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88, 옥천읍 문정리) 시니어 기자
이정희(88, 옥천읍 문정리) 시니어 기자

6.25가 끝나고 영동읍이 재건되고 정상적인 집이 아니고 판잣집 양철로 꾸며 이렇게 살며 심지어는 양식이 없어 술 만드는 술독에 가서 술찌기미를 얻어다 끓여 때거리를 떼웠다. 하물며 역전에 한아름되는 소나무 쌓아 놓은 곳에 가서 겉껍질을 벗겨 내고 속껍질을 벗겨와 끓여 먹으면서 지내는 집이 많아 비지죽을 끓여먹는 가정이 많았다. 심지어는 식구가 8, 9명씩 되는 가정에 땟거리가 없어 한 끼 먹고 하루 종일 굶는 집이 많이 있었다. 

바로 우리 집 옆집이 그런 사정이 있었다. 형제간에 서로 나가 품이라도 팔아 돈을 벌어오라고 쌈박질을 하고 늙은 할머니는 대변을 보아 벽에다 다 바르고 지금으로 말하면 치매라는 병이었다. 너무나 딱하고 볼 수가 없더라. 그러나 나는 그 찌기미 죽과 소나무 껍질 죽을 먹고 싶어 내 밥을 가져다 먹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그 집 사정이 너무도 딱하고 볼 수가 없어 나는 어머니가 밖에 나가시면 쌀독에서 쌀을 퍼내어 그 집으로 가져다 주고 여러 번 반복했다. 

우리 어린 친구중에 아버지가 정미소하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와 내가 하는 말이 저 집에는 식구는 많고 할머니는 대변을 방바닥에 보고 심지어는 배가 고프니 대변을 먹었는지 입 언저리에 대변 투성이었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그 친구도 그 집이 딱하다 하며 어린 우리들은 어떻게 도울 수가 없을까 생각하던 중 어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우리 정미소에 벼를 찧어주며 싹으로 쌀을 받아 모아 두는 데가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한테 이야기하면 혼만 나니까 몰래 들어가서 쌀을 가져다 도와주자 했다. 

어린 마음에 그집 사정이 너무나 딱하고 비참한 생각만 하고 나쁜 짓 한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어린 친구 3명이 밤 10시가 되면 정미소에 들어가 많은 쌀을 퍼내면 표가 나니까. 한 두끼 정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몰래 훔쳐다 가져다 주고 했는데, 한 20일이 되는 데 그 친구가 와서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가 쌀 모아 놓은 것이 자꾸만 줄어들어 이상한 일이다'고 하더라.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이렇게 도와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 아니란 것을 어린마음에도 깨닫게 되어 그 길로 멈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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