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고참부터 새내기, 선생님까지 '화기애애'
인형 마다마다에 녹아든 이야기 쏟아져
16일, 평생학습원에서 작은 전시회 열 예정

[르네상스 옥천] 2일 수요일, 오후 네시 반. 평생학습원 1층 노인장애인실에는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보다 더 자주 오가는 소리들이 있다. 탁탁탁, 뭔가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 도란도란, 두런두런 말소리. 부딪히는 것은 망치요, 말하는 것은 사람인데, 담고 있는 이야기는 망치와 사람이 꼭 같다. 닥종이인형 수업에서 쏟아지는 소중한 이야기들을 조심히 그러모아 돌아왔다.

 수업 시작 전 준비과정부터 서로 근황토크다. 카메라를 맨 낯선 사람을 보고 놀란 선생님에게 학생들의 핀잔도 돌아온다. “선생님 못 들었어? 신문에서 취재 나온다고 그랬잖아~” “어우 난 못 들었는데... 수업 잘 해야 되겠네.” “나는 찍지 마요! 옥천신문에 모델료 받아야 되겄네.” 다시 말하지만, 이야기가 ‘쏟아졌다’.

닥종이인형 고참 테이블. 사실상 큰 도움은 필요하지 않고 알아서들 척척이다.
닥종이인형 고참 테이블. 사실상 큰 도움은 필요하지 않고 알아서들 척척이다.

 닥종이인형은 올해로 4년째 진행되고 있는 수업이다. 닥종이, 그러니까 한지에 풀을 발라 철사 뼈대에 바르고, 또 바르고, 또 바르고, 자꾸만 자꾸만 발라서 모양을 만드는 것이 바로 닥종이인형 수업. 누구는 종이를 바르고 있고, 누구는 망치로 인형을 탁탁 두드리고 있고, 또 누구는 모양을 다듬고 있다. 닥종이가 얇다 보니, 인형의 머리통 하나 만드는 데에 일주일이 걸리고, 수업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인형 세 개를 만들면 타이트하게 해도 3개월이 꼬박 걸린다고. 정성을 그야말로 ‘떡칠’해야만 하는 작업이다.

인형의 머리를 붙들고 '예쁘다, 예쁘다' 하고 있는 현은남(43, 옥천읍 문정리)씨.
인형의 머리에 종이를 붙이며 '예쁘다, 예쁘다' 하고 있는 현은남(43, 옥천읍 문정리)씨.

 그래서인지 각자 자기의 인형에 애정이 가득하다. 아직 얼굴 형태가 잡히지도 않은 머리(사실 아직은 덩어리라고 봐도 무방해 보였다)를 붙들고 쓰담으며 “이거 봐 이거, 진짜 너무 동그랗고 예쁘지 않아? 우리 애기(!)...”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손에서는 인형을 놓지 못하기도 한다.

"인형 머리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생각한 모양이 있으실 거잖아."
"인형 머리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생각한 모양이 있으실 거잖아."

 그리고 그런 만큼, 각자의 인형에 들어있는 모두의 이야기도 애정이 넘친다. 선생님이 “머리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하니, “앞머리는 안 내리구... 가르마 탔어. 요렇게 돌려서 요렇게 땋았어.” 하고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들어본 이야기는 이렇다.

 “5월8일에 손녀들이 왔는데, 머리만 만들어놓았던 것을 우리 손녀한테 ‘딱’ 들켜버렸지 뭐예요. 내가 손녀가 셋 있거든. 인형 세 개를 만든다고 했더니 세 손녀가 자기들을 만들어달라구 아우성을 해서, 우리 손녀들을 만들고 있어요.” (이숙화, 70, 이원면 칠방리)

이숙화(70, 이원면 칠방리)씨가 인형 모양을 다듬고 있다.
이숙화(70, 이원면 칠방리)씨가 인형에 머리카락을 붙이고 있다.

 아, 이게 단순하게 사람의 형상을 만드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구나. 그렇게 모두의 이야기를 하나씩 찬찬히 들어보았다.

 “전에는 인형 세 개를 만든대서 조카들 세 명을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올케언니가 ‘아가씨, 이렇게 예쁜 거 만들면서 우린 왜 안 만들어줘요’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는 오빠네 가족을 만들고 있어요.” (현은남, 43, 옥천읍 문정리)

도우미 분이 이희숙씨의 소 인형을 건조기에 넣고 있다.
활동지원사가 이희숙씨의 소 인형을 건조기에 넣고 있다.

 “왜 저만 소를 만들고 있느냐구요? 추억 속에, 아버지가 태워주신 소예요. 어릴 때부터 다리가 아파서 돌아다니지를 못하니까, 그때 아버지가 저를 소에 태우고 같이 고구마를 캐러 밭에 갔어요. 저녁 노을이 참 예뻤지요. 지금까지도 그게 기억에 생생해요.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에요. 이 인형은 자세가 특이하지요? 딸과 사위의 한복 웨딩촬영이 너무 예쁜 모습이라 만들어서 선물하려구요.” (이희숙, 53, 옥천읍 장야리)

이희숙씨와 도우미,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이희숙씨와 활동지원사 두 사람,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나요? 나는 인터뷰하지 말아요. 이건 내 것이 아니고, 여기 이 사람(이희숙씨) 거예요. 나는 만드는 것이 없으니 물어볼 것 없어요. 왜 안 만드느냐구요? 난 이 사람 활동지원사인데, 내 걸 하면 도와줄 수가 없잖아요. 이 사람은 팔 힘이 없어서 망치로 두드리기도 힘들고, 멀리 팔 뻗는 것도 힘든데. 4년을 같이 하기는 했어도, 나는 어차피 이런 거 적성이 아니라 싫어.”

