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숙

분주한 아침이다. 차량으로 유치원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탄 손녀가 뒤 따라 들어가는 할미에게 “할머니, 엄마 냄새가 나~~.” 한다. 안에 들어가니 머리 감고 채 마르기도 전에 급히 나간 여인의 샴푸향이 엘리베이터 안을 상긋하게 했다.

엘리베이터는 냄새를 잘 흡수하나 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배달이었으면 피자 냄새, 자장면 배달이 왔으면 자장면 냄새. 쓰레기 냄새, 담배를 피우고 갔으면 담배 냄새가 지나간 사람마다 난다.

엘리베이터 안의 냄새를 맡으며, 내가 살아온 것을 생각해본다. 빛의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순간 내 살아온 나날이 머릿속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부끄럼 없이 잘 살았나. 철없던 어린 시절부터 육십 오년 동안을...

육 남매 중에 유난히 연약했던 나를, 부모님은 늘 걱정을 했다. 언니와 나는 여덟 살 차이가 난다. 언니 위로 둘이 죽고 밑으로 둘이 죽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말씀대로 하나님과 반타작을 했다고 하신다. 예쁜 짓 좀 할 때면 죽었단다.

밑으로 남동생을 바로 보아서 젖이 일찍 떨어졌기 때문에 할머니 빈 젖으로 살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참 우량아이 같았는데 아파서 병원 옆으로 타닥하자 말고 집을 사서 이사를 왔는데도 그 동생은 죽고 말았다. 

나는 초등학교 삼학년까지 할머니 빈 젖을 먹은 것 같다. 요즘 아이들 공갈 젖꼭지 빨 듯 할머니 젖을 그리워했기 때문에 학교로 젖 먹이러 오실 정도였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신경통으로 다리가 아팠다. 비가 오려면 미리 일기예보를 했으니 얼마나 걱정이었을까. 시집 보내놓고는 나약한 딸 아파서 시집살이 못하고 쫓겨날까봐 걱정을 했단다. 그래도 탈없이 시부모 남편 사랑 받고 잘 살았다. 

어느 날 둘째 아이 오줌을 뉘고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내 나이 때 엄마가 고생한 것이 떠올라 시집 온 지 오 년 만에 울며 편지를 썼다.

내 일생 중 제일 고생했을 때다. 아버지의 외도로 가정이 파산 지경이 되었다. 삼대 독자에 아들을 못 낳아 자손을 보기 위한 것이다.
엄마는 집을 나가 인천으로 갔다. 돈을 벌어서 나와 언니를 데려다 키우겠다고 나간 것이다. 

언니가 중학교를 갈 때 엄마는 예쁜 본견원피스와 언니 옷을 한 번 사서 보냈다. 난 그 옷을 입고 이웃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엄마가 옷 보냈다며 싱글벙글 웃는 모습에 엄마친구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철 없이 좋아하는 것이 불쌍해 보였나 보다. 

이런 이야기를 다 써서 장장 다섯 장을 보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것을 다 기억했었냐고 우셨단다. 그 때 내 나이 여섯 살이었다. 그 후로는 무탈하게 산 것 같다.

엄마하고는 솔직히 정이 없었다. 엄마 냄새보다는 할머니 냄새를 더 맡고 살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할머니가 자는 우리들 등을 후려치셨다. “이년들아 내가 밤새 잠을 잔줄 아냐. 주리를 틀었지.” 작은 키도 크느라 밤새 할머니를 괴롭혔나 보다.

할머니가 손녀딸들을 돌보고, 엄마는 돈을 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보다는 할머니가 더 좋았고, 정도 더 들었다. 엄마는 신발 신을 새도 없이 일을 하셨다. 딸 셋이 먼저 고무신을 신고 나가면 엄마 신은 밑바닥 없는 신만 남았다. 엄마, 죄송합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내 냄새는 어떤 냄새일까? 우리 아들이 알까? 딸도 아닌데, 조심해서 살았지만 보는 눈마다 생각하는 것마다 틀리다. 나름대로 추억 만들어준다고 스케이트장, 수영장, 동물원, 연극 구경, 다 해준다고 했는데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큰 아들이 엄마한테 생일마다 사기를 당했단다. 커서 생각하니 운동화가 떨어지면 당연히 엄마가 사줘야 되는데 꼭 생일 때 맞춰 생일 선물이라며 사주었단다. 아들아 사기라고 생각지 마라. 너도 자식 키우니 이제는 알 것이다.

이순의 나이에도 그리운 어머니의 젖가슴 냄새가 아련히 떠오른다. 이제야 철이 드는가 보다. 내일은 어머니 산소에 국화꽃을 한 아름 들고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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