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급차량 부탁에 '모르겠다'

며칠전 퇴근하여 집에 들어 갔더니 집안이 온통 연탄가스로 꽉 차 있었다. 방문을 열었더니 아내가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었다. 당황한 나는 정신을 잃은 아내를 업고 읍내 병원으로 가려 했으나 천근만큼이나 축 늘어져서 등에 업어도 몸의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고 업고 가다간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했다. 

옆집 사람에게 부탁해서 읍내 택시주차장에 전화를 걸어 차를 보내달라고 했으나 저녁밥을 먹으러 가야 한다며 못 가겠다는 것이다. 다급한 나머지 지역 관할 경찰서에다 또 전화를 걸어 급한 사정 이야기를 하고 택시를 좀 보내달라고 했으나 이 곳 역시 '당신네들 답답할 때만 찾는 게 경찰이냐'며 모르겠다는 말이다.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관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수 없이 손수레를 빌어 병원으로 태워갔고 하늘이 무심치 않았든지 아내의 목숨은 건졌다. 

나는 오랜만에 제정신으로 돌아온 아내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비록 세상이 각박할지라도 나만은 남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지언정 남을 언짢게 하는 인간이 되지 않겠다고. 

충북 옥천군 옥천읍 양수리 김일 동아일보 1977.12.20

주민이 직접 신문에 투고한 기고글이다. 얼마나 다급하고 정신이 없었을까. 택시기사도 경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하마터면 아내를 잃을 뻔한 사연이다. 옥천신문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 이야기다. 이런 마음들이 모아져서 옥천신문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기관의 복지부동과 근무태도 등을 대서특필하며 보도를 했을 것이다. 그래도 기고문은 동아일보 일간지 4면에 일단기사로 실렸다.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