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군서면 하동리 산골짜기에 카페마리뜰 열어
한옥수·이정식 씨, 시골이 주는 편안함에 반해 옥천 살아
공방 바자회 북클럽 음악회 등 하고 싶은 일 한가득
공간의 완성은 사람 ··· 따뜻한 시골카페로 쓰이길 바라

어렸을 때부터 그는 시골 풍경을 참 좋아했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 보리미(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내산리), 지난해 7월부터 군서면 하동리에 ‘카페마리뜰’을 운영하는 한옥수(61, 군서면 하동리) 씨가 여덟 살 전까지 살았던 동네 이름이다. 그때 추억이 군서면 산골짜기에 와서 카페를 열게 된 동력이었는지 모른다. 개울가에서 뛰어놀고, 동네 언니들과 같이 동네 뒷산에 오르며 공기놀이를 하던 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태생이 발발이었을까. 언제는 읍내에 서커스 공연이 열렸다.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놀러 갔다. 공연이 끝나고 동네 사람들은 집에 다 도착할 사이 집까지 걸어갔다. 아니, 무서워서 뛰어갔다. 노랗게 달이 떠 있는 그 깜깜한 밤에 동네 구석구석을 혼자 잘도 돌아다녔다. 엄마 아빠도 안 갔던 서커스는 왜 보러 갔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리송하다. 사내보다 더 사내처럼 억척스럽게 놀았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집은 대전으로 옮겼지만 늘 시골 풍경이 떠올랐다. 중학교 다닐 때쯤 혼자서 그 먼 시골 마을에 다녀왔다. 어렸을 때 놀던 곳을 다 돌아다녀 봤다. 주변에 연탄재들이 까맣게 남아 있던 흔적들은 지금 돌아보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옛 추억을 떠올리며 산과 나무, 논밭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에는 편안함을 느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시간이 돌아보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아마 지금 성격의 바탕이 된 게 아닐까 싶었다.
한옥수 씨와 함께 카페마리뜰을 운영하는 이정식(58, 읍 마항리) 씨, 그 또한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가을만 되면 고향에 가서 가을걷이하러 가고, 제사 지내러 가던 일들이 떠오른다. 개구리를 잡아먹으러 동네 친구들이랑 밖에 나돌았다. 밤에 자도 자도 해가 안 뜨는 겨울밤, 집 문 열고 나가면 돌멩이가 반짝반짝 빛나던 풍경들에 익숙하다.

왼쪽부터 이정식, 한옥수씨
왼쪽부터 이정식, 한옥수씨

■ 청원·춘천 출신 두 사람이 손잡아

언니 동생 사이면서 친구처럼 지낸다는 두 사람은 오랜 대전 생활을 내려놓고 시골 옥천에 녹아드는 중이었다. 지난해 11월 마항리에 이사 온 이정식 씨는 카페에서 바리스타 일과 함께 브런치를 만드는 데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대전에서 드라이플라워, 인테리어샵을 운영했던 한옥수 씨는 그동안 카페 공간을 조성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동시에 여러 공예품을 만들고 있었다.

“정식 씨가 카페 일을 다 맡아서 해요. 커피나 음료, 요리에 관심이 많고 잘하는 친구거든요. 저는 만들고 뚝딱거리는 걸 좋아해서 공방을 운영해요. 카페에 있는 탁자나 커튼, 선반, 액자 같은 인테리어나 앞에 데크 조성까지 제 손이 안 간 데가 없어요. 아파트에 보면 버려지는 서랍장이나 탁자들이 많잖아요. 목공에 취미가 있어서 리폼하고 샌딩 작업을 거쳤어요. 요즘 환경을 생각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디자인해서 새로운 가치를 지닌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 유행이잖아요? 버리는 신문지를 돌돌 말아서 화병이나 바구니 같은 공예품도 만들고 하죠.” (한옥수 씨)

처음에는 공방 자리를 알아보려고 했던 게 일이 이렇게 커졌다. 한 씨는 이곳이 공방만 하기에는 터가 넓다고 판단해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카페 공간을 창조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바로바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카페를 직접 운영할 생각도 아니었지만 공간을 꾸미는 과정 자체를 즐겼다. 다행히 대전 프리마켓에서 처음 만나 알고 지내던 이정식 씨와 생각이 맞아 동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카페를 직접 꾸미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점점 늘려갔다.

한 씨는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 동네 주민들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에 관심이 많다. 공방 수업은 현재 준비하는 과정에 있지만 그동안 드라이플라워, 인테리어 일을 해본 경험을 토대로 방학 때 아이들 공예 체험학습을 해보고 싶어 했다. 또 안 쓰는 의류들을 모아 바자회 행사를 열고, 북클럽이나 음악회 같은 문화 행사 또한 여건이 되면 추진할 계획이다.

■ 동네 이장님과 주민분들이 응원해줬어요

카페마리뜰은 동네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한 씨가 전해들은 바로는 이 동네가 말을 동원한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인 삼국시대 때부터 말이 뛰어놀던 지역이었다. 한쪽 동네(마고실)에서는 말을 키우고, 다른 동네(마리둘)에서는 말이 뜯어먹을 수 있는 풀을 키웠는데 입말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마리둘에서 둘이 뜰이 됐다는 이야기였다. 동네 이름의 유래를 들은 한 씨는 어감이 괜찮다 싶어 카페마리뜰로 지었다.

