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귀농 꿈꾸며 내려온 도시청년
슬라럼, 랩, 클라이밍 등 다재다능한 송영철씨

지난 5월 17일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 일환인 마을탐방 중 보리밭에서 찍은 송영철(36)씨 사진이다.

지난 5월부터 사회적기업 고래실에서 청년 프로젝트형 ‘농촌에서 살아보기’가 진행 중이다.

귀농·귀촌을 꿈꾸며 서울에서 내려온 송영철(36,서울)씨는 프로젝트 참가자이다. 안남면 배바우도농교류센터에서 숙박하며 마을 주민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학부생 시절, 가구디자인과와 자동차정비과를 다니며 배운 기술로 시골 일손을 돕고자 트렁크에 공구를 한가득 실어 온 열정 넘치는 그를 안남면 주민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해주고 있다. 그에게 이곳은 기회의 땅이고 보람찬 일이 한가득인 곳이다. 지금 그는 농촌 일원으로 자리 잡고 새로운 꿈을 펼치고 있다.

“5월 1일에 읍내를 처음 봤을 땐 ‘농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밭이랑 논이 없으니까요.

근데 지금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숙소가 넓어서 좋지만 그보다 마을 주민이 다 좋은 사람들이어서 너무 다행이었죠”

인터뷰 당일 아침에도 마을 주민들과 모여 커피 마시고 담소를 나눴다는 그는 다녀온 딸기농장에 손볼 게 하나도 없어 아쉽다고 토로했다. “근데 다른 마을에 가면 분명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전 농민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싶거든요. 누군가를 도와서 칭찬을 받을 때 보람도 느끼고 앞으로 옥천 정착 계획도 있어요. 부모님께서 다 지원해준다고 하시기도 했고요” 동네가 작아도 조용해서 좋다던 그는 안남면이 기대 이상이라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서울시 남부기술교육원 자동차정비과 재학 중 학우들과 자동차 진단 장비인 하이스캐너를 보고있는 사진이다.
서울시 남부기술교육원 자동차정비과 재학 중 학우들과 자동차 진단 장비인 하이스캐너를 보고있는 사진이다.

■ 전단지 배포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태어났고 20년 넘게 강남구 개포동에서 살았어요. 개일초등학교, 구룡중학교, 개포고등학교를 나왔어요. 그리고 2년제 국제대학교 자동차학과에 들어갔어요. 부모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기에 적성에 맞을 것 같았어요. 기술직이라 취업 걱정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의 첫 아르바이트는 18살 때부터 3개월간 한 전단지 배포. “정직하게 일했더니 알아봐 주셔서 정직원 제안을 받았어요. 사장이랑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서울 전국구와 경기도에 과외 교육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아르바이트생들한테 테이핑 방법을 알려주고 일을 잘하는지 감시도 하러 다니고 했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 그 후 군 제대와 대학 졸업을 거쳐 2007년부터 5년간 롯데마트 서울역점 드림사원으로 일했다. 계산원, FSV(First Service), 음료·주류 등 여러 업무를 돌아가며 맡았다. “드림사원은 비정규직이에요. 서류와 면접을 거쳐 정규직 전환 기회가 있다고 하지만 그냥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직원 근무시간표는 세밀하게 짜여있어요. 계산원으로 일할 당시 손님 계산을 돕다 보면 화장실도 못 갈 수 있거든요. 줄이 30m까지 서 있기도 하니까 엄청 바빠요. 그래서 근무시간이 딱 정해져 있었어요. 예를 들어 2번 계산대 근무 후 10분 쉬는시간 그리고 바구니 계산대. 이런 식으로 일을 옮겨갔죠”

마트에서 계산원뿐 아니라 1년간 FSV(First Service)도 했다. 마트를 뛰어다니며 상품의 바코드를 찾거나 계산대에서 호출신호가 뜨면 달려가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업무이다.

