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어느 신문에서 입사 면접관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면접을 받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에게 참으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방에 들어와 면접관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앞에 놓인 의자에 가서 앉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감점을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사를 한 후 면접관이 의자에 앉으라는 권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덥석 가서 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한 수험생들의 대부분이 소위 말하는 부자 동네라고 하는 지역의 주소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면접관의 이야기에 동감한다. 나는 엘리베이터나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되도록이면 노약자들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타거나 무거운 짐을 가진 분들을 우선 타고 내리도록 한다. 멈춤 단추를 누르고 기다려준다. 뿐만 아니라 건물에 들어갈 때도 문을 열고 안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나올 수 있도록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어떤 분은 고맙다는 눈인사나 말을 하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 반응 없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쑥 들어 가거나 나온다. 그러다 보면 한참을 그냥 문 손잡이를 잡은 채로 서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서울의 한 여자 상업고등학교를 나온 나의 지인이 있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입학 초기 한 달 정도는 문 열고 닫기부터 시작해서 인사하기 등 예절에 관한 것을 배운다고 했다. 또 다른 신학교를 졸업한 어떤 분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심지어 문 여닫기만 일주일간 배운 적도 있다고 했다. 

내가 일하는 죽향초등학교 역사관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인들이 말해 주었던 예의에 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떤 분들은 처음 교실 입구에 들어 오면서부터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지 여부를 물어본다. 아니면 신발을 벗고 양말만으로 들어오는 분도 있다. 물론 이곳 역사관은 실외화 위에 덧신을 신고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그냥 실외화로 입장하게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덧신이 남자분들에게는 작아서 불편하기 때문이다. 

가끔 다짜고짜 신발을 신고 쩌벅 쩌벅 스스럼 없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분들의 복장을 보면 거의가 양복 차림이다. 옷이 날개라는데 여기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 가보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는 꼭 해야 되고 방명록에 이름과 연락처도 기재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기록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나타내는 분도 있다.

오늘도 중년 남자 한 분과 여자 한 분이 방문했다. 이분들은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온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묻는 내 물음에 무슨 신문사라고 하는데 무슨 신문사인지 잘 들리지 않게 웅얼댄다.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혼자 말처럼 한다. 그리고는 같이 온 여자에게 “사진 찍어” 라며 이쪽에 양해도 구하지 않는다.

특별히 박물관이나 전시관의 것을 사진 찍기 위해서는 양해를 구해야 된다. 그곳이 비록 그런 시설이 아니라고 해도 양해를 구해야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예의이다.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했던가. 왠지 처음부터 좀 찜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냥 쓱~ 지나친다. 가만 있을까 하다가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이건 중요한데요”라고 지적을 해 주었다. 그제서야 돌아와 사진을 찍어댄다. 그러고는 갈 때 인사도 한마디 없이 밖으로 휘~익 나간다.

생각 같아선 나도 아무 말 하고 싶지 않지만, 저만치 가는 두 사람을 향해 크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했다. 그제서야 가던 걸음을 멈춘 여자가 돌아서며 인사를 한다. 그 남자는 묵묵부답 그냥 가버리고. 나는 이런 사람을 보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것은 공연장에서도 나타난다. 공연장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 가끔 있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관람을 할 경우 자기 아이를 세워 무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실 특별히 공연 주최측에서 허락을 하지 않는 경우는 공연 마지막까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한 번은 ‘심청전’ 뮤지컬을 관람한 적이 있다.

공연 중간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 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렸다. 또 음악회에서 많이 경험한 것은 끝나지 않았는데 박수를 치는 경우다. 사실 나도 곡이 끝난 것인지 아닌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럴 경우는 조금 기다린다. 지휘자가 돌아서면 박수를 친다. 괜스레 미리 손뼉을 치다 무례함을 스스로 나타내지 않으려는 것이다.   

