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시니어기자

죽향초 운동장 한편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무슨 놀이를 하려는 것 같다. 가위바위보를 한다. 와! 큰 소리를 치는 아이들이 있는데 다른 몇몇 아이는 진 편에 속하는지 가만히 서있다. 보고있던 나는 괜스레 웃음이 난다. 나도 참 많은 가위바위보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즐거운 놀이를 하면서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특별한 가위바위보에 대한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50대 중반 때 일이다. 'I.A.V.E(세계자원봉사자대회)'가 1993년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 나는 처음 참가했다.

세계 각국에서 참가하는 인원들이 엄청 많았다. 공항에서부터 일본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대회장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무료는 아니지만, 아주 저렴하게 일주일간 사용할 수 있었다. 등록을 받고 있던 직원이 내가 보낸 예약서류가 없다고 한다. 직원이 내 국정과 이름 등 몇가지를 적고 방을 배정해주겠다고 했다.

그때 이 행사장에서 예약과 숙소 등의 배정 총책임을 맡은 기골이 장대한 중년의 일본 여자가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오늘 예약한 것으로 해줄테니 내일부터 방을 사용할 수 있다며 완강하게 거부한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보낸 서류를 자기네가 실수로 없엔 것인지 아니면 찾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하는 수없이 가방을 들고 일본 데이코쿠호텔로 갔다.

비싸기로 유명한 호텔에서 거금을 내고 하루 숙박을 했다. 오자마자 일본으로부터 차별받은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다음날 방을 배정받았다. 침구를 매일 갈아주어 너무 좋았다.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매일 한차례 모두 강당에 모여 강의를 들었다. 오후에는 여러개로 분반을 해서 자신이 참여하고 싶은 반에 들어가면 된다.

영어로 진행이 되어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많은 자료를 제시하고 사례를 발표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행사 막바지에 각자 관심있는 곳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공장, 학교, 공기업, 공공기관, 미술관 방문 등이 있었다.

나는 도쿄에서 한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마루키 미술관을 찾았다. 집 앞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100년이 넘은 고택과 현대식으로 지어진 미술관에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루키는 화가 이름이고 92세 노인이었지만, 우리들 앞에 나와 인사하고 잠시 시간을 내주었다.

전시된 그림은 대형작품으로 검정, 회색, 빨강색으로 그림을 그렸고 원폭 피해를 표시하는 그림들 뿐이었다. 이 때 우리를 취재하는 NHK텔레비전 방송이 세 사람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내가 첫 번째, 다음이 폴란드 청년, 그리고 마지막 일본여자를 순서대로 이 미술관에서 느낀 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 원폭 피해를 받은 그들이 아무 도움없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언어 때문에 다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자국어로 거침없이 말하는 일본 여자는 일본인들이 원폭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모른다며 오죽 비참했으면 그림으로 표현해서 알리는 화가가 있고 글로 쓰는 작가가 나왔겠냐며 일장연설을 한다. 화가 났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그의 말을 이어 '아니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는데 당신들은 당신들의 댓가를 받은 것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 죄없이 온갖 고통을 당한 것이 아무 양심에 가책이 없는지 묻고 싶다'고 쏘아댔다. 그날 TV에서는 세 사람 중 나를 빼버리고 두 사람만 인터뷰하는 것으로 나왔다.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날 아침 게이오대학을 방문하여 강당에 모였다. 다 한꺼번에 점심을 먹을 수 없어서 어느 쪽이 먼저 먹을 지 '짱겜뽀(가위바위보의 일본말)'로 결정할 테니 강당의 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 두 팀으로 나눌테니 각팀의 대표는 나오라고 했다. 나는 일본 남자와 함께 대표로 겨루게 되었다. 

나는 그 때 왼손을 들어 오른손 엄지 손가락으로 왼손등을 아래에서 위로 밀어올려 주름을 만들었다. 모든 시선이 작은 체구의 나에게 쏠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로 두 손을 꽈배기 꼬듯 돌려 손가락을 맞잡고는 그 손을 돌려 한바퀴 돌린 후 눈을 갖다 대었다. 실내는 조용해졌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겼다. 드디어 두 사람은 마주 서서 사회자 구령에 따라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와아! 내가 승리!'하고 손을 번쩍 위로 들었다. 조용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유럽권을 비롯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위바위보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날 점심은 당연히 우리쪽 오른편에 앉았던 사람들이 먼저 먹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겨서 기쁜 이유는 일본을 이겼다는 데 있었다. 개인적인 것으로도 첫날 숙소문제, 마루키미술관에서의 인터뷰 문제 등의 불쾌함을 한방에 날려버린 것 같아 너무 기뻤다. 한마디로 속시원하게 유쾌, 상쾌, 통쾌했다. 만세,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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