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옛날 옥천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1989년 옥천신문이 나오기 전 옥천 소식이 궁금하다고요? 옛날 신문을 파헤쳐 그 옛날 옥천 소식들을 속속들이 알려드립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검색해보니 다행히 1920년도부터 옥천이란 키워드로 여러 기사가 나오더라구요. 그 중 흥미로운 기사를 찾아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100년 전 과거의 옥천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같이 읽어보아요. 

 ■ 음모 사건에 얽힌 박열과 그 애인 (1923년 10월18일 동아일보)

사랑의 이념의 공명으로 감옥에까지도 같이 갔다. 
작지에 보도한 동경진재 당시에 큰 음모를 도모하던 무정부주의자의 두령이 되는 사람은 박열이라는 조선 청년이다.

그는 동경에 오래동안 머물러 있으며 동지의 사회주의자를 모아 가지고 '흑로', '후데이센징' 등의 이념선정인잡지를 발행하는 청년인데 그의 뒤를 따라서 목하 그와 함께 철창에 신음하는 곳에 같이 있는 여성이 있었으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후데이센징 등 잡지에 박문자라는 이름으로 여러가지 기염을 토하던 일본여자 금자문자(22)이다.

그는 일찌기 박열과 상사의 애정이 얽히어 이념과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좋은 모범을 보인 박열의 애인이니 그와 그가 만나기까지의 금자문자의 전반생은 실로 한권의 소설과 다름없는 로맨스가 숨겨 있다.  

문자는 이제로부터 십년전 조선 충청남도 옥천에 건너와 열세살 때에는 어느 조선 소년과 꿀같은 사랑의 꿈을 꾸게 된 결과는 마침내 부모의 의견을 좇아 동경으로 쫓겨가서 어느 사회주의자의 집에 몸을 부치어 쓸쓸한 꿈을 계속 꾸던 중 모여드는 청년주의자들의 넘치는 사랑속에서 특히 멀리 고국을 떠나 이념에 희생하는 박열의 품에 안기어 모든 것을 잊고 오직 박열과 이념을 위하여 활동을 하다가 이번 음모 사건에 박열과 함께 입감된 것이라더라.

▶ 이는 오보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 박열에 나오는 가네코 후미코(박문자)는 옥천이 아닌 세종시 부강역 인근(문의군 삼도면)에서 살았다고 나온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비참한 생활을 전전하던 가네코 후미코는 1912년 할머니와 고모 부부가 살고 있던 조선 부강으로 갔다.

부강공립심상소학교 4학년에 입학해 학교 공부를 잘 했던 것으로 나온다. 이는 영화 박열이 주목을 끌었던 2017년 전 청원군 부용면장을 지낸 이규상 향토사학자가 상세히 밝혀 언론에 발표하기도 한다. 

 

■ 옥천삼남학당 신축 (1923년2월23일 동아일보)

충북 옥천군 청남면 삼남리 안영근, 김경순, 송옥헌 등 제씨의 발기로 올해초부터 개교된 삼남학당은 근래교사가 협착하여 교실을 신건축중이라는 오는 5월에는 완성되리라더라. 

▶ 궁촌재 너머 삼남리가 청성면이 아니라 청남면이라는 것도 낯설다. 1914년 청산군이 옥천군에 통폐합되기 전에는 청산군은  5개 면으로 구성됐다.

남면이 청남면으로, 서면이 청서면으로 바뀌었고, 동면, 군내면, 북면이 청산면으로 통합되어 옥천군이 폐합된 것. 그리고 청성면 삼남리에 삼남학당이 설립되었다는 것도 새로운 사실이고 그 위치가 어디였는지 궁금해진다. 

 

■ 박씨의 자선심 (1923년4월 28일 조선일보)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 거주하는 박재순씨는 원래 자선심이 풍부하여 빈민구제 진력하던 올해 봄에 같은 면에 극빈자 삼백여 호 세금전부를 자담하여 납부하였음으로 면민일동은 박씨의 자선심을 막불칭송하더라. 

▶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것처럼 어려운 시대에 주민들을 삶을 같이 나눠지려 했던 선인은 어디선가 나오게 되어 있다. 적하리 박재순씨의 후손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 옥천에 한소 (1923년 6월28일 조선일보)

충청북도 옥천군에서도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산야에 있는 수목잎까지 마르는 형상은 참아 볼수가 없는바 그 중에서도 동이면 등지가 심하여 먹을물까지 거의 없다시피 하였음으로 더욱 야단이 나더니 지난 16일에 그 동리의 진귀보 형제와 성치욱과의 사이에는 물싸움을 하다가 진씨 형제는 성씨를 구타하여 2-3일 앓다가 죽어버렸음으로 진씨 형제는 체포되어 취조중이라더라. 

▶ 올해도 한동안 가뭄이더니 100년 전 옥천에도 가뭄은 깊었나보다. 먹을물까지 없을 지경이라니 얼마나 심했을까. 나라나 관청에서 구제첵을 마련하지 않으니 주민들간에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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