좀 오래 전 나의 손자가 어릴 때 일이다. 어린 손자를 내가 봐주었다. 요사이 젊은 엄마들이 거의 그렇듯이 내 딸도 자기 아이에게 이것 저것 가르쳤다. 그 중 하나가 방문교사가 집에 와서 아이와 같이 놀잇감을 가지고 무엇을 만드는 놀이를 하는 공부였다. 어느 날은 김밥 모양도 만들고 어느 때는 동물, 또는 자동차 등 다양한 것을 만드는 놀이다.

하루는 선생님이 집에 오자 마자 책상에 준비해둔 자료를 보고는 오늘 하는 놀이의 재료가 아니라면서 일어나 안방으로 쑥 들어간다. 그리고는 장롱문을 열어 젖힌다. 나는 깜짝 놀랐다. “선생님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이러시면 곤란한데요.”생각도 못한 무례함에 나도 모르게 말이 좀 날카로워졌다.

요새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는 것과 연락없이 방문하지 않는 것도 대부분의 시어머니인 노인들에게는 불문율과 같다.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하는 행동을 못마땅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보고 느낀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 젊은 세대에게 모범적이라 할 수 있을지?  몇 가지를 열거해 보려고 한다. 전철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노약자와 무거운 짐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해 설치 해 놓은 것이다. 노인들이 대부분 이용한다. 이 엘리베이터는 일정 시간이 되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도록 입력 되어 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타자 마자 단추를 꾹 꾹 누르며 ‘왜 안되지? 고장인가?’ 라고 중얼거리며 계속 누른다. 물론 누르는 단추 옆에는 사용법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 표시가 눈에 안 들어오는가 보다. 아마 이런 일로 고장이 자주 일어나리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조용히 해야 하는 공간에서 기침을 캭캭캭~ 해댄다. 자연적인 생리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계속 참을 수 없으면 조용히 밖으로 나가 해결을 하면 안 될까? 또 어떤 경우는 휴대폰이 울린다. 빨리 끄면 좋으련만 전화를 받는다. ‘어~ 나 지금 뭐하고 있어. 그려, 알것어. 이따 전화 할겨.’ 그렇게 말은 하면서 계속 ‘어디 있능겨? 아침은 먹었고?’ 끊지 않고 계속 되는 목소리. 

‘노인 일자리’로 일을 하는 분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다. 한 두 명씩 파견되어 일하는 경우는 좀 덜한 것 같은데 한 곳에 여러 명이 일하는 곳은 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분들은 쉬는 시간에 커피를 한잔씩 한다. 그런데 조용히 앉아서 마시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자식 자랑, 자신이 자랄 때의 이야기, 그리고 정치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것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런데 목소리가 점점 커져 다른 건물까지도 다 들린다. 모두 일을 하는 중인데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나이 들면 귀가 잘 안 들려서 그런지 목소리가 엄청 크다. 이런 것을 열거하려면 끝도 없을 것 같다. 

비록 일하는 곳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연세 든 분들이 몇 명 어울려 찻집이나 음식점을 찾는 경우가 있다. 이때 “저기요 여기 커피 0잔과 빈 컵 하나 주세요.” 이런 식으로 인원보다 한 두 명을 뺀 수만큼만 주문을 한다. 비싼 찻값이 아까우니 빈 컵에 나누어 마시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경우 가만히 있지 못한다. 너무 부끄럽기 때문이다. 자기 돈만 아까운가! 찻집 주인들도 비싼 가게 임대해서 장사하는 것은 왜 생각치 못하는 걸까?

또 결혼식의 피로연이나 어떤 모임에서 음식을 먹을 경우가 있다. 지금은 좀 드물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손수건이나 비닐 봉지에 음식을 담아 가져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또 뷔페와 같은 경우 접시 가득 음식을 담아와서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기는 것이 보기에 참 좋지 않다. 

음식만이 아니라 어떤 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때가 있다. 자기 아는 사람과 같이 서려고 큰 목소리로 불러서 중간에 끼워 넣는 소위 말하는 새치기를 하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을 볼 때도 있다.

예쁜 얼굴을 만들려고 거금의 돈을 들여 성형을 하고, 멋진 옷과 신발로 치장을 하는 데는 아끼지 않는다. 내 마음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아름다운 삶이 어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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