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보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색한 건 둘째 치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상대가 불순한 의도로 내게 접근한 사기꾼이면 어쩌나. 그 뿐인가, 말은 토씨 하나에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버리고 듣는이의 생각에 따라 의도가 왜곡되어 전달 되기도 한다. 
그러니 그들의 거절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낯선 전화번호를 누른다. 연결음이 간다. 소리가 멈추더니,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윤종훈 기자가 인터뷰를 하고있다.
윤종훈 기자가 인터뷰를 하고있다.

 ■ 우리 동네 상가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묻고 또 묻다

그의 하루는 낯선 목소리와 거절들로 가득하다. 윤종훈(32,마암리)은 옥천에 있는 예비사회적기업인 커뮤니티디자인회사 ㈜우리동네에 소속된 기자다. 그는 매주 우리 지역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신문 ‘오크지’에 기사로 담아내고 있다.

오크지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우리 지역상가의 이야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무가생활정보지다. 뿐만 아니라 취재를 하며 알게 된 이야기를 옥천FM공동체라디오에서 ‘우리동네이야기’라는 프로그램으로 풀어내고 있다. 옥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쉬는 날에는 걸어서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뷰를 따내는 것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어떤 때에는 50 곳에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모두 다 거절당한 적도 있다. 홍보비 한 푼 받지 않고 상가의 이야기를 기사로 싣는 것이지만, 무료가 확실한지부터 홍보가 되긴 하는지 등등 걱정이 앞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각자가 겪은 어려움도 다양할 터이니 그들의 으심을 이해한다. 인터뷰를 요청할 때마다 윤종훈씨는 “우리 지역 상가의 이야기를 통해 무료로 상가를 홍보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지역에서 파는 음식, 물픔 등을 지역주민들에게 소개하는 신문이고, 사장님의 가게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한다.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그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그의 최선이다. 그렇게 인터뷰 요청이 성공할 때면 기쁜 마음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 우리 동네 상인들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힘이 되기를

윤종훈씨는 “오크지는 지역경제 활성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흔들린 지역경제 속에서 지역의 상인들은 직접적으로 그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다. 옥천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위태롭게 흔들리는 삶이 마음에 와닿는다. 눈시울이 저절로 붉어질 만한 막막한 순간도 있다. 그래서 인터뷰로 만난 취재원은 인터뷰가 끝날 때 즈음엔 힘을 내길 바라는 우리 동네 가게 사장님으로 기억하게 된다고.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지역 주민들에게도 그 이야기가 와닿을 수 있도록 기록하고 있다. 얼마 전 윤종훈씨는 몇 달 전에 만났던 취재원에게서 “늦었지만 기사 잘 읽었다. 나만큼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게 슬프지만 이상하게 힘이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생길 때가 있다. 세상과 동떨어진 어둠 속에서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을 들고 있는 느낌이 들고, 그 때 드는 막막함과 무기력함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와 같은 상황을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

취재원들의 그런 연락은 윤종훈씨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주민들에게 상가를 소개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서로의 고충을 공유하고, 기사를 읽으며 힘을 낼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우리지역 소상공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 윤종훈 기자의 모습
우리지역 소상공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 윤종훈 기자의 모습

■ ‘말’로도 전하는 ‘우리동네이야기’

20년을 넘게 운영한 가게를 그만두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울 거라는 사장님부터 이제 막 옥천에 살기 시작해 가게를 준비 중이라는 사장님까지, 인터뷰로 만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표정들이 진하게 남았다. 작년 겨울 옥천FM공동체라디오가 개국하며 시작한 ‘우리동네이야기’ 프로그램을 통해 윤종훈씨는 그들의 이야기를 말로도 풀어내고 있다.

지면에 담지 못했던 내용이나 한 번 더 소개하고 싶은 지역인들의 삶과 상가를 말을 통해 다시 한 번 생생하게 풀었다. ‘우리동네이야기’를 진행하는 시간은 윤종훈씨가 기자로서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가 만나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라디오에서 다시 이야기하면서, 저를 돌아보곤 해요. ‘내가 이 사람을 이만큼 까지만 알고 왔구나,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게 조금 더 노력해볼걸’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인터뷰에 응한 취재원에 대한,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상인에 대한 그의 애정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 옥천을 알아가는 시간이 ‘고맙습니다’

옥천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윤종훈씨가 옥천에 온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공과대학에서 공부를 하다 대학원까지 갔다. 6개월간 연구소에서 공부를 하다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고 대학원을 그만뒀다. 그 시기에 기자가 된 친구를 보며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지만 두려움이 있었다. 그는 두려움과 막막함을 가지고 잠시 쉬며 생각을 정리하고자 인도로 여행을 갔다.

인도 여행에서 그는 “더 한 두려움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인도 여행 중 반강제적으로 관광사기를 당했는데, 사기임을 알고 있음에도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내야만 하는 위험한 상황을 겪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행이 끝날 무렵 언론인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한 두려움과 맞설 용기가 생겼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언론학을 배울 수 있는 대학에 다시 들어갔고, 기자가 됐다. 

옥천에 온 지 2년이 된 그는 인터뷰를 하며 오히려 취재원들에게 배우는 게 참 많다. 몇십년을 옥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옥천을 꿰고 있었다. 처음 보는 기자에게 옥천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는 사람들을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그는 “내가 너무 옥천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기사를 쓰려고 해서 나를 좋지 않게 보실 수 도 있는데,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고맙다”고 말했다. 

수 십 번의 거절 끝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윤종훈씨는 오늘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처음보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 말을 걸었고, 그 사람도 처음 보는 그에게 마음을 열고 대답을 해줬다.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기사들은 우리 지역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으로 다가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에게 전화가 오면 한번 용기를 내주셨으면 해요! 좋은 취지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이니 진심이 전달되길 바라요.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는게 쉽지 않지만 한 번은 해볼 만한 것 같아요. 저를 이용해서 가게도 홍보하고 자랑도 많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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