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직 이후 옥천으로 귀촌 결심한 충남대 철학과 양해림 교수
더불어 사는 삶이 진정한 행복, 자기가 잘 하는 일로 공동체에 환원해야

마항리 망기마을회관 인근 자신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전원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양해림 씨
마항리 망기마을회관 인근 자신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전원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양해림 씨

'화양연화'라 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때를 말하는 말이다. 누구에게는 겁 없던 젊은 날의 패기롭던 시기를 회상할 수도 있고 어떤 누구는 많은 돈을 벌던, 소위 잘 나갔던 시기를 회상할 수도 있다. 

이토록 사람마다 화양연화가 다른 이유는 행복의 기준이 달라서가 아닐까. 한평생을 교단에 머문 양해림(61, 옥천읍 마항리)씨의 행복은 옛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했듯 제자들의 가능성을 찾아 길을 밝혀주는 일이었다. 

올해 8월까지 연구년, 이제는 3년 여가 지나면 교단에서 물러나 옥천에서 본격적으로 인생의 2막을 준비하고 있는 양해림 교수의 다음 행복은 무엇일지, 그가 지나온 삶의 기록을 들어보았다. 마암리를 지나 마항리, 망기미마을회관 언저리에 차를 세워놓고 골목길 따라 들어가보니 양해림 교수의 새로운 집이다. 앞뜰에는 잔디와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뒷뜰에는 작은 텃밭이 자리한다. 얼마 전부터 아내가 위탁 운영하는 군서면 하동리 마리뜰 카페 옆 목공공방에서 직접 은행나무를 넣어 만든 에폭시 테이블도 데크에 자리하고 있다. 작지만, 주거동과 연구동을 만들고 아흔의 아버님을 모시면서 슬기로운 전원생활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지난해 11월에 이사해 한 6개월이 지나 마을 사람이 다 됐다. 뒷집 포도농사 짓는 황두현씨와는 막걸리 몇 잔 이미 한 사이이고, 같은 마을에 사는 충북산과고 황인문 교감과도 여러 차례 마실을 오가며 이야기를 한 사이이다. 앞으로 여생을 보낼 마을의 이웃과 잘 교류하는 것도 행복의 시작이다. 운전면허가 없다. 그래서 걸어다닌다. 학교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 읍내까지 족히 30분을 걸어서 607번을 타고 대전으로 나가 지하철을 타고 내려 충남대학교까지 또 걷는다. 뚜벅이 생활은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느린 풍경을 보고 사색하는 버릇이 생겼다.  

■ 춘천, 베를린, 대전, 그리고 옥천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강원대 철학과를 진학해 철학의 본고장인 베를린으로 떠났다. 독일 홈볼트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으니 이제는 사십대를 코앞에 둔 나이. 한국에 돌아와 정신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니 자연스레 자신의 행복은 학생들의 성공이었다. 

“20대에 강원대학교에서 철학과를 전공하고, 30대에 독일로 떠났죠. 독일에서도 이곳저곳 옮겨 살면서 열심히 했어요. 한국에 와서는 춘천이랑 서울에서 강사로 있다가 한림대를 거쳐 2000년 즈음에 충남대 철학과에 부임했죠. 충남대에서만 벌써 20년이 지났어요” 

8년 동안 독일에서 지내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다고. “당시에 동양인 차별하는 것도 있었지만, 마늘 냄새 난다고 독일어가 서툴다고 차별을 몸소 느꼈어요. 외국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음식이 제일 문제였죠. 나중에 아내가 아이를 낳고 독일에 돌아와서 그나마 직접 같이 해먹었지요. 당시에는 살도 엄청 빠졌어요” 그는 맨 처음 마르크스의 고향 독일 트리어에서 공부하다가 베를린으로 옮겨 공부했다. 당시 독일에 유학했던 진중권 교수, 강수돌 교수와도 같은 시기에 있었고 가끔 만나기도 했다고. 

