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옥천에 극단 [향수] 설립, 향토극단으로 만들어 나가고파
뮤지컬 [꽃신] 9월 공연 목표로 준비 중

귀농 당시를 회상하는 이종서 대표
귀농 당시를 회상하는 이종서 대표

연극 영화 경력 40년. 아리랑 엔터테인먼트 이종서 대표(58, 군북면 소정리)가 쌓아온 삶의 이력이다. 그런 그의 이력에 한 줄이 추가됐다. 옥천에 기반을 둔 극단 <향수>를 설립한 것이다. 

보은군 회남면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지망했지만 떨어졌다. 이후 안양대 국문과에 들어가서도 영화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군대에 있을 때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정신과 의사, 선생님 같은 배역은 늘 제 몫이었죠. 제가 좀 점잖은 이미지인가봐요” 

배우로 영화 산업에 입문한 그는 영화 제작으로 활동 경력을 쌓았다. 아동 코미디 분야가 전문이었다. 이수근이 출연한 <바리바리 짱>에서 제작을, 김병만이 주연을 맡은 <서유기 리턴즈>에서 기획을 담당했다. 그런가 하면 눈물 쏙 빼놓는 실화 기반 뮤지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꽃신>,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소재로 한 <독일 아리랑> 모두 그의 손에서 나온 작품들이다. 이태석 신부의 인생을 다룬 <울지마 톤즈>의 뮤지컬 버전에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그가 이렇게 제작에 참여한 작품 수만 30여 편에 이른다.  

이 대표의 아리랑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은 서울에 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실제로 서울에 상주하는 날은 별로 없다. 예술 분야 특성상 일이 규칙적으로 있는 것도 아닌데다 한 장소에 매여 일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주 4일 정도는 옥천에서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나면 버스를 타고 옥천 곳곳을 다녀본다고 한다. 장날이면 읍내에 나가기도 한다. 연극에 반영할 수 있는 소재를 찾기 위함이다. 

■ 귀농으로 시작된 인연, 극단 설립으로 이어져

이 대표는 귀농으로 옥천과 인연을 맺었다. 15년 전쯤 군북면 소정리에 땅을 매입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그곳에 집도 지었다. 지금은 복숭아, 사과 묘목 등을 기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을 문화예술인들이 머무르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 이 대표의 목표다. 귀농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다. “미디어에서 소개된 귀농과 현실과 다르더라구요. 혼자서 이런 저런 일을 하다보면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그래도 일 하다가 대청호를 바라보면 졸아든 마음이 탁 트여서 좋아요. 옥천은 대청호를 비롯해 천혜의 자연 환경이 잘 갖춰진 곳이잖아요. 여기에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좀 더 조성되면 금상첨화 아닐까요” 그는 문화와 자연이 한 데 어우러진 옥천을 꿈꾸고 있다. 

이 대표는 극단의 이름인 <향수>를 정지용 시인의 시 제목에서 따왔다. 그가 처음 기획한 뮤지컬 제목도 <지용>이다. “처음에는 정지용 시인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뮤지컬에는 노래랑 춤이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노래에 정지용 시를 넣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작가하고 협의해서 시놉시스도 짜 놨었는데요. 마침 음성에 있는 ‘<해보마>’극단에서 정지용 시인 관련 연극을 준비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올해는 <꽃신>을 먼저 올릴 계획이에요” 

<꽃신>은 이 대표의 대표작이다. <꽃신>은 일제강점기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첫 공연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배우 윤복희 씨가 주연을 맡았다. “30명 이상 출연한 대형 뮤지컬이었죠. 옥천에서는 좀 간소하게 재구성해서 공연할 생각이에요. 옥천 주민들도 배우로 출연할 예정이구요. 출연 배우의 60% 이상은 옥천 주민들로 채우려고 해요” 이 대표는 보통 배역을 연습하는 데 3개월은 걸리니 9월에 공연하려면 부지런히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첫째 딸도 뮤지컬 배우다. 부녀가 모두 시차를 두고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셈. 이 대표의 딸은 <꽃신>에 스태프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꽃신>을 통해 학생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학교 쪽에도 적극 홍보를 할 생각이라고.

■ 주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극단 될 것

이 대표의 장기 목표는 향토극단을 만들어 옥천 주민들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지금은 옥천에 기반이 있는 극단이 없어요. 타 지역에서 잠깐 와서 공연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죠. 극단 <향수>가 최초로 옥천에 지역 기반을 둔 향토극단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옥천에서는 농번기가 시작되면 멀리까지 나가 문화 공연을 볼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대표는 마을 회관 등에 ‘찾아가는 공연’을 열어서 멀리 나가지 않고도 연극을 감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려고 한다.  

이 대표는 향토극단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지역 내에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문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문화 생태계의 예로 든 것은 ‘상설공연장’이다. “상설공연장이 하나 생기면 정말 좋죠. 배우와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거잖아요. 배우 입장에서는 꾸준히 공연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거고요”

이번에 극단 <향수>를 열며 첫 발을 뗐지만 걱정도 많다. 연극은 예술이지만 극장이 운영되려면 자본이 어느정도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극단이라는 게 혼자서만 이끌어나갈 수는 없거든요. 주민들과 행정기관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어야 극단 <향수>가 지역에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대표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뮤지컬 하나를 만드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흐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상 단계부터 시작하면 2~3년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그 중에서 예산을 마련하지 못해 엎어지는 경우도 있다. “1년에 두 편 정도씩 공연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제 첫 걸음을 떼지만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나가다보면 옥천”에서 무언가 결실을 맺을 수 있지 않겠어요" 이 대표는 밝지만 짐짓 결연한 목소리로 자신의 다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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