“동네 이장님이나 주민분들하고 인사를 나눴어요. 제가 이 동네 와서 놀란 게요. 이장님이 방송을 하셨나 봐요. 저는 못 들었는데 동네 집마다 여기 카페에 오신 거예요. 화장지 들고 오시고, 용돈도 주시고, 시골 인심에 정말 놀랐어요. 카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을 잔치를 해보고 싶어요. 큰 건 아니지만 동네 어르신들 모셔서 잔치국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드리면 좋잖아요. 군서에는 제가 집 지을 때부터 왕래했으니까 여기 온 지는 몇 년 됐죠.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대전에서 차를 타고 왔는데요. 오는 길에 자연경관에 눈이 가더라고요. 새순 나는 것도 보고, 벼 올라오는 것도 보고, 농작물 익은 것도 보면서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왔어요. 조용한 걸 좋아하는 제 정서랑 맞더라고요.” (한옥수 씨)

이정식 씨는 대전에서 도우아트, 다도, 티마스터, 한국예절강사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흙을 반죽해 만든다는 뜻을 가진 도우아트는 흙, 비료, 숯 등 친환경 광물질을 이용해 다육이화분 같은 다양한 인테리어 장식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 카페에 오면 그가 만든 도우아트 공예품들을 만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중요하다는 그는 카페마리뜰이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랐다.

“카페 옥상 공사가 조금 남았지만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아기 돌잔치도 계획하고 있어요. 제가 사는 동네는 할머니들이 많이 계셔요. 그래서 이사 올 때 인사드리고 떡 돌리고 했거든요. 한 11집 정도 인사드리게 되더라고요. 제가 나이 60도 안 된 새댁이나 마찬가지예요. 할머니들이 언제든 놀러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을에 젊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요. 너무 잘해주시니까 불편한 게 전혀 없어요. 옥천 와서 살기 잘한 거 같아요.” (이정식 씨)

■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아요

카페마리뜰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은 주말농장을 해보고 싶어 앞에 조그마한 텃밭에 호박, 상추, 오이 등 갖은 농작물을 키우고 있다. 꽃 한 송이만 봐도 기분이 좋으니까 카페 주변에 꽃들도 심어 놨다. 밤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예뻐서 옥상 자리를 만들고, 인터넷을 찾아보며 몸을 눕힐 수 있는 바나나 의자도 손수 만들어 옥상에 비치했다. 펼치고 싶은 일들이 무궁무진하다. 이제 카페에 꾸준히 찾아오는 손님들로 공간이 메워지면 더할 나위 없다.

“외지에서 오는 분들은 시골 카페에 대한 기대가 있거든요. 전망 좋고, 운치 있고, 커피도 괜찮고 하면 또 찾아오시겠죠. 주변에 장령산이 있잖아요. 장령산 근처에 있는 산골짜기에 이런 카페가 있다더라, 시골에서 파스타를 하네, 이렇게 홍보가 나면 옥천을 알리는 효과도 있을 테고요. 주말에는 특정 지역에 관광객들이 몰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한쪽에만 몰리지 않고 옥천에 다양한 명소들을 구경하고 갈 수 있게 카페마리뜰이 휴식처로 다가왔으면 해요.” (이정식 씨)

내년에는 카페마리뜰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두 사람의 역량도 물론 중요하지만 카페마리뜰에 어떤 손님들이 찾아오느냐가 한몫을 할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며 각박해진 세상에서 군서면 하동리에 작은 아지트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책도 읽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커다란 계획을 세우고 옥천에 왔다면 이만큼 카페를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카페마리뜰이 어떤 모습으로 풍성해질지 벌써 기대된다.

“마음 편히 와서 잠시라도 쉬고 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저는 어떤 공간이나 물건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제가 쓰려는 목적보다는 오시는 분들이 즐기는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정식 씨도 마찬가지로 베푸는 마음으로 이곳 카페를 연 거라서 앞으로 좋은 일들을 하나하나씩 만들어가려고요. 혼자 하다가 동지가 생겨서 너무 좋아요.” (한옥수 씨)

“앞으로 책 읽는 모임도 만들려고요. 함께 돌아가면서 책 읽는 걸 윤독(輪讀)이라고 하거든요. 어렸을 때 엄마가 동화책 읽으면 자잖아요. 상대방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얻어갈 거예요. 말은 의사전달 목적도 있지만 호흡도 되고, 횡격막도 올라가고, 심호흡도 되는 등 몸에 운동이 되거든요. 누구에게 뽐내는 읽기가 아니라 신체적인 리듬도 좋아지고, 서로 마음을 나누고, 혼자 못 읽었던 책을 같이 읽어보면 좋겠어요.” (이정식 씨)

 

주소 : 군서면 하동3길 109
전화 : 010-8571-6626
영업시간 : 오전11시~오후7시
밴드 : band.us/band/86334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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