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구읍 교동카페에서 유창숙 작가 개인전 열려
다채로운 꽃과 함께 스마트폰에 시선 갇힌 현시대 반영
어릴 때 좋아한 그림 … 30대 때 인물화 그리며 활동 시작

지난 3월 한 달 동안 갤러리카페 교동에서 개인전을 연 유창숙 작가. 그는 매주 옥천문화원에서 서양화반 문화교실 수업을 하고 있다.

몸을 움츠러들게 했던 겨울추위가 잦아들고 포근한 봄기운이 주위를 감돈다. 겨울잠에 깨어난 봄꽃들은 기지개를 피며 봄이 왔다는 소식을 알린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저마다 색과 향기를 뽐내는 꽃을 보러 나들이를 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정처 없이 구경하며 걸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가만히 꽃망울을 바라만 봐도 알 수 없는 떨림이 나를 설레게 하니까.

자기 삶을 꿋꿋이 살아내는 꽃은 그런 묘한 끌림이 있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갤러리카페 교동에서 개인전을 연 유창숙(62, 대전 동구) 작가 또한 끌림이라는 묘한 감정에 이끌려 해바라기, 모란, 붓꽃, 백합을 보며 붓을 잡았는지 모른다. 그는 작업실 화단에 키우는 꽃을 스케치한 뒤 유화 기법으로 색을 입히고, 건조하고, 색을 또 올리는 작업을 여러 번 거쳐 정밀함과 깊이를 더했다.

백합이 스마트폰 화면 밖으로 나오는 듯한 입체감을 냈다.
백합이 스마트폰 화면 밖으로 나오는 듯한 입체감을 냈다.
유 작가는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는 게 본연의 모습이라고 봤다.
모란. 스마트폰 화면 안과 밖의 색 차이를 드러냈다.
유작가가 유화기법으로 색을 입히고 건조하는 과정을 거쳐 그림을 그렸다.
활짝 핀 해바라기와 스마트폰의 공존이 보는 이에게 궁금증을 만들게 한다.

■ 매주 찾아오는 옥천에 반했어요

단순히 꽃을 보이는 그대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그쳤다면 유 작가의 그림은 평범해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전시한 작품 16점은 꽃과 함께 스마트폰이라는 이질적인 이미지를 넣어 호기심을 일으켰다. 어떤 작품은 스마트폰 화면 안에 있는 꽃에 색을 넣은 반면 화면 밖은 흑백으로 표현했다. 어떤 작품은 스마트폰 액정 바깥으로 꽃이 뛰쳐나오는 것 같은 입체감을 살렸다.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정보를 접하는 시대가 다가왔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관심을 두는 분야만 보고, 관심이 없는 건 아예 생각조차 안 하죠. 관심 분야에서 벗어난 부분을 흑백 처리한 거예요. 그리고 스마트폰 바깥으로 꽃이 뛰쳐나오는 그림은 그런 거예요. 내가 뭐에 꽂혔어. 갖고 싶은 물건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밖에 안 보이잖아요. 거기에 완전 몰입이 되는 거죠. 그렇게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을 제가 좋아하는 꽃들로 표현해본 거예요.”

옥천을 포함해 지금까지 여덟 번 개인전을 연 유 작가는 지난해 7월부터 옥천문화원에서 서양화반 문화교실 수업을 맡고 있다. 그는 매주 수요일 강의를 하러 전날 이원면에 있는 주말주택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그동안 문화원 회원들과 정을 나누고 만남을 이어간 유 작가는 점점 ‘옥천에 반했다’고 한다. 충남 서산이 고향인 그는 가까운 대전보다 어렸을 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옥천에 더 정감을 느꼈다고.

