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숙(81, 옥천읍 문정리)시니어기자
오희숙(81, 옥천읍 문정리)시니어기자

요즘엔 빈소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 했을 것이다. 육십년 전에 나는 우리 할머니 빈소를 삼년간 지킨 기억이 났다. 삼시세끼를 할머니 살아계실 때 드시는 대로 빈소에 상을 올렸다. 

그때는 우리집 뿐 아니라  돌아가신 어른이 있는 집에는 다  그렇게 했다. 하루는 엄마한테 야단을 맞고 삐져서 할머니 저녁상을 올리지 않았다. 그날 밤 꿈을 꿨는데 내가 밖에 나가 놀다가 들어오니 할머니 친구분들이 항시 계시던 대로 마실을 오셨다. 

들어가며 인사를 하는데 들어가는 나를 야단을 치며 저녁도 안 주고 쏘다니며 온다고 내 오른쪽 다리 무릎 밑을 꼬집으셨다. 
지금도 태몽 같이 눈에 선하다. 한 끼 저녁상 올리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꺼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그 자리가 아프더니 곪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니 너무 아팠다. 그때 친구인 이경자 과장이 보건소에 다닐 때였다.

치료를 해주면서 미련스럽게 이때까지 참았냐고 하며 치료해주었다. 가제 심지가 삼십센티쯤 되었다. 다 나을 때까지 고생 좀 했다. 그 흉터가 지금도 내 엄지 손가락 손톱 만하게 남아있다. 초하루 보름날이면 제사 때 같이 전도 부치고 탕도 끓여 올렸다. 

빈소는 할머니 때 까지만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결혼했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데 빈소는 차리지 않고 초하루 보름날만 삼개월 동안만 올린 것 같다. 할머니한테는 내 모든 것을 다했던 것 같다. 자궁암으로 사형선고 받은 할머니를 10개월을 학교도 그만두고 모셨으니 키워준 공은 다한 듯 하다. 

지금도 할머니 사랑은 잊지 못한다. 추석이 지났다. 코로나에 걸려 오도가도 못 하고 집안에 있었다. 우리 며느리,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는 작은 아버지들이 감해주었단다. 시집제사도 내가 제일 많이 모신 거 같다. 

조부모, 부모 명절 두 번 일년에 여섯 번 종부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여섯번이 문제가 아니라 추석 이쪽저쪽으로 열흘 안에 시부모 제사가 두 번 있으니 보름에 세 번 지내야 되니 문제였다. 

우리 시댁은  제사음식은 안 먹고 다른 찌개에 반찬을 해서 먹으니 그것이 문제고 고민이 컸다. 굴, 갈치, 꽃게 이런 것들을 그때 해먹기 때문이다. 며느리한데 물려주며 두 분씩 묶어 주었고 이번에 할머니, 할아버지 줄였으니 앞으로 남은 것도 곧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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