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임- 청산면 백운리

박영임 사회복지사는 말한다.
“웃는데 돈 들어가나요?”

 

바가지에 물을 담듯 내 영혼에 사랑을 담아,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었지!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은 모래를 양손에 쥐는 것과 같아요. 움켜잡으려고 하면 손이 아프고 손을 펴면 모래처럼 쏟아져 버립니다. 그래서 나는 베풀면서 살기로 했어요.
꽃집 사장님, 웃음 치료사, 기타강사, 사회복지사, 이 모두가 그녀의 직업이다. 한 가지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녀는 말한다. “남의 행복을 구하면 나는 더 행복해 진답니다.”

■ 웃음 꽃방에서

올해로 20년째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꽃집이지만 쉼터이고 사랑방이다. 우리 꽃방의 꽃으로 수많은 분들이 서로 주고받았을 기쁨과 감동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따뜻해진다. 돌아보면 꽃집을 운영해 오면서 돈을 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리 적은 금액의 화분이라도, 아무리 먼 거리를 왕복해야 할지라도 고객이 원하면 배달을 해 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가게가 비어있을 때 방문하는 고객은 전화로 상담해 주었고 현금으로 지불하기를 원하면 전화기 밑에 돈을 놓고 가시라고 했다. 

서울 사는 손녀딸이 할머니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한 꽃 화분을 가지고 굽이굽이 좁은 길을 운전하고 가다가 바퀴가 길 밖으로 빠진 적이 있다. 애써서 도착한 돌담 집에서 나오신 할머니가 화분을 받아 들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지으셨다. 

그날은 옥천 장에 내서 팔려고 잡아서 모아 놓았다는 함지박 가득히 담겨있던 올갱이를 몽땅 사가지고 가게로 돌아 왔다. 배달을 나갈 때면 여행을 다녀온다는 마음으로 출발한다. 꽃다발을 선물하러 갔다가 나는 더 많은 행복 보따리를 받아 가지고 오는 셈이다. 

초등학교 때 가족 사진 앞줄 가운데 모자쓴 아이....
초등학교 때 가족 사진 앞줄 가운데 모자쓴 아이....

■ 아낌없이 사랑 주셨던 아버지, 이웃들은 “참 아까운 사람이었는데...”

청산에서 나고자란 나는 밀가루 신자(생활이 어렵던 이웃들에게 성당에서 밀가루를 나눠주고 고마운 마음에 성당에 다니며 신자가 된 분들)였던 어머니의 고생도, 아버지의 고단한 삶도 모두 알아차리는 건 언니 몫이라 유년시절에는 아버지의 사랑만 듬뿍 받고 자랐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얼마 후에 우연히 이웃 동네 어르신들께 “참 아까운 사람이 일찍 갔어”라는 말을 들었다. 나의 바른 인사성은 다 아버지 덕분이었다. 어린 아이 때부터 골목길을 뛰어 다니며 놀다가 어른을 보면 무조건 인사부터 했다. 아버지는 자주 말씀하셨다. 

“인사하는데 돈 드는 것 아니잖니?” 

어린 아들 하나를 잃고 그 뒤에 태어난 나를 아버지는 끔찍이 사랑해 주셨다. 5살 때쯤에 옷에 달린 방울을 마이크 삼아 잡고 아버지 앞에서 노래하면서 귀여움 받았던 뭉클한 추억이 있다. 엄마도 시장에서 난전도 펼치시고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우리 집은 따뜻했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전에 나가서 롯데리아(매드리아)에서 한 달 일하고 있을 때 어느 날 부모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아버지는 “영임아 집에 가자”하시며 내 손을 꽉 잡으셨고 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말없이 따라 왔다. 지금의 나는 그날 아버지의 결단 덕분이었다, 학교 행정실에 취업을 하고 업무로 연결돼 있던 건실한 청년, 남편이 우연히 던진 “첫눈 오는 날에 만납시다”라는 말이 첫 데이트가 되면서 결혼에 골인했다. 

남편 재직시절에 우리 가족이 함께 갔던 연수원에서 열여섯 명의 인원이 함께 모여 기타로 연주 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었다. 기타를 배우고 싶어하는 나에게 남편이 자기 친구의 기타 하나를 가져다 주었고 그 후로 나의 기타 사랑은 시작되었다. 좋아하다 보니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를 했고 이제는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기쁘게 가르쳐 주고 있다. 

■ 웃는데 돈 들어가나요?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웃음은 전염력이 폭발적이다. 무슨 일이든지 잘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듯이 웃음도 그렇다. 웃음연습을 하지 않아서 웃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웃는데 돈 들어 갑니까” 라는 말을 웃음치료 모토로 삼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밑져야 본전이다. 손해를 볼 일이 없으니 당장이라도 시도해볼 만한 것이다. 웃을 일이 생길 때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인생이란 한자를 풀어보면 알 수 있듯이 소가 네 개의 발로 좁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어렵고 힘든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먼저 웃음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현실이 내 앞에 펼쳐진다. 

나는 웃음치료 강의를 해오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대로 펼쳐진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우울한 감정 속에서 빠져 나오기를 원한다면 그 도구로 웃음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웃음연습을 할 때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웃음연습을 하고 난 후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즐겨야 한다. 그 생각과 그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잘 다루어야 한다. 감정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분노, 두려움, 외로움 같은 감정들도 그대로 받아들여서 내 안에서 용서와 평안으로 순화시키는 연습을 해야 한다. 웃음, 좋은 감정, 연습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 사명감으로, 아동센터에서

“너는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야! 너는 잘 될 거야! 너를 믿는단다!”

한 아동에게 계속해서 해 주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내 마음속에 갖고 있던 생각이기도 했다. 6개월이 지난 후에는 그 아이의 부모님과 심리상담 선생님의 염려와는 다르게 아이가 바르고 예쁘게 성장해 있었다. 작은 것일지라도 그 아이에게서 장점이 보이면 나는 아낌없이 칭찬을 해 준다. 칭찬과 격려를 먹고 성장하는 아이들이 맺는 열매는 단단하고 예쁘다. 

청산지역아동센터가 개원했을 때 29명의 아이들이 모집되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직원은 단 두 명뿐이었다. 우리는 기초자료가 확보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을 해야 했고 업무 외적으로 센터운영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함께 해 나가야 했다. 때로는 힘에 겨웠지만 센터에 등원하는 해맑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다시 힘이 났다. 이제는 설립 된지 만 2년째가 되면서 한 가지씩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산면 내 어르신들이 급식과 청소를 맡아서 해 주신다. 때로는 부산스럽기도 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눈에 사랑이 넘쳐흐른다. 손주들을 바라보듯이 따뜻하고 정겹게 대해주신다. 한 가지 시급한 문제는 보호자가 늦게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퇴근 시까지 공백이 생기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정책 차원에서의 보완이 하루 속히 필요한 부분이다.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라져가는 시골마을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센터로 만들고 싶다. 

아이들을 보면서 풀 자체로 자라나서 그 틈에서 꽃을 피우는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 주는 작고 순수한 아름다움과 마주한다. 하늘화랑에서는 흰 구름이 시시각각 변화하면서 예쁘고 신기한 그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 따뜻한 마음을 아이들과 나누면서 나도 다시 ‘아이 같은 마음’의 어른으로 한 발 더 내딛으며 아이들에게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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