“FSV는 마트에 한 명 있어요. 유일하게 마트를 뛰어다닐 수 있는 사람입니다. 계산원이 벨을 울리면 제가 착용한 시계에 벨 번호가 뜨거든요. 그럼 달려가서 도와주는 거예요. 계산대에서 환불이 안되기에 고객센터로 안내해드리기도 했죠. 서비스 용어들도 많았어요. 그걸 다 익히고 열심히 임해서인지 4년 차에 전 직원 중 딱 한 명 뽑는 서비스 우수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는 2년간 음료·주류를 나르고 진열하는 일도 했다. “되게 힘들었어요. 파렛트(화물운반대)로 운반하는데 안에 삼다수가 500개 정도 있으면 인력으로 혼자 눌러 들어올려야 하거든요. 매장가다가 손님을 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하죠. 다행히 사고 난 적은 없었어요”

롯데마트 드림사원이었던 그가 정직원으로 채용되었다. 하지만 정직원 전환 이후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정직원이 된 뒤 이동한 다른 지점에서 선임을 잘 못 만났어요. 파렛트만 나르게 하고 일을 가르쳐주질 않았어요. POP(point of purchase, 상품매장에 설치하는 광고)도 안 가르쳐주셨죠” 직장 내에서 불의도 삼켜냈다. “기계차 입식을 탈 때 방향 전환을 어려워했어요. 그 때문에 자기만 지게차를 운전하니까 화를 내더라고요. 페트병을 집어던지고 그랬어요. 되게 기분 나빴고 지금 생각해보면 보직 이동을 했어야 했는데 그냥 그만뒀죠. 그리고 다시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가서 보안업무를 하다가 금강제화에 지원을 했어요”

금강제화에 지원해 구두 판매 업무를 맡았다. 이월상품매장에서 손님들에게 구두를 신겨주고 물품을 찾아주는 등 일한 지 1년을 채워가던 때 정직원 전환 기회가 찾아와 면접에 도전했다. “면접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근데 면접관들이 제가 일을 잘한다고 알바로 일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6개월 더 일하다가 그만뒀어요. 정직원을 꿈꾸고 들어간 곳인데 계속 아르바이트생으로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학교에서 배웠던 걸 써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20대 후반. 그는 서울시 남부 기술교육원의 자동차정비과에 들어가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국제대학교에서 자격증을 못 따고 졸업해서 다시 기술 학원에 들어갔어요. 졸업 후 강남구 현대자동차에 취업했어요. 근데 3개월 있다가 그만뒀어요. 겨울에 불 때서 난방비 아낀다고 매일 장작 패기만 시키더라고요. 배우는 게 없으니 그만뒀습니다” 현대자동차를 그만두고 외삼촌이 운영하던 GS25 대방서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곳에서 2년 반을 보냈다. “1년 일하고 가맹점장 제안을 받았어요. 발주도 넣고 알바생을 뽑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시 기술을 하고 싶어서 남부기술교육원 가구디자인과를 1년간 다녔어요. 수동보드와 많은 기계를 다뤄보았죠. 가구공예사 자격증 시험엔 떨어지고 거푸집 기능사에 합격해서 졸업을 할 수 있었어요”

학교 졸업 후 남는 시간엔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가만히 있는 게 적성에 안 맞아서 또 재밌어서 했단다. “몸이 근질근질하더라고. 가만있질 못했어요. 그리고 GS25 낙성대동점에서 4년 더 일하다가 올해 1월에 그만뒀어요. 그리고 3월엔 쿠팡이츠(배달 음식) 오토바이 배달을 시작했어요. 편의점에서 가만히 서서 일할 때마다 오토바이들이 앞을 지나가는 게 부럽더라고요” 하고 싶어서 시작한 배달. 근무 중 큰 사고가 나기도 했다. “교통사고가 났었어요. 한방병원에 2주간 입원도 했어요. 초록불에 직진하는데 SM3가 비보호 좌회전으로 들어와선 오토바이를 친거죠. 다행히 보호장비를 다 착용하고 있어서 크게 다치진 않았어요. 다 나아선 편의점 일을 더 했는데 익숙한 일들이 지루하게만 느껴져 옥천에 내려간다고 말씀드리고 그만뒀습니다” 옥천에 오기 전 한 달간 귀농귀촌종합센터에서 200시간 교육을 들으며 귀농·귀촌을 준비했다. 스마트팜, 딸기농사 등 다양한 정보를 얻었지만 가장 기억 남는 건 농촌의 텃세와 주민과 융화되는 것이었다.

