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옥천 갈포벽지, 작년엔 4백만달러 수출
가내공장 규모 3년 전부터 붐, 죽피벽지가 새개발품
자연미에 실내온도 조절 잘 돼 세계의 인기품목, 새 베틀 노래 유행

꿍더러쿵 도투마리/쩡저러쿵 뒤넘어서/장장추야 가을밤에/갈포벽지 짜내어서/은장도라 드는 칼로/으른슬큰 끊어내어/미국서독 팔아봄세//

청주, 옥천 지방에 새로운 베틀노래가 유행이다. 들판에서 들려오는 풍년가 못지 않게 집집마다 아낙네들이 흥얼거리는 베틀노래, 한참 귀담아 듣자니 어깨춤이 절로 난다. 베틀노래가 이 지방에서 라이벌 붐을 일으킨 것은 벌써 여러해 전 부터다. 갈포벽지 수출붐을 타고 충북지방에 갈포공장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 헛간에 팽개쳐 있던 베틀이 다시 바빠진 것이다.

남정네는 들에서 햇곡을 거두고 아낙네는 집에서 갈포 짜는 일로 가을해가 마냥 짧기만 한 것도 바로 지금부터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청주시내까지만 해도 신흥갈포, 대성갈포, 대목갈포, 태왕산업, 세진물산 등 갈포공장이 즐비하다. 청주 어귀에 오란다풍의 예쁘장한 양옥 한채가 있어 선뜻 발을 들여놓고보니 스피츠란 놈이 발에 와 감긴다.

모자이크면처럼 마침 앞마당에는 막 풀칠을 해서 내온 청, 홍, 황상의 갈포벽지와 그린, 베이지, 오렌지색 완포벽지, 쑥색, 황갈색, 연두, 자줏빛 물을 들인 쑤세미 벽지로 발들여놓을 틈이 없다. 유난히 눈부신 가을 햇살에 반사되어 마치 이탈리아의 모자이크 화를 보는 것 같다.

공장건물에 붙은 간판은 세진물산, 사장 윤병원(42)씨는 직원들 틈에 끼여 갈포 두름을 손질하느라 처음에는 객이 온줄조차 모른다. '이걸 무어 수출공장이라고 까지야 할 수 있나요. 본 궤도에 오르려면 몇 해는 더 걸려야 겠지요' 윤사장의 말대로 공장시설은 보잘 것 없었다. 중세기때 가내공장에서 쓰임직한 직포기 28대가 가장 큰 시설이라면 시설이다. 베틀을 조금 확대한 것 뿐이지만, 공장 한 귀퉁이에 사람키만한 물레가 시익식, 시익식 느릿하게 돌아간다. 실을 감는 물레가 아니라 실을 풀어 주는 해계기라는 것. 

그 옆 건물에는 직포실에서 짜낸 갈포와 특수용지를 PVA용액으로 풀칠하는 접착실, 이놈을 여러장 겹쳐 다리미질하는 압착기, 필요한 색깔에 따라 염색하는 도장실, 37인치의 넓이에 9야드의 길이로 끊어내는 재단기, 이를 대들보에 매달아 널어 말리는 건조실, 마른 다음엔 두루마리를 만들어 25개 롤을 한 상자에 담는 포장실 등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1롤에 5달러씩 완전히 포장되어 나온 박스에는 갈포벽지, 완포벽지, 또는 수세미벽지라는 영문 도장이 찍히고 해외의 수취인 주소가 적혀 부산으로 운반된다. 갈포벽지 1롤에 4달러 50센트, 5달러 70센트, 5달러씩 팔려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박스가 자그마치 1백달러를 훨씬 넘는 고가의 상품이다.

이 공장의 금년도 수출 목표량은 6만필에 30만달러어치, 9월말 현재 20만달러어치를 선적해서 금년도 목표량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윤씨는 빙그레 웃었다. 직공 95명 중 겨우 20여 명이 나와 포장을 돌보고 있을 뿐 스물 여덟대의 직포기는 공장 응달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베틀로 갈포짜는 것이 보고 싶어 옥천으로 둘러봤다.

