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상단이 유정숙 친구(사진제공 오희숙)
왼쪽 상단이 유정숙 친구(사진제공 오희숙)
김학분(87, 옥천읍 문정리) 시니어기자
김학분(87, 옥천읍 문정리) 시니어기자

서울에서 옥천으로 이사 온 지 12년이 되었다. 아파트 15층에 살면서 시내 전체를 내려다보면서 많은 상상을 한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여중학교 승용차 주차 해놓은 것이다. 일 없이 세어보니 36대다. 그것 뿐이랴. 지하주차장도 있으니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 그만큼이다. 그리고 등하교시간에는 학생들을 학부모가 거의 차로 데려다 준다. 우리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읍에서 여중학교가 있었던 구읍까지 한시간 가는 거리인데 다 걸어서 다녔다.

먼 곳이라고 생각도 못하고 늘 길목에서 유정숙이가 기다리고 만나 같이 가고 오고 하였다. 우리집은 어물장사를 했으니까 오징어를 살짝 구워 갖고 가서 먹고 다니는 것도 즐거운 낙이었다. 지금은 그런 아기자기한 재미가 여간해서 생기지 않는다. 그는 이북에서 피난 와서 어려웠다. 마음도 맞고 뜻도 같아서 죽마지우가 되었다.

그 때는 조금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냇물 같이 맑고 깨끗했고 순수하니까 날마다 봐도 신선하고 새로웠다. 밥도 같이 먹으면 입맛이 달 때라 그런지 김치 한 가지만이라도 꿀맛 같았으니 고기 반찬이 필요 없었다. 왜 그리 좋았든가 날마다 반갑고 싫증도 안 나던 친구, 그는 키도 적은 키요. 나는 큰 키(165cm), 그런 것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었다.

나는 공부를 잘 했고(1등) 그는 늘 중간이었는데 그런 것도 관계없이 잘 지냈다. 그러다 결혼하여 각각 떠나서 아들만 셋 났다. 나는 삼녀일남을 키우다 바쁜 나날을 지냈는데 그가 입원을 했다. 급히 가서 보니까 기운도 없어 보이는데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얼마 뒤에 저녁할 시간인데 그에게 전화가 왔다.

어서 오라고 보고 싶다고. 내일 간다고 했더니 끝내는 얼굴도 못 보고 그날 저녁에 영원히 오지 못할 길로 떠났다. 그 때 평생 울 것 다 울었는데 운다고 간 사람이 뒤돌아 보지 않는다. 안녕히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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