마항리에 자리잡은 양해림 씨의 새로운 보금자리

■ 어울려 사는 삶이 가장 큰 행복, 자기가 잘 하는 일을 찾아야 해

사람 없인 사람으로 못 산다고 했던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는 게 철학이라면, 그 끝은 사람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한 평생을 철학에 몸담은 양해림 교수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론에서 처음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행복이 사람들을 거치면서 더 커져간다는 거죠. 달리 말하면 자기 스스로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자기가 만족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뭘 잘하는지 찾아야 돼요. 예를 들면 젊었을 때는 자기가 음악에 소질이 있는지, 문학에 소질이 있는지 잘 모르잖아요. 자기가 잘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얼마나 만족스럽겠어요. 그래서 그 맥락이 저는 마음에 참 와닿았어요” 

이어서 양해림 교수는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혼자 만족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만족해야 돼요. 자기가 잘 하는 일을 하면서 공동체에 환원하는 게 중요한 거죠. 아주 고대의 이야기지만 어울려 사는 삶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다는 게 마음에 참 와닿아요”

그는 이미 3년 전부터 옥천에 온 옥천 사람이다. 양우내안애 아파트에 살다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책을 옮겨 놓을 서재를 마련하고자 마항리 망기미 집을 구입한 것. 헌집을 구매했던 터라 손이 많이 갔다. 그래도 내 집이라 생각하고 고치는 재미에 흠뻑 빠지니 반 기술자가 됐다. 그가 행복론에서 말한 것처럼 그의 서양철학 강의가 지역에서 쓸모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다. 

“정년 퇴임을 하고 옥천에 와서 여유롭게 살면서 소소하게 제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한국에 와서 강사기간까지 포함하면 인문학을 30년 가까이 가르쳤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공부를 하면서 자필 활동도 하고, 인문학 강의도 만들어서 제가 잘하는 일로 사회에 환원해야죠. 공동체와 어울려 사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니까요”

5월16일, 귀촌을 준비하고 있는 양해림 씨가 본인의 새로운 마항리 보금자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5월16일, 귀촌을 준비하고 있는 양해림 씨가 본인의 새로운 마항리 보금자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원주택 앞 뜰에 조성되어 있는 잔디와 정원들을 설명하고 있다
전원주택 앞 뜰에 조성되어 있는 잔디와 정원들을 설명하고 있다

■ 활발한 연구활동, 지역사회 목소리에도 앞장

양해림 교수는 전공 분야인 환경·사회철학에 대한 연구활동과 더불어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활발한 활동을 진행했다. 2014년부터 대전광역시 인권정책위원회 위원장, 2013-2016년까지는 충남대 시민사회연구소 소장, 2013-2015년까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2015년부터  충남대 인문과학연구소장까지 굵직한 사회참여적 직책을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양해림 교수의 저서 『딜타이와 해석학적 사회체계』가 ‘2021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인문학 분야에 선정된 것. 그가 낸 책은 38권이나 된다. '인권과 사회'(2021. 충남대 출판부), '남들이 원하는 것을 바라는 나, 이상한가요?'(2021, 자음과 모음), '(현대인을 위한) 서양철학사'(2020. 집문당), '공학도를 위한 공학 윤리'(2018, 충남대), '기후변화, 에코철학으로 응답하다'(2016, 충남대), '대전 원도심, 문화예술의 개성을 찾아나서다'(2015, 충남대), '지역사회의 인권을 외치다'(2013, 충남대) 등 철학과 연계된 다양한 분야에서 책을 집필했다. 

아울러 지난 달(4월)에는 옛 충남도청 공간활용에 대한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앞장섰다. “제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를 10년 정도 하고, 대전 시민사회소장을 4년 정도 했어요. 그러면서 대전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 힘을 썼죠. 충남대학교에 시민사회연구소도 만들었어요. 지역에 있는 목소리들을 모아 문화를 기록하고 연구하면서 여러 교수님들이 모여 책을 집필했던 거죠” 

그는 지역에 천천히 스며 들고 있었다. 번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스며드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엔딩 크레딧에 도움을 준 모든 이들의 이름이 올라오면 비로소 영화가 끝난다. 양해림 교수의 행복도 엔딩 크레딧과 같지 않을까. 검은 화면 속 올라오는 이름들을 적는 과정, 그 과정 속 더불어 사는 삶이 양해림 교수의 진정한 행복인 것 같았다.

인터뷰 중 양해림 씨가 내려준 옥천 로컬 목련차
인터뷰 중 양해림 씨가 내려준 옥천 로컬 목련차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