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오후 녹음하는 할매 기자들의 멋진 수다
옥천FM공동체라디오 104.9mhz를 시원하게 만드는 농익은 입담

#1.'어느 날 여고시절 우연히 만난 사람 변치말자 약속했던 우정의 친구였네 수많은 세월이 말없이 흘러 아아 지나간 여고시절 조용히 생각하니 그것이 나에게는 첫사랑이었어요'  옥천FM공동체라디오 첫 오프닝 멘트 배경음악(BGM)으로 여고시절 이수미 가수의 1972년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오면 할머니들의 왁자지껄한 수다가 시작됩니다. 무대본으로 전혀 준비없이 시작하지만, 질문에는 막힘없이 청산유수로 엔지 컷 하나없이 녹음을 끝냅니다.

마치 준비된 고정게스트처럼 세월이 농익은 말들은 하나하나 깊이가 있습니다. 2021년 12월21일 개국한 옥천FM공동체라디오 역대급 최고령 게스트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2.김학분(88, 옥천읍 문정리), 오희숙(82, 옥천읍 문정리), 홍순자(81, 옥천읍 가화리), 조명숙(78, 동이면 지양리), 윤창숙(77, 옥천읍 금구리), 김홍국(70, 청성면 대안리) 등 할머니 기자단들이 총출동하여 목요일 오후 2시 라디오 녹음실을 꽉 채웁니다. 입담들이 어찌나 화려한지 마련된 한 시간을 위해 중간중간 끊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입니다.

김학분 기자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베토벤 곡을 신청하고, 오희숙 기자는 신바람 나는 박군의 '한잔해'를 신청합니다.  윤창숙 기자는 임형주 가수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신청합니다. 헤드폰을 쓴 채로 음악이 나오면 꼭 끝까지 감상을 합니다. 마치 라디오에 흠뻑 빠져버린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고되지만 값지고, 말로 하는 것은 신바람나고 재밌는 모양입니다. 

#3.매주 목요일 오후 1시에 기자단 모임을 하면서 즐거운 글쓰기 합평 시간을 갖습니다. 일주일 동안 한편씩 어렵게 써온 글을 풀어놓습니다. 윤창숙 기자는 한치 흐트럼없는 글씨체로 꼭 A4두장에다가 글을 가득 써옵니다. 줄 간격도 일정하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꼭 지키려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김학분 기자는 조그만 오래된 수첩에 일기를 매번 가져오십니다.

88살의 나이에도 달필입니다. 꾹꾹 눌러쓴 글씨가 많지 않지만,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합니다. 조명숙 기자는 글감을 잘 찾아내는 귀신입니다. 늘 새로운 글감을 가져와서 현장에서 슥삭 다듬으로 직접 낭독하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희숙 기자와 홍순자 기자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카카오톡으로 직접 쓴 글을 전송해줍니다. 작은 휴대폰으로 글쓰기가 가능하신 분들입니다.

홍순자 기자는 한번 글쓰기에 몰입하다보면 올려놓은 남비를 태울 정도로 집중력이 대단하신 분이죠. 오희숙 기자는 올해 책을 수필과 시가 섞인 책을 한권 내는 문인입니다. 복지관 박유리 복지사는 이 강좌를 책임지는 복지사로 국어국문과 출신으로 할머니들이 쓴 글들을 정성스럽게 듣는 역할을 합니다. 

#4.사실 오후 1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할머니가 쓴 글을 낭독하는 시간입니다. 서로의 글을 함께 읽으며 여러가지 공감과 위로, 그리고 칭찬을 해주는 시간이죠. 그렇게 한번 힘을 받고 낭독의 시간이 끝나면 그 글을 고스란히 대본삼아 라디오로 직행합니다. 제가 차로 모셔서 4분 남짓하는 옥천FM공동체라디오로 직행하는 거죠. 그리고 라디오에서는 글 쓴 후일담을 이야기합니다.

말하자면 비하인드 스토리죠. 복지관에서 낭독의 시간이 리허설이었다면, 라디오에서 녹음하는 시간은 참았던 입들이 제대로 풀리는 시간입니다.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농담도 주고 받고 전혀 긴장감없이 녹음하는 이들을 보면 이들은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이구나 싶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는 그렇게 지나갑니다.

동안리 저수지 밑바닥에서 꺼내 먹었던 물밤 이야기, 그렇게 무서웠던 외할머니 집 가는 길 이야기, 옥천여고 시절 수석을 하면서 장학금 받고 취업했다가 첫 월급으로 고기며 떡이며 지게에 사서 학교 선생님들에 고맙다며 배달했던 이야기, 80년 대 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그 친구들한테 클로버 꽃 목걸이를 받았던 이야기, 봉숭아 물 들이던 이야기 등 인생의 화양연화(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를 기억의 복주머니에서 하나씩 끄집어냅니다. 

#5.라디오 녹음이 끝나고 다들 일어서는데 오희숙 기자가 잠깐 저를 불렀습니다. 라디오에 기부하고 싶은데 계좌번호 좀 알려달라고 하더라구요. 그 순간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절로 흘러나올 수 있는 거구나. 연금을 받아 생활하시는 분에게 10만원의 돈이란 매우 클텐데 바로 계좌이체로 기부를 해주셨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김학분 기자는 매번 작은 가방에 초콜릿과 과자 등 먹을 것을 항상 사서 나눠주고, 윤창숙 기자는 몸이 조금 불편한 김학분 기자를 항상 부축을 해줍니다.

조명숙 기자는 리더쉽이 있고 분위기를 이끌며 홍순자 기자는 긴 글을 쓰는 데 재주가 있습니다. 김홍국 기자는 막 옥천 청성으로 귀농한 70대 갓 넘은 막내기자지만, 젊은 감각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재능이 있습니다. 관절 수술로 병원에 한달여간 입원했다가 병실에서도 글을 썼다는 이정희(87, 옥천읍 문정리)기자가 곧 합류할 터이니 이제 '꽃보다 더 고운' 할매 어벤져스가 드디어 완성될 찰나입니다.

자식들에 대한 무한 애정, 치매 노인에 대한 쓸쓸함, 죽음에 대한 성찰 등 관조하듯 늘어놓은 삶의 일상에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쓰기가 또 라디오가 할머니들의 이런 관계성에 충분히 복무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역할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사실 '여벌'이지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영화가 있지요. 우리는 '글쓰고 말하고 우정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다양한 삶들이 엉켜서 글과 말로 풀어보는 서로의 이야기, 부디 삶의 활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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