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와!~ 아~. 달려라, 달려 더 더 더. 운동장이 떠나갈 듯하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야단이다. 오늘은 내가 일하는 죽향초등학교 운동회 날이다. 나도 서류 정리를 하다 말고 잠시 멈추었다. 창문을 통해 소리 소리 지르는 광경을 한참을 바라 보았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도 가을이면 운동회가 의례 하나의 큰 행사였다. 오늘 치러지는 운동회를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요사이는 학생수가 적고 반 수도 한 학년에 두, 세 반 밖에 없으니 예전에 비하면 풍성함이 휠씬 덜해 보인다. 

며칠 전부터 학년별로 운동장에서 차려, 경례 등 앞에서 지도하는 선생님의 구령에 따른 연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루를 위해서는 여러 날의 연습과정이 있어야 함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눈에 들어오는 것 중 첫번째가 ‘개선문’이다. 우리 때는 합판과 나무로 엮어 만든 후 색칠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세워진 것은 바람을 불어 부풀려 세운 것이다. 색색의 비닐로 만들어 진 것이다. 

처음 시작이 모든 학생들과 교사 학부형이 함께 일어서서 한바탕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추어 껑충 껑충 춤을 추는 것이 참 새롭다. 보고 있는 나도 저절로 어깨와 발이 들썩여 진다. 한바탕 흥을 돋우는 것이다. 대신 우리 때는 학년마다 ‘매스게임’이란 게 있었다. 학년에 따라 갖가지 율동이 달랐다. 또 볼만한 것은 운동회 마지막에 6학년들의 ‘기마전’이 큰 기대를 하게 했다.   

학생들이 입은 운동복도 참 많이 다르다. 우리는 남녀 모두 검은 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었다. 운동화도 다 같은 색으로 어느 해는 흰색으로, 또 어느 해는 검은색이었다. 남자 아이들은 청군은 파란 모자, 백군은 흰 모자를 썼다. 여자는 청, 백으로 구분하여 머리띠를 했다. 오늘 이곳의 아이들은 모자를 쓴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청, 백에 따른 복장이 아니라, 학년별로 티셔츠 색을 달리하고 있다. 살구색, 노란색, 흰색, 진한 보라인 가지색, 파란색, 검은색 그리고 진한 청색에 등쪽에 용을 그려 넣은 것 등 모두 7가지 색이다. 색이 7가지인 것이 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교내에 있는 어린이집 꼬마들도 함께 운동회에 참석하고 있어서다. 바지는 모두 자유롭게 입었다.

운동회 프로그램을 보니 대개는 우리 때와 비슷한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좀 다른 것은 저학년들은 엄마나 아빠와 함께 손을 잡고 뛰어서  빨간 긴 터널을 빠져 나오는 게임을 한다. 우리 때는 부모와 같이 하는 것이 아예 없었다. 

공을 넣는 게임도 우리가 했던 것과 비슷하지만 좀 다른 것은 양파 넣는 망과 같은 큰 자루를 각 편 쪽에 어른들이 들고 서 있고, 거기에 아이들이 볼풀에서 볼 수 있는 색색의 공을 그 망자루에 집어 넣는 게임이다. 우리 때는 ‘오자미’(일본어), 즉 천으로 만들어 그 속에 곡식 또는 모래를 넣은 주먹만한 작은 공 모양으로 된 것으로 터뜨렸다. 이것으로 바구니를 먼저 터뜨리는 팀이 이기는 것이다. 그때 바구니가 터지면 그 안에서 ‘축하’메시지를 적은 긴 띠와 함께 각종 색종이로 만든 꽃가루가 쏟아져 나오는 장면이 펼쳐진다. 

크라이막스는 역시 예나 지금이나 달리기 계주이다. 각 학년 대표가 달리면 목청을 높여 ‘이겨라’ ‘빨리 빨리’ 승리를 외쳐 대는 함성이 제일 볼 만하다. 또 아이들 달리기 만이 아니라 엄마, 아빠들을 혼합한 계주가 대단하다.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잘 달리기를 외치는 모습이 참 귀엽다. 교문 밖 담장에 기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옛날을 생각해서 인지 아주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다.

우리 때는 운동회가 하루 종일 열렸다. 그래서 학부형들이 점심을 싸와서 아이들과 같이 먹고 즐겼던 마을의 큰 잔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학생 수가 적어서일까 거의 오전에 다 끝내고 있다. 

앞에서 식을 주도하는 선생님은 단순히 식순만을 알리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중간 중간 분위기를 북 돋우는 노래나 춤, 그리고 멘트로 이끌어 가는 것이 마치 어느 연예인들의  행사장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달리는 아이들이나 학부형에게 힘을 주기 위한 멘트로 “달려라~ 달려~”를 목청껏 외쳐 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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