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극장을 가본 지가 여러 해 지났다. 어떤 영화는 가슴 찡한 울림으로 오랫동안 남는 것도 있고 어떤 영화는 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 자버린 것도 있다. 나에게는 참으로 잊어버릴 수 없는 영화 한 편이 있다. ‘들장미’라는 영화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중간고사를 마치고 우리 친한 친구 몇 명은 극장으로 갔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든 것이 좀 꺼려지긴 했으나 이 대낮에 누가 우리를 잡으랴! 당시는 학생들이 마음대로 극장 출입을 할 수 없었다. 더더구나 버젓이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꽤 용감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보니 우리 학교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두들 이심전심이었을까? 서로 아는 아이들끼리는 눈인사도 하고 수다도 떨었다. 극장 안에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예고편과 광고를 마치자 본 영화가 막 시작되었다. 작은 자동차, 아마 요사이 미니버스같은 차였던 것 같다. 그런 모양의 차는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었다. 아무튼 그 차에 소년들이 타고 노래를 부르며 사과밭인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런 멋진 곳을 달리는 운치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 때 누군가 “숨어~ 빨리~ 모두 뒷문으로 나가~”라는 큰 소리가 났다. 내 친구들과 나도 가방을 들고 후딱 뛰었다. 어떤 남자가 서 있는 문으로 나갔다. 나는 무슨 물건을 쌓아둔 곳에 숨었다. 같이 간 내 친구들은 안 보였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극장 측의 사람인 것 같은데 “학생 여기 이러고 있으면 잡혀. 빨리 뒷문으로 빠져 나가라고”하고 일러준다. 그가 알려준대로 밖으로 나왔다. 다른 반 아이들 몇 명도 같이 나왔다. 두리번 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며 얼른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다음날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담임 선생님께서 아침 조회시간에 “어제 극장에 갔던 사람들은 모두 교실로 오라”고 하신다. 우리반 애들 몇 명만 빼고 온통 다 간 거였다. 우르르르 교무실에 들어서자 깜짝 놀랐다. 교무실 가득하고도 복도까지 다른 반 애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학생 주임은 담임 선생님께서 각자 반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아마 교무실이 학생들로 꽉 차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나보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키가 크신 수학 담당이셨다. 아이들에게 모진 소리 한번 하신 적이 없으셨다. 교실로 돌아온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야! 이 녀석들아 학교에서 그 영화 단체관람시켜주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이냐?“ 일단 오늘은 제자리에 앉아 반성문 써서 내라고 하셨다. 이 상황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로 가득 채워 썼다.

다음날은 극장에 갔던 사람 전부 강당에 모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무섭기로 소문난 학생주임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러니 모두 학부형을 모셔오라고 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버지가 오셔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정말 큰일 났다. 우리 아버지는 학교 규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교육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아시면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범생인줄 알고 계시는데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잘 안 왔다. 어깨 축 늘어뜨린 내 꼴을 본 집에서는 내가 어디 아프냐고 자꾸 물어본다. 대답도 하기 싫었다.

학교에서는 사흘째 매일 오후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내 단짝 친구는 자기 아버지께 이실직고했단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셨다. 대단히 유머가 있으신 분이었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라며 용서를 받았단다. 그의 얼굴은 걱정이 가라앉아 보였다. 부러웠다. 수업 중간 쉬는 시간은 온통 아버지 모셔와야 하는 문제로 부산스러웠다. 

다섯째날이 되던 날, 담임 선생님께서는 “야! 너희들 살았다”하시며 웃으신다. 학교 교직원 회의에서 많은 학생들이 학교 허락없이 극장에 간 것은 크게 잘못했지만, 영화가 학생들이 봐도 될 만한 영화여서 모두 용서해주기로 했다고.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 소리쳤다. 옆 반에서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이번 일은 극장 측에서 학생들이 많이 입장하는 것을 보고 단체관람인 줄 알고 우리 학교에다 ‘인솔교사는 곧 오시느냐?“고 전화를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단다. 

몰아친 회오리가 멈추자, 입장료 생각이 났다. 영화는 보지도 못하고 돈만 날린 것이 아까웠다. 아직도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들장미!’ 너 때문에 가시에 찔리는 이 곤혹을 치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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