2년전 가입한 클라이밍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클라이밍을 하곤한다. 팔힘만으로 몸을 들어 올려 홀더를 잡는 캠퍼싱 기술을 선보이고있다.
2년전 가입한 클라이밍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클라이밍을 하곤한다. 팔힘만으로 몸을 들어 올려 홀더를 잡는 캠퍼싱 기술을 선보이고있다.

■ 어디로 튈지 모를 그의 취미

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종목의 운동을 해왔다. 고등학교 땐 대한검도 학원을 다니며 1년간 기본기를 다졌다. “해동검도도 했는데 대한검도를 주로 했어요. 1년 넘어서 대회를 나갔다가 2:1로 진 뒤로 검도는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종목을 바꿨어요”

대학생 때 쇼트트랙을 시작했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장에서 8개월간 배웠다. “선수하려다가 그만뒀어요. 어릴 때부터 해온 잘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거든요. 그리고 장비도 엄청 비쌌어요. 스케이트 한 켤레에 60만원 정도 했죠”

인라인 슬라럼(콘컵을 일정하게 배치하고 지그재그로 통과하는 경기)도 했다. “1년 했는데 밤낮이 없이 보라매공원에서 '광기' 동호회 회원 30명과 열심히 했어요. 비 올 때는 바퀴가 젖으면 안 되니까 지하보도에서 타기도 했죠”

운동을 통해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복싱장도 찾아갔다. “구룡복싱장에 수강생으로 갔어요. 3개월 배우다가 관장님과 마음이 맞아서 총무 제안을 받기도 했죠. 맨날 놀러 다니고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어요”

클라이밍 동호회에 가입한지 2년 반이 지났다. 지난 4월부터 동호회 반장이 된 그는 계획한 바도 많다고 전했다. “계획한 건 많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무산되는 경우도 많아요. 크루 티셔츠나 단합회가 예시가 될 수 있겠네요. 동호회 회원은 144명이에요. 같이 클라이밍을 하고 싶어서 가입한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사실 몇 명 모이기도 힘들어요. 다들 서울 전역에 퍼져 사니까요. 저희 동호회는 양제, 홍대, 신림, 서울대 등등 이곳저곳 다니며 클라이밍 하고 있습니다”

중학생 때 랩을 좋아하는 친구의 영향으로 입문하게 된 랩. 당시 친구가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에 감명받았다고 전했다. “지금은 내가 더 잘 불러요. 작사 작곡도 직접 해서 사운드클라운드(음원공유어플)에 올리기도 해요. 페이스북에 올리고 싶어도 영상이 있어야 하니 많이 올리지는 못했어요. 가지고 있다가 없어진 것도 많아요. 그땐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었는데 옥천 와서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아요”

그는 유튜브에 채널도 개설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할 때 시작했어요. '도리도리 편도리'하면서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했거든요. 지금은 하나 남겨두고 영상을 다 지웠습니다. 집도 다 나오니까 사생활 노출이 염려되었거든요” 현재 ‘mc장단점’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은 하나뿐이다. ‘클라이밍과 힙합의 오묘한 조화’라는 제목의 영상은 그의 취미인 랩과 클라이밍을 조화롭게 담아낸 5분 남짓한 영상이다. 배움에 있어서 주저 없고 진취적인 송영철씨. 그의 다재다능한 재능이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한껏 발휘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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