■ 연필로 정밀하게 인물화를 그렸던 시간

유창숙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집안 형편상 꿈을 키우지 못 했다. 그의 부친 또한 ‘환쟁이’가 되지 말라는 싸늘한 시선을 보냈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고. 본격적으로 그림 세계에 입문한 건 결혼하고 30대가 되었을 무렵. 스케치북과 HB연필, 4B연필 등 비교적 값싼 재료를 갖고 혼자 방에서 인물화를 했다. 가까운 가족부터 시작해 종이신문에 나오는 연예인 사진도 그림 소재가 됐다. 돌아보면 왜 이렇게 늦게 시작했나 후회도 되지만 혼자 고민하고, 책을 보고, 그림을 그렸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어렸을 땐 너무 평범해서 표도 안 났던 학생이었어요. 그래도 학교 미술시간이 되면 점수는 잘 나왔던 거 같아요. 야외 운동장에 나가서 스케치하는 시간이 오잖아요. 친구들이 저한테 그림을 맡겨놓고 자기들은 놀고 그랬어요. 제가 ‘너무 많아서 안 돼’ 그러면 ‘너가 빨리빨리 잘 그리잖아’ 친구들이 그랬거든요. 그때 학교 동창들을 만나서 작가 활동을 한다고 말하면 ‘당연하지, 너 그럴 줄 알았어’ 이래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그림에만 빠졌던 적이 있다. 오죽했으면 자택에서 작품 활동을 할 당시 유 작가의 아들이 ‘나는 엄마 뒤통수만 보고 살았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앉은 자세로 오랜 시간 작업하다 보니 목과 허리에 고질병을 안겨준 원인이 됐다. 그러나 그는 더 큰 압박 속에 자신을 가두며 고난 이상의 성취를 얻어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걸 넘어 ‘그림에 미친 여자’였다고 그는 말한다. 가족의 응원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됐다.

“개인전을 열거나 어디 전시에 참여할 때 돈이 들잖아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당신은 명품 옷 안 좋아하잖아. 명품 가방 안 사잖아. 남들은 가방 하나 값도 안 돼. 한 번 해봐.’ 거기에 힘을 얻었던 거 같아요. 아무리 그림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여자는 가족이 우선일 수밖에 없잖아요. 남편이 이해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그림을 못 그렸을 거 같아요.”

전주 한옥마을의 소품 가게를 표현한 작품으로 제목은 '엿보기-오월에'이다.

■ 거부할 수 없는 훔쳐보기의 마력

이번에 전시된 그림 중 ‘엿보기-오월에’라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유 작가가 어느 5월에 전주 한옥마을의 한 소품 가게 앞을 지나가다 찍은 사진을 사실화로 그려낸 작품이다. 화단에 있는 풀과 꽃, 아담한 펌프, 가게에 진열된 옷, 장식품, 컵, 가방, 전화기, 액자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 유리에 비친 반대편 건물과 자동차 그리고 사람 모습도 보였다. 작품 제목을 엿보기라 지은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어디를 지나가도 사람들은 슬쩍 엿보는 걸 즐겨 해요. 남을 훔쳐보는 것도 해당되겠죠. 엿보기란 게 그런 뜻도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물건, 옷들이 저 안에 있잖아요. 사람 욕심이란 게 끝이 없어요. 내가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또 갖고 싶고, 만족을 못 하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할까요? 저 안에 있는 남의 것들을 갖고 싶어서 자꾸만 기웃거리고 엿본단 말이에요. 사고 싶고, 갖고 싶고, 소유욕이죠. 그걸 표현한 거예요. 우리는 어디까지 욕심을 부릴 수 있을까. 사람은 끝이 없데요. 내면에 있는 욕심이죠.”

시인은 시로 말하고, 가수는 노래로 말하듯, 유 작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똑같은 백합을 그려도 화가 특유의 표현 기법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그림은 다르게 나오기 마련. 그는 자기만의 개성으로 행복과 기쁨, 희망을 전하고 싶어했다. 끝으로 그는 옥천과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 언젠가 옥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인사를 전했다.

“그림을 가만히 보면 ‘왜 이렇게 어두워졌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마음을 다잡기도 해요. 그림이 꼭 밝아야만 좋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작가 내면이 작품에 남거든요.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며 기쁨과 즐거움을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작품성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드는 게 우선이거든요. 좋은 걸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유창숙 작가 작품을 봤는데 난 우울해졌다’ 이런 걸 원치 않아요. 기분이 상쾌해지고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림은 힐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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