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째 죽향초 앞 천무태권도장 운영 중인 신정수 관장
지난달 ‘태권도인 최고의 영예’ 국기원장 표창 받아

햇볕이 내리쬐는 나른한 오후, 향수길을 거닐다 정지용 시인의 혼이 느껴지는 죽향초등학교 앞에 이르면 웬 기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그 소리를 따라가보면 널찍한 도장에 들어선 아이들이 보인다. 정갈한 도복을 갖춰 입은 아이들의 이마엔 구슬땀이 맺혀 있다. 진지함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저마다 갈고닦은 발차기를 한껏 뽐내고 나면 이내 웃음기를 되찾는다. 긴장이 풀린 듯 천진난만 뛰노는 게,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이다. 약 70명의 관원이 태권도를 배우며 심신을 수련하는 이곳은 죽향초등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천무태권도장’이다. 
2010년부터 천무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태권도 7단 신정수(41, 옥천읍 금구리) 관장은 청산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8살 때 친구들이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하는 모습에 반해 처음 도복을 입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지금까지 수련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다 지난달 태권도 보급 및 발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국기원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어릴 적 그를 3년 동안 지도했던 첫 스승은 현재 최고단인 9단으로, 괴산군태권도협회장을 맡고 있을 만큼 이른바 태권도계의 ‘권위자’다. 표창은 그런 스승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태권도에 매진한 30년이 넘는 세월이 비로소 결실을 맺은 것. 일생일대에 한 번 받기도 어렵다는 국기원장 표창은 태권도인에게 있어 최고의 영예다. 그가 전국의 내로라하는 관장들을 제치고 표창을 거머쥘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신정수(41) 관장은 13년째 죽향리에서 천무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신정수(41) 관장은 13년째 죽향리에서 천무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 일찍이 찾아온 부상··· 허나 도복만은 벗을 수 없었다 

“순전히 멋있어서 시작했어요. 쭉 뻗어나가는 발차기를 보면 너무 화려하지 않나요?” 태권도를 시작한 지 어언 30년이 넘었지만 신정수 관장에게 태권도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어 그는 한때 선수 생활을 했던 추억을 풀어놓았다. 그는 중학교 시절 충북도민체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태권도에 빼어난 재능을 보였다. 당시 태권도 선수 양성으로 유명했던 청주공고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 배드민턴도 수준급 실력을 보이며 다재다능한 체육인으로서의 면모를 일찌감치 보였다. 천무태권도장 한편에 걸려 있는 무수한 메달이 이를 방증하는 듯했다. 낮에는 배드민턴 연습을, 저녁에는 태권도 수업을 들었던 그의 이마엔 땀방울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게 선수로서 기량을 한창 발휘하고 있을 무렵, 갑작스레 찾아온 허리 디스크가 발목을 잡았다. 고작 15살 때였다. 결국 선수 생활을 접고 그토록 좋아하던 태권도도 그만뒀다.

하지만 도복을 ‘완전히’ 벗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상하게 배드민턴은 딱히 생각이 안 났는데도 태권도만큼은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차마 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가서는 재활하면서 도장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죠. 옥천군 대회나 남부3군 대회에 가끔씩 출전해도 입상을 하더라고요.” 그는 선수 생활을 지속하진 않았지만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태권도 수련을 이어갔다.

그에겐 다소 색다른 일화도 있었다. 경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꿈이 생기면서부터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생회장이었던 그는 학교장 추천을 받은 덕에 실기전형도 보지 않고 한서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에 입학했다. “항공 쪽으로 유명한 학교거든요. 경비행기도 몇 대 갖고 있고, 태안캠퍼스에 활주로도 있어요. 경비행기 한 번 타보겠다고 일단 가본거죠.” 하지만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오니 학과가 여러 갈래로 분리되며 경비행기 수업도 항공 계열 학과로 넘어가고 만 것. 결국 그는 레저스포츠 관련 수업만 주구장창 듣게 됐다. 물론 무술 수련을 게을리 하진 않았다. 유도 1단, 검도 1단, 태권도 사범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졸업 후 다가올 삶의 다음 페이지를 한 자 한 자 써내려가고 있었다.       

수업에 집중하는 관원들의 모습
수업에 집중하는 관원들의 모습
관원이 힘찬 발차기를 뻗고 있다.
관원이 힘찬 발차기를 뻗고 있다.

■ 고향땅 아이들에게 가져온 선물보따리

2007년 대학 졸업을 하고 난 뒤 그는 다시 태권도에 집중했다. 사범 자격증을 들고 무작정 대전으로 넘어가 사범 생활을 할 도장을 찾아다녔다. 교차로에서 사범을 모집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찾아 간 도장에서 3년을 지냈다. 처우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일이 고될뿐더러 급여도 적었기에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랑곳 않고 그 시간을 인내했다. “전문직을 하려면 어느 누구나 혹독한 배움의 시간을 견뎌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경험이 다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여겼거든요.” 

대전에서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꽃을 피운 곳은 고향땅 옥천이었다. “타지 생활을 하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어요. 꼭 옥천으로 돌아가야겠단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고향에 도장을 차려보는 게 어떻겠냐’는 중고교 시절 스승의 제의도 따랐죠.” 그는 나고 자라 태권도인으로서 첫 발을 뗀 청산면에 도장을 차리고픈 의지가 컸지만, ‘학생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혔다. 대신 2010년 2월, 당시 도장이 없던 죽향초등학교 근처에 천무태권도장을 열었다. 사실상 그가 고향땅 아이들에게 ‘태권도’라는 선물보따리를 싸온 셈이다.

