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더듬으며 335미터
첫 답사후 장구 갖춰 세친구와 도전
물소리 따라 무서움 달래며 굴 속에

옥천군 청성면 장수리 무회부락 뒤 광절산(해발 300미터)중턱에서 새로운 종유굴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부락사람들에게는 수십 년 전부터 알려졌던 굴이었으나 그들이 알고 있는 굴은 입구로부터 70미터에 그치는 것 뿐이었다. 

지난 3월 모험심이 강한 박범도(17)군이 굴이 끝나는 부분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마을로 내려와 도끼를 갖고가 바위를 쪼았더니 환히 트인 새로운 굴을 발견하게 됐다. 마을사람들은 여기서부터의 코스를 '제2차굴'이니 '새굴'이니 하고 불렀다. 박군이 어둠속을 더듬더듬 기어내려간 것은 새굴로부터 물소리가 나는 곳까지 335미터나 되었다.

시간으로 따져 1시간30분 정도 걸렸다. 새굴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300여 미터 갔을 때 굴은 갑자기 90도 각도로 지하로 뻗쳤다. 지나온 300미터까지의 코스에서 박군은 직경 65cm, 길이 1m나 되는 종유가 수백개나 천정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바닥에는 천정과 같은 크기의 무수한 석순이 깔려 있었다. 천정의 종유는 늦봄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은 것처럼 우윳빛을 띠고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암갈색으로 되어 있었다.

깊이가 13미터나 되는 90도 각도의 굴에 선 박군은 호기심을 억누르며 집으로 돌아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며칠동안 동굴답사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었다고 한다. 1.크로나, 라이트, 플래시 2.양초 1곽, 3.자일 20미터짜리 두개를 준비한 박군은 친구 김수철(16)군 등 3명과 함께 군데군데 촛불을 켜놓으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 13미터 가량 자일을 석순에 걸고 내려갔다. 다시 8미터 가량의 비스듬한 통로가 계속되고 그 끝에 또 다시 14미터 가량의 어두컴컴한 밑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 톰소여 아닌 박군의 모험은 이것이 전부였지만, 물에까지는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돌아왔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박군의 모험담이 마을이장 김낙성(35)에게 알려지고 이장은 다시 청성면장 박춘식(51)에게 알렸다. 온 동네에 이 말이 퍼지자, 청성국민학교 교장 송재봉(55)씨와 박춘식 면장이 준비를 갖추고 지난 8일 박군을 앞세워 굴을 답사했다.  

박군은 올해 청산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전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렀으나 떨어져 집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아버지 박삼용(53)씨는 박군이 어렸을 때부터 모험심이 강해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곧 잘했으며 청성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모험 소설을 좋아해 톰소여의 모험도 그 때 읽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옥천군 당국은 새로운 종유군의 관광개발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지까지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청성 정류장으로부터 동남쪽 2.5km의 신길로 가는 코스이며 옥천-보은간 국도에서 청성면으로 들어가 면 소재지에서 약12km쯤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이 굴의 생성원인이나 학술적 가치 등은 전문가의 현지답사의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 같다. 
조선일보 1972.6.11 김세영 기자 

 

강절굴은 이후 1989년 9월30일자 옥천신문 보도에 의하면 1975년 보도진에 의하여 강절굴이 세인에 알려졌지만, 개발가치가 없다는 답사결과와 함께 그 신비함을 자랑하던 내부의 천연적 자연품은 수난을 겪어왔다고.

'석순을 약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따러오는 사람들과 종유석을 도회지로 반출하려는 석수쟁이들로 인하여 훼손되어 졌으며 구석구석에는 빈봉지와 그릇이 널려져 있다. 도청 문화재 관리국의 한 관계자에 의하면 『강정굴은 내부에 낙반의 위험이 있고 또 너무 오래되어 개발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 마을에 사는 김모씨는 『이 동굴이 서울 근교에만 있었다면 벌써 개발이 되어 관광명소가 되었을 것이다』고 반문한다.

이 지역 유일의 자연동굴, 도내에서도 보기드문 이 석회동굴에 대하여 우리주민들과 관계자들은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던가? 아직은 입구의 길도 험하고 굴속의 시설도 전혀 없지만 계획적이고 심도있게 개발하면 옥천의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이 미로의 동굴을 더이상 방치해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고 썼다. 

2007년 3월1일자 옥천신문은 광주리굴에 대해 다시 보도한다. 그 당시 강원대 지질학과 우경식 교수는 “길이는 250미터 정도 되는 거 같아요. 길이는 비록 짧지만 석순이나 동굴 산호, 석화 등 동굴생성물이 무척이나 다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단양의 고수동굴 같은 천연기념물 정도는 아니지만 지방문화재 가치는 충분한 동굴이에요” 우 교수는 이 소견과 더불어 광주리굴의 문을 더 굳건히 닫아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전해왔다. 지금은 존재감조차 없는 강절굴 다시 한번 관심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6억년 전 유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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