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숙

황당했다. 지하철 카드가 정지 되었단다. 한 번 두 번 다른 칸으로 옮겨서 몇 번 어제 저녁에도 통과했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요즘엔 직원도 없다. 모두 기계로 하고 있으니 당황해서 앞이 캄캄했다. 기계 앞에서 방방 뛰며 누가 나 좀 도와 달라고 하니 다들 바쁜 아침 출근시간이라 그냥 갔다. 차 시간 놓치면 안 되는데 마음이 더 바빴다. 몇 번을 도와 달라니 오십대 아저씨가 왔다.

“우대로 하셔야 되지요.” 아니요 그냥 표만 뽑아주세요. “나도 바쁜데 어르신 해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하는데 어디서 직원이 왔다. 표를 타고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 카드가 왜 정지 되었나 알 수 있어요?” 하니 “아이고 진작 보여주셨어야죠.” 직원이 카드를 대도 안 되었다. “여기로 나가세요.”하며 옆 창구로 나가게 했다. 나를 도와주려던 아저씨는 한 대를 놓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못 타셨네요. 고마웠어요. 죄송하고요. 인사를 하고 다음 차를 탔다. 영등포에서 내리니 개찰을 안 해서 못 나간단다. 참 요즘 기계 똑똑하다. 할 수 없이 옆으로 나와서 이 표를 반납해야 되는데 받지를 않는다.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안내하는 곳에 주었더니 “여기서는 오백원을 못 받으니 저기 가서 하세요.” 기계 가서 하란다. 오백원은 필요 없다고 하며 왔다. 더욱 황당한 것은 교통카드로 하면 되는데 왜 표를 사려고 했는지 더 기가 막혔다. 이렇게 안 돌아가는 머리 가지고 어쩐단 말이냐.

요즘 이것뿐이 아니었다. 밖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집에 벗어놓은 코트 주머니에서 나왔다. 복지관에서 식권을 사서 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데 없다. 가방을 샅샅이 뒤지며 찾았는데 없었다. 전에는 다시 사면 되었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한 장 밖에 못 산다. 그냥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지갑을 뒤졌더니 얌전히 접어서 넣어 있었다. 어이없다. 수업 끝나면 식사하러 가야 하는데 무엇하러 지갑에 넣었을까, 넣었으면 왜 생각이 안 났을까? 무슨 습관으로 은연중에 넣었을까 녹슨 기억력이 한심스럽다.

나도 내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내 생각이 백프로가 아니라 거짓말이 많다. 싱크대 앞에서 냉장고 문 열고 들여다 보면 왜 왔나 모른다. 이런 것은 다반사다. 기차에 오면서 카드를 자세히 봤다. 서울특별시 시니어패스(어르신 교통카드)였다. 내가 서울시에서 옥천으로 이사 온 지가 벌써 일년 구개월이 되었다. 그런데 몇 번 서울에 가면 그냥 사용하면 되었다.

어차피 무료니까 썼는데 2015년 1월 15일로 서울 시민에서 퇴출 되었다. 이제 기계 앞에서 무임승차 하는 것 차분히 배워야겠다. 건망증으로 끝나면 되는데 치매는 아닐까 걱정이 된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백세시대라 하는데 건강하게 백세여야지 누워서나 제정신 아니게 오래 살면 무엇 하겠나 싶다. 

어제 아침을 먹으며 손녀딸에게 할머니 꿈이 있다. 전에는 꿈이 없었어. 그래서 할머니는 하나님께 75세까지만 살게 해주세요 했다. 한 삼년 동안 시골에서 흙장난하고 놀다가 조금 더 살으셨으면 좋을텐데 할 때 간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꿈이 생겼어, 할머니 이름으로 책 한권 나오는 꿈. 참 좋지. 너희들도 할머니 위해서 기도해주렴 했는데 한시간도 안 돼서 황당하게 처신도 못하는 한심스런 노인으로 변했다.

그래도 아직은 자신 있었는데 하면 된다고 다짐했는데 한 살 더 먹었다고 그렇게 차이가 난단 말인가. 크는 아이들이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큰다지만 늙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제 점심 끝나고 군서 장령산으로 드라이브 하면서 코에 바람 넣을 때는 참 상쾌했다. 활짝 갠 하늘을 보면서 내일을 꿈꾼다.랑이 다시금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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