신정수 관장은 지금도 수업을 마치면 차를 몰며 관원들을 일일이 집에 데려다 준다. 그의 열정이 겉으로도 보였는지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도 탔다. 수업 프로그램도 손수 구상했다. 이때 지난 세월 동안 쌓아온 내공이 빛을 발했다. 대학에서 배운 생활스포츠를 응용하는가 하면, 대전에서의 경험도 접목시켰다. “대전에 있을 때 가장 신기했던 건 놀이 위주로 태권도를 가르치는 거였어요. 제 과거는 발차기, 품새 배운 기억뿐인데 거기선 뜀틀, 쌍절곤, 피구, 축구, 씨름 등 다양한 콘텐츠도 병행하고 있었거든요. 처음엔 ‘내가 왜 이걸 가르쳐야 하지?’ 싶었지만 관원들이 도장에 오는 것 자체를 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죠.” 여전히 그는 월별 수련계획표를 직접 짜며 축구, 피구, 씨름은 물론 ‘세로 찍고찍고’, ‘띠콘운동’ 등 자체 개발한 콘텐츠를 포함시키고 있다. 매주 월요일 선착순 신청을 받아 주말 체험학습을 떠나는 야외 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시민119 체험센터, 창의·발명 체험관 등 교육체험과 더불어 아이스링크장, 워터파크 등 다양한 문화시설을 방문하는 방식이다. 비록 순수 실력은 다른 도장에 뒤쳐질 수 있을지언정 도장을 다니는 순간만큼은 진정 행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교육 철학이다.   
 

■ “아이들이 왜 태권도를 배워야 하냐고요?”

천무태권도장 관원은 도장에 들어서는 순간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다. 이 규칙에는 한창 게임과 메신저에 빠져 살법한 아이들이 도장에서만큼은 땀 흘리며 뛰어 놀았으면 하는 신정수 관장의 마음이 담겨있다. 운동이 낯선 아이들을 위해 도장 한구석 책장에는 책이 가득 채워져 있기도 하다.      

그는 관원들의 품성도 눈에 띄게 개선된다고 자신했다. “품증을 취득하려면 다소 지루한 품새를 외우고 수련해야 하거든요. 이 과정을 감내하면서 끈기가 생기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어요. 팔다리를 쭉쭉 뻗으면 신체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고요. 또 수업이 끝나면 제가 만든 콘텐츠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요. 심신을 건강하게 가꿀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특히 매사에 소극적이고 내향적이었던 관원들의 변화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승품 심사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우렁찬 기합소리도 관건이에요. 아이들이 통과를 위해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어느덧 목소리에 활기가 붙고 자신감도 커지더라고요. 가끔 학부모님이 ‘아이 성격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감사 인사를 보내오시기도 해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너무 뿌듯하거든요.” 가끔은 오래 전 그만 둔 관원이 간식을 한아름 안고 도장을 깜짝 방문하기도 한다. 도장에 다녔던 추억을 잊지 못한 이들이 일면식도 없는 관원들에게 또 다른 추억을 선사하고 있는 것.  

신정수 관장은 평소 관원들의 ‘친구’와 다름없다. 하지만 수업시간에는 그 누구보다도 엄한 사범이 된다. 그런 그의 지도 아래 관원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성취하며 서로 간의 신뢰도 두터워졌다. 그 덕분인지 관원들은 도장에서의 규칙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매 주말 20명이 넘는 관원들과 체험학습을 떠나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닌 듯 보이지만 규칙을 지키는 게 생활화돼 돌발사고 한 번 일어나지 않았다. 도복을 벗은 일상에서도 관원들에게 규칙은 그리 어려운 존재가 아니다. 

■ 태권도인으로서의 행보는 현재진행형

요즘에는 주짓수, 킥복싱, 무에타이, 레슬링 등 다양한 무술이 대중화돼 태권도의 인기가 과거에 비해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천무태권도장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읍내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코로나19 이후 체육시설이 기피되면서 관원도 눈에 띄게 줄었다. 1년 365일 도장 운영에 매진하고 있지만 제약도 많다. 대도시면 몰라도 옥천같이 작은 지방에서는 사범 한 명 채용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홀로 수업을 도맡는 신정수 관장은 태권도 대회가 금요일부터 일정을 시작하는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관원들의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대회 출전을 위해서는 미출전 관원들의 수업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 그는 이 점이 관원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대신 휴일까지 반납하며 주말 프로그램을 더욱 철저히 준비한다.  

“태권도가 인기를 되찾으려면 결국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무술이 돼야 하는 것 같아요. 일단 지금은 주말 프로그램을 더 활성화시켜서 좀 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할 겁니다. 체계적인 교육은 기본 전제이고요. 제가 힘든 만큼 관원들도, 도장도, 나아가 태권도도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국기원장 표창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꾸준함’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도장 운영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태권도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애정과 열정은 천무태권도장이 13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사실 조금 민망하기도 해요.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앞으로도 꾸준히, 열심히 도장을 운영해야겠다!’ 표창을 받으니 이런 생각이 먼저 드네요. 저부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원하는 관원들은 매 주말 야외 프로그램을 떠난다.
원하는 관원들은 매 주말 야외 프로그램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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