육희숙씨
육희숙(61, 안내면 도율리)씨가 인형 머리에 붙인 닥종이를 매만지고 있다.

 “가족을 만들고 있어요. 엄마랑 동생들. 아버지는 전에 만들어두었거든요. 군인이셨는데, 아유 너무 힘들었어. 다시는 군인 안 한다고 그랬어요. 그래도 생각보다 너무 예쁘게 만들어져서 좋았지요. 왜 그렇게 힘든데도 군인을 만들었냐구요? 유일하게 남은 아버지 사진에 아버지가 군복을 입고 계셨거든요. 그리울 때마다 보고 생각하려고 그랬죠. 아빠가 있으면 가족들도 있어야 하니까, 지금은 가족들을 만들어요.” (육희숙, 61, 안내면 도율리)

새내기 유지윤(51, 옥천읍 장야리)씨와 강사인 김진희(47, 옥천읍 마암리)씨.
새내기 유지윤(옥천읍 장야리)씨와 강사인 김진희(47, 옥천읍 마암리)씨.

 김진희(47, 옥천읍 마암리) 강사는 웃으며 말한다. “이거 봐요. 자기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다 자기들 것만 하고. 주제 맞춰서 전시 좀 해볼래도 그게 안 된다니까요.” 하지만 김진희 강사도 그게 바로 닥종이인형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원래도 종이공예는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닥종이인형을 보고, 첫 느낌이 되게 좋은 거야. 보자마자 ‘아, 평생 할 일을 찾았다’ 했어요. 종이접기는 좀 가볍고, 애들 수업이나 보여주기를 위해 했던 거지, 날 위해 한 게 아니었어요. 닥종이인형은 17년째예요. 앞으로도 평생 나를 위해서 하려고요.”

 저번 학기부터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숙화씨는 지금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학교 다닌 이후로 첫 공부인데 선생님도 너무 잘 가르쳐주시고,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고, 무언가를 만들고... 내가 했어도 ‘언제 이렇게 했나’ 싶어. 이 시간이 너무 기다려져요. 집에 있었으면 잠이나 자고, 망상이나 했을 것인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꿈 같은 일이지요. 이 늙은이를 젊은 분들이 받아주고, 이야기도 같이 해주니 그게 또 너무 감사하고요. 제일 좋고 고마운 건 우리 신랑이 인정을 해준다는 거야. 오늘도 내가 ‘식사하세요’ 하니까, ‘아, 오늘 수요일이네! 당신 닥종이 하러 가야지! 얼른 밥 먹고 얼른 가!’ 하더라고. 맨날 일만 시켜먹더니. 하하.” 또 한 번 강조한다. 이야기가 ‘쏟아졌다’고.

신한나(57, 안내면 정방리)씨가 망치질을 하고 있다.
신한나(57, 안내면 정방리)씨가 망치질을 하고 있다.
김보영(35, 옥천읍 금구리)씨가 인형의 얼굴을 매만지는 중이다.
김보영(35, 옥천읍 금구리)씨는 인형의 얼굴을 매만지는 중이다.

 여기까지는 고참들의 이야기. 닥종이인형 수업에는 3명의 신입생도 있다. 김보영(35, 옥천읍 금구리)씨는 닥종이인형 수업에도, 옥천에도 새내기다. “옥천 온 지는 1년 됐어요. 11월에 결혼하거든요. 평생학습원 프로그램이 많아서, 재미있어 보이는 걸 신청한 거예요.” 신한나(57, 안내면 정방리)씨는 평생학습원 수업을 여러 개 듣는다. 연필화, 엑셀, 홍보블로그... “학창시절 하고 싶어도 못 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돼서 너무 감사하지요.” 유지윤(옥천읍 장야리)씨는 없던 취미가 생겨 삶에 생기가 돈다. “닥종이인형의 장점이요? 귀엽잖아요. 이거 입술 보세요, 아유 귀여워.”

"입술 좀 보세요. 너무 귀엽잖아요. 아유 귀여워."
"입술 좀 보세요. 너무 귀엽잖아요. 아유 귀여워."

 채 다 못 쓴 닥종이인형 이야기들이 아직도 참 많다. 16일부터 한 주 동안, 평생학습원에 이들이 만든 닥종이인형의 작은 전시회가 열린다. 여기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은 그날 그곳에서 마저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중한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날을 위해, 오늘도 닥종이인형 수업의 학생들은 뚝딱뚝딱 망치질을 한다.

김진희 강사가 이숙화씨의 인형 얼굴을 다듬고 있다.
김진희 강사가 이숙화씨의 인형 얼굴을 다듬고 있다.
닥종이인형 수업 중인 모습이다.
닥종이인형 수업 중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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