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열차 고장, 귀가길에 7명이 여중생, 2명 중상
선로바꾼 특급 등뒤 덮쳐 정비 불량, 무리한 운행이 사고 불러

옛날 옥천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1989년 옥천신문이 나오기 전 옥천 소식이 궁금하다고요? 옛날 신문을 파헤쳐 그 옛날 옥천 소식들을 속속들이 알려드립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검색해보니 다행히 1920년도부터 옥천이란 키워드로 여러 기사가 나오더라구요. 그 중 흥미로운 기사를 찾아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100년 전 과거의 옥천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같이 읽어보아요. 

10월19일 하오 8시12분쯤 충북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 경부선 철길상행선(서을기점 198km)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이원중학교 2년 이정분양(15) 등 여학생 7명과 남자중학생 1명, 방위병 1명 등 모두 9명이 서울발 마산행제 53특급열차(기관사 정명모, 52)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지고 여학생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날 숨지거나 중상을 입은 학생들은 이원역에서 대전발 김청행제 217호 통근 열차를 타고 지탄역에서 내려 철길을 건너다 변을 당했다. 사고 지점은 지난해 7월25일에도 열차추돌사고가 났던 지탄역 남방1km 지점으로 학생들은 하행선으로 기차가 달려오는 것으로 알고 이를 피하기 위해 마음 놓고 상행선 철길을 건너다 달려온 열차에 치여 참사를 빚은 것이다. 

이날 53특급열차는 앞서가던 제 217호 보통열차가 고장이나   지탄역 50미터 전방에 멈춰 하행선이 막히게 되자, 이원역에서부터 상행선으로 노선을 바꾸어 운행해 사고의 원인이 된 것이다.

부상자들은 대전시내 충남대 부속병원과 영동읍내 제일병원에 입원가료중이나 중태다. 경찰은 사고열차의 기관사 정씨를 업무상과실치사상혐의로 입건됐다. 이 사고로 옥천을 중심으로 한 경부선의 각급열차가 1시간씩 지연됐다. 

영동군 심천면 구탄리의 통학생들이 탄 통근열차가 이원역을 떠난 것은 정시보다 15분 늦은 하오 7시29분. 

학생들이 탔던 열차가 간이역인 지탄역까지 오는 동안 기관차의 에어호스가 빠져 두 번이나 고장을 일으켜 지탄역 구내 약 50미터 지점을 앞두고 멈추자 영동군 심천면 구탄리의 통학생 60여 명은 차에서 내려 하행선 철도옆 길을 따라 마을쪽으로 걸어갔다.

학생들이 지탄역 남방 300여 미터까지 철도 옆길을 따라 걸었을 때 뒤에서 기적이 울려 뒤에서 부산행열차가 하행선으로 오는 줄 알고 하행선 철길에서 상행선 쪽으로 건너 시속 90km로 달려오던 열차가 덮쳐 순간적으로 참사를 빚은 것이다. 
사고 순간 재빨리 피한 남학생들은 피해가 적었고 미처 피하지 못한 여학생들이 대부분 변을 당했다. 

'뒤에서 차소리가 나 하행선 열차가 오는 줄 알고 상행선 철길로 갔는데 갑자기 불빛과 함께 시커먼 쇳덩이가 밀어닥쳐 그대로 앞으로 굴렀다'고 위기를 면한 박대웅 군(16, 이원중3)은 사고 순간을 말했다. 

또 사고 지점을 지나다 사고 순간을 목격한 이세기(44, 이원면 지탄리)는 "학생들이 하행선 철길을 건너 우르르르 상행선 쪽으로 향하는 순간 지탄역쪽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열차에 받혀 10여m씩 나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코스모스가 활짝 핀 사고현장 주변에는 학생들의 책가방과 도시락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운동화와 공책들이 피에 뒤섞여 사고 당시의 참상을 말해 주었는데 김영옥(14, 이원중1)양은 책가방을 안은 채 그대로 숨져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온 박현숙양(16, 이원중3)의 어머니 박순례(46)씨는 "학교에서 운동회를 마치고 20일은 개교기념일이라 쉬게 돼 지겨운 열차 통학을 하지 않아 좋다고 하더니 이게 왠일이냐"고 통곡했다. 

희생당한 학생 중 이경숙양(19)과 이점분양(15)은 자매간, 언니 경숙양은 옥천여고 1학년이고, 동샘 점분양은 이원중 2학년이었다. 무리한 철도운행과 위험한 철길 통학이 빚은 어처구니 없는 참변이었다. 

학생들이 타고 온 217호 통근열차가 이원역에 닿은 것은 정시보다 15분이 늦은 하오 7시29분. 1분 동안 멈춘 217호 통근 열차는 다음역인 지탄역까지 가는 동안 기관차의 에어호스가 빠져 두번이나 고장을 일으켜 열차 운행이 지연되는 등 지선열차의 정비가 엉망이었고 또 철교 위에서 두번째 고장을 일으켜 정거하고 있는 앞서가던 고장열차를 앞질러 가기 위해 다음 열차인 53특급열차를 상행선으로 무리하게 운행토록 한 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된다. 

경향신문 1978년 10월20일자 

 

열차사고로 청소년 9명이나 죽은 대참사였다. 이 기사를 보고나서야 이런 사고가 난 줄 알았다. 왜 지탄역에는 이 사고로 안타깝게 죽은 위령비 하나 세워있지 않는 것일까. 지탄역은 이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무인역이 되어버렸다. 이 마저도 언제까지 갈지 모를 일이다. 지금이라도 44년 전 열차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난 청소년들을 위해 위령비 건립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기억해야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더 이상 사고가 인재가 아니려면 가슴이 아프더라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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