옥천 구읍내 마성산 밑에 높직한 담장이 여러채의 낡을 기와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박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 생가란다. 여기서 얼마 안 떨어진 아래쪽에 백년을 넘었음직한 기와집에 상원실업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옛날 벼슬깨나 하던 집인지 대문이 솟을 대문처럼 높직한데 반쯤 열린 문틈으로 '칙 딱 토루룩, 칙 딱 토루룩' 하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 44대에 베틀 여공

열두간도 넘어뵈는 대청마루에는 44대의 베틀이 한창신이 겨울 때였다. 마흔 네명의 아가씨들이 베틀에 앉아 왼발로 신나무를 밟을 때마다 칙딱 토루룩, 칙딱 토루룩 마치 아르헨티나 탱고를 듣는 기분이다. 5년 동안 갈포를 짜왔다는 신복순(24)양의 손과 발은 신들린 드러머처럼 꽤도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래서인지 하루에 4필을 짜내어 300원 벌이는 거뜬히 해낸다는 것. 절로 굽은 신나무를 당겼으락 물렸으락 하면서 용두머리에 매달린 잉앗대가 오르락 내리락 잉앗대에 매달린 씨줄이 팽팽했다간 느슨해지고 느슨했다간 팽팽해진다. 왼손으로 바닷집을 탁치면 바디가 곤두서며 북의 통로가 싹 열린다.

이 때부터 4.4조의 베틀노래가 제 멋을 낼 때다. 구름에다 잉아걸고 안개속에 꾸리 삶아 앉을 깨에 앉은 선녀 양귀비의 넋이로다. 세모졌다 버기미는 올올이 갈라놓고 가리새라 저는 양은 청황용 굽니는 듯 용두머리 우는 양은 벗 부르는 소리로다. 꿍더리쿵 도투마리 쩡저러쿵 뒤넘어서 

■ 갈저가 바꿔져

끝도 없고 한도 없을 듯한 베틀도래다. 신양은 숨도 안 쉬고 잘도 불러젖힌다. 이렇듯 갈포 붐이 분 것은 불과 3년 전부터다. 10년 전만해도 칡덩굴을 삶아 껍질을 벗겨 쪼갠 갈저를 일본에 수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 던 것을 건설실업 등에서 완제품인 갈포벽지를 만드는데 성공, 66년부터 미국 등지에 190만달러 상당이 팔려나갔다.

상대적으로 일본에 나가던 갈저가 줄어들고 일본의 갈포수출 역시 퇴색하기 시작했다. 68년에 껑충 뛰어 240만달러, 70년에는 412만달러 상당의 갈포벽지가 수출되었다. 작년에 미국이 120만달러, 서독이 80만달러, 스웨덴, 화란이 각각 50만달러어치 사갔고 그 밖에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위스, 캐나다, 멕시코, 호주 등에서도 한국의 갈포벽지가 인기여서 꽤 많이 사갔다고 한국벽지조합 이사장 김광균씨는 말한다. 

■ 방음에 색상 좋아

갈포벽지가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수공품이라 자연미가 있고 실내의 온도가 자동조절되고 방음이 되며 색상이 부드러워 보안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물로 닦아낼 수 없고 디자인이 다양하지 못하며 값이 비싸다는 흠도 있다. 

여하튼 한국의 칡은 야산에서 자라 곧고 길기 때문에 갈포용으로는 안성마춤이다. 그래서 한국은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갈포벽지의 보고라고 말하는 김씨는 왕골껍질로 짠 완포벽지, 삼껍질로 짠 마포벽지, 수세미속으로 짠 수세미벽지, 죽엽죽피벽지 등이 우리나라 신개발품목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업의 영세성, 기술개발의 부족 등으로 일본,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새로 개발된 특수벽지, PVC벽지, 바니시벽지 등과 싸우려면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 그러나 엊그제부터 새로 불리기 시작한 새베틀노래가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윤병해 기자/ 조선일보 1971.11.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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