졌다. 잠이 쏟아져 앞에서 뭘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혹시라도 누가 코를 골까 봐 걱정되었다.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2층 로얄 층에 앉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귀족같이 보이는 차림을 하고 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드레스 복장과 보석으로 치장한 여인과 남자들이 앉아 있다. 앞의 무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운 여인들 보는 것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남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앉아 있는 그들의 좌석은 그야말로 ‘로얄박스’다.  
드디어 해방되었다. 밖으로 나온 우리들은 모두 살 것만 같다고 한마디씩 했다.
“오늘 비싼 사우나 했다”고. 생각지 못한 한국 유학생 두 사람을 만났다. 오늘 공연한 것이 누구의 작품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마침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모짜르트의 오페라였다고 알려주었다. 그 제목은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등산복 차림으로 고급 사우나 한번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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