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1959년 추석은 너무나 힘든 명절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추석이나 설 때는 고향을 찾는 것을 당연시 하던 때이다. 그 해 추석에도 마찬가지로 시골을 찾아 간 사람들 때문에 도시는 휑했다. 우리집은 찾아갈 시골이 없어 그냥 음식을 장만해서 차례를 집에서 지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좋은 점은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으면서 딩굴딩굴 하는 것이다. 더 신바람 나는 건 그 기간에는 공부를 안 해도 되고, 가끔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석날 아침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바람의 세기가 대단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유리창문을 통해 보이는 밖은 함석 지붕들과 간판들이 휙 휙 날라 다녔다. 무서워 감히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주택 구조가 화장실이 대부분 집 밖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힘들었다. 오물이 넘쳐 흘러 말 할 수 없이 더러웠다. 

그 당시 일기 예보는 지금과 같이 잘 맞지 않았다. 태풍과 같은 재해에 대한 것을 미리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추석에 아무 걱정 없이 고향을 찾은 것이다.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교실의 자리가 군데 군데 비었다. 시골에 간 아이들이 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학생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께서도 안 오신 분이 많아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했다. 

며칠 후 포항이 고향이셨던 사회 선생님께서 나오셨다. 태풍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차례는 지내지도 못하고, 집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와 가족 모두 순식간에 큰 물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내려 가고 있었단다. 흙탕물이 콸콸 넘실대는 개천인지 도로인지도 구분이 안 되는 상황에서 둘러보아도 가족들이 안 보여 ‘이젠 모두 죽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그냥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셨단다.

발에 무언가 걸려 손으로 잡으니 나무 같아 그걸 꽉 잡고 버텼다고 하셨다. 그런데 뭔가 다리에 물컹거리는 것 같아 한 손으로 만졌더니, 으악! 큰 뱀. 기겁을 하고 만약 독사면 물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있는 힘을 다해 꽉 잡아 패대기를 치듯 물속으로 던져 버렸단다. 던지면서 느낌이 이상해 보니 이미 죽은 것 같았다고 하셨다. 아무튼 이 선생님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들이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그 시절은 국가에서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이 미약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일주일쯤 지났을 때 수해를 입은 분들을 돕기 위한 행사가 있었다. 천 조각으로 작은 리본을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만들었다. ‘수재민을 도웁시다.’이라고 썼던 것 같다. 가슴에 달 수 있게 했다.

그것을 전교 학생들이 리본 1매에 100원씩 판매하기로 했다. 당시 라면 1봉 가격이 10원 정도였으니 가격이 꽤 되는 셈이었다. 한 사람당 리본 20장을 배당 받았다. 나와 친한 친구 몇 명은 큰 시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팔기로 했다. 이게 웬일이야! 어떤 아저씨가 10매를 한꺼번에 사 주셨다. 그리고 나머지도 금방 다 팔았다.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고 나 혼자 학교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직 하나도 팔지 못해 울상이 된 친구를 도왔다. 그런데 그 친구의 것은 왜 그리 사주는 분이 없는지 거의 저녁 때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래도 우리는 피곤하지 않았다. 뿌듯했다.

이 일은 우리 학교에서 시작되었지만 다른 학교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도움을 주려는 움직임이 여기 저기서 일어났다. 그 이외에도 여러 중,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수해지역 복구 작업에 동원되어 힘을 보탰다. 

지금 생각해도 태풍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처음 느꼈다. 과학이 발달되었다고 하지만 자연의 어마어마한 힘을 극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올해도 추석을 며칠 남겨 두고 ‘힌남노’라는 태풍이 몰려온다고 연일 메시지가 뜬다. 5일이나 6일쯤 남해안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태풍은 그 엄청난 ‘사라호’나 2003년도에 어마 무시하게 휩쓸고 간 ‘매미호’ 보다 더 강한 태풍일 것이라고 한다. 상상이 잘 안 된다. 아직 한반도에 도착하려면 이틀 정도 있어야 한다는데 지금도 바람이 많이 분다. 제발 소멸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약하게 지나가길 바란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인간의 힘 밖의 어떤 엄청난 힘을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조용한 명절을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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