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시니어기자
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시니어기자

벌써 10여년 전이 훌쩍 지난 일이다. 당시 3월의 바람은 살갗을 파고들어 봄을 시기하는 질투의 화신으로 변하는 달이다.당시엔 여행, 관광지도를 제작해 만드는 일을 했다. 

배낭의 무게를 저울에 올려놓고 10kg이 넘으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밖으로 끄집어낸다. 적어도 하루에 50km 이상은 걸어서 조사해야만 제주도 올레 14구간의 트랙을 GPS에 수록 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김포공항에서 항공티켓을 예약하여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1구간이 시작되는 시흥~광치기에서 민박집을 찾아 첫 여정을 풀었다. 

1구간이 보통 20km, 적게는 15km 많게는 30km 이내 였다.
배낭무게가 10kg이 넘어면 무게의 중압감 때문에 50km이상 걸어서 다음구간을 가는 것이 무리다. 

보통 1-2구간 합쳐서 50km이상 되는 구간도 있고 아님 3구간을 합쳐서  53-4km가 되면 구간이 끝나는 지점에서 민박 아님 콘도를 빌려서 혼자 자야한다. 무게 때문에 옷이 단벌이라 땀에 젖어 그날 그날 빨아서 따끈한 방바닥에 펼쳐 말려 다음날 입고 조사를 해야 한다.

끝없이 걸어야 하는 모래사장 길은 걸어가면 갈수록 발은 앞으로 나가지 않고 모래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공원묘지가 있는 구간을 조사할 땐 내 등 뒤에서 무덤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느낌을 받아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속도를 내어야 했다. 

열대지방을 방불케 하는 아무도 없는 밀림 속은 그야말로 머리가 쭈뼛쭈뼛. 이정표가 정확하게 잘 되어 있지 않아 길을 GPS에 수록하느라 애를 먹고 헤매다 겨우 그 구간을 빠져나와 한숨 돌리며 목을 축였다. 

그곳을 지나가는 현지인 화가를 만났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하마터면 미아가 될 뻔했다고 하니 얼마 전에 길을 못 찾아 사람이 실려 나갔다 하면서 미쳤다고 했다. 우리집 방 한칸을 내어 줄테니 호텔로 가지 말고 자기가 도와 줄 테니 함께 자기집으로 가잔다. 그런데 가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와 있었던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눈뜨고 코베어’가는 제주도인데 간도 크다면서 그러다 멸치잡이로 팔려 간다면서 다시는 모르는 사람과 말도 건네지 말란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각에 지친 몸으로 구간의 마지막을 도는 순간 낯선 남자의 무서운 손길에 어쩔 수 없이 백두대간의 후배가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다급히 SOS를 쳤다. 항구 주변에서 제일 가까운 호텔 사장과 통화가 되어 중간에서 나를 픽업하여 요행히 그 남자를 따돌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호텔의 제일 깨끗하고 조용한 객실로 안내해 주었다.

“아니 선배님은 게스트하우스를 두고 왜 비싼 콘도나 호텔에서 잠을 자느냐”고. 그리고 올레길 손님들에게 아침밥도 준다며 호통을 쳤다. 단벌인 나의 사정, 그리고 온종일 발품을 팔아 지친 몸이라 편안하게 잠을 자야 하고 옷을 빨려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처음 올레길이 열리면서 여기저기 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선 다양한 사람들이 침대 층층이 잠만 자는 시스템인데 물론 어려울 때 도와주어 할 말은 없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해변길을 가다가 바위 위에 있는 식물을 채취하는 분을 만났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방풍나물이라는 나물을 알게 되었다.

왜 여자 혼자서 조사를 하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저는 이런 사람인데 올레길의 정확한 트랙을 지도로 옮기기 위해서 매일 50km이상을 걷고 있다고 했다. 그가 운영하는 호텔 17평 짜리를 내어 줄 테니 구간 조사 끝날 때까지 머물렀음 좋겠다는 제의를 했다. 

그러하면 조사가 끝나는 시점에서 차로 호텔까지 모시고 다음날 시작하는 지점에 모셔다 주겠다고 약속을 하는 바람에 그 호텔에 여정을 풀었다.

그런데 웬일 그 약속은 사라졌고 나는 구간 끝나는 지점에서 택시를 불러 호텔까지 오가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마지막 구간을 남겨놓고 비가 하루 종일 내리기 시작했다. 어쩔수 없어서 호텔에 남은 이틀 숙박료를 받아내고 공항가는 리무진버스의 종점인 롯데호텔까지 데려달라고 했다. 

호텔 로비는 빗줄기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바람에 손님이라고 나 한 사람 버스를 통째로 전세 내었다. 

올레길의 여정은 많은 이야기와 추억거리를 뒤로 남긴 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조사를 할 적에는 14구간이 종점이었다. 그리고 계속 구간을 개척하는 시기였다.

지금은 편리한 시설물들도 많이 들어서고 여행객들이 제주도 올레길을 안전하게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제주도 올레길이 생기면서 각 지방에서 너도나도 둘레길을 만드는 기이한 현상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요즈음은 하늘다리가 지자체마다 손님 유치로 번져가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 하늘다리를 건너면 새처럼 두둥실 날아올라 갈 것 같은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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