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여행 시] 진행자 황예순씨가 말하는 ‘시 치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가르침을 배울 수 있지요.”

시(詩)가 주파수를 타고 구겨진 마음을 다림질한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데는 정해진 방도가 없지만, 시는 어떤 약보다도 강력한 치유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시는 삶의 매 순간을 건드리기 좋은 문학적 도구라고 생각해요. 시 한 줄 속에서 마음의 꽃을 피우며 나와 타자를 발견하고 소통할 수 있죠.”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시로 청취자들을 만나는 <마음 여행 시>의 진행자 황예순(55, 안내면 인포리)씨가 말한다.

황예순씨는 심리상담사이자 안내면 인포리에 위치한 도자기·칠보 체험 공방 ‘천년비색’의 대표다. ‘시 치유’를 했던 경력을 살려 직접 옥천공동체라디오에 프로그램 기획서를 내고 지난 1월20일부터 <마음 여행 시>를 진행하고 있다.

시 치유란 시를 매개로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도록 돕는 심리치료 방법이다. 내담자가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직접 쓰기도 한다. 은유와 상징, 절제가 있는 시는 내면의 깊은 곳에 도달해 감정을 수면 위로 올린다.

■ 독서 멀리 하는 청소년들에게 시를 건넸다

왜 하필 시일까. 결혼 후 늦깎이 학생으로 상담 공부를 시작하며 관심을 보인 분야는 ‘청소년 인성 교육’이었다. 내 아이가 잘 성장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들, 곧 모든 아이들이 바르고 행복하게 성장해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그러다 대학원 석사 과정 중 독서치료를 접하고 이에 매력을 느꼈다. “책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겠다 싶어서 독서치료로 방향을 전환했죠. 그래서 가출 청소년을 만날 때나, 위 클래스(교육부의 학교안전망구축사업의 일환으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상담 교실)에 가면 독서치료를 시도했었어요.”

문제는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60분에서 90분 정도인 상담 시간 안에 책을 읽고 상담을 진행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매개체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시로 치료하기 시작한 거예요.” 

시 치유는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된다. 주제에 맞는 시를 낭송하고 음미하며 시에 대한 감상을 나누다 보면, 마음 속 깊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다른 심리치료 방법과 달리 시 치유가 좋은 점은 내담자가 스스로 길을 찾는다는 것이에요.

상담사가 해결책을 제시하고 알려주는 건 한계가 있거든요. 시 속에 담긴 에너지를 자기화하는 거죠.” 그의 시 치유 내담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청소년은 물론 학부모,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시로 만났다.

■ 방황 전문가? 경력 부자!

돌이켜보면 시는 일찍이 그의 삶에 스며들었다. 한창 방황하던 20대 때는 더글라스 맥아더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살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려고 그 시를 가슴 속에 새겼어요. 이런 구절이 있거든요.

약할 때 자신의 약함을 알 수 있을 만큼 강하게 하시고 두려울 때 자신을 직면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하게 하시고…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그 시가 와 닿았나 봐요.”

청춘 앞에는 ‘방황’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듯 그의 20대도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 때는 제 지지 기반이 없어서 늘 불안하고 답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존감을 높이고 자기표현을 향상시키는 독서치료에 관심을 갖지 않았나 싶어요.”

상담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나는 끈기가 없는지, 한 길만 진득하게 파지 못하는지 끊임없이 자책했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았다. 20대 초반에는 영상 편집 일에 뛰어들었다.

“언젠가 꿈을 꿨는데, 신문 속 그림들이 움직이는 거예요. 꿈에서 깨고 영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계기는 엉뚱했으나 마음가짐은 견고했다. 고향인 옥천을 떠나, 이모가 사는 경기도 안양으로 향했다. 압구정에 위치한 영상 학원도 등록해 안양과 압구정을 오갔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 6시부터 아르바이트로 하루의 문을 열었다. 오후까지 이어진 아르바이트를 마치곤 지친 몸을 이끌고 학원에 갔다. 몸을 혹사시키는 생활을 몇 개월 한 덕분에 곧바로 대전의 한 영상 프로덕션에 취직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신혼부부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면 촬영기사가 영상과 사진을 찍고, 이를 편집해주는 게 유행이었어요. 제가 편집 일을 담당했어요. 그런데 얼마 안 가 집에서 연락이 왔죠. 외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니 집에서 간호 좀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오고 영상 커리어가 끝났어요.”

고향에 온 후에도 호기심은 바닥나지 않았다. 그 호기심이 황예순씨의 경력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홈패션 강사, 평생교육사, 심리상담사, 논술학원 대표, 문화예술교육사업 기획자이자 진행자, 도예가… 젊은 날 스스로가 수수께끼였던 그는 이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상담을 공부할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저를 이해하게 됐어요. 내 안의 타고난 특성이 새롭고 창조적인 데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각기 다른 경력들에도 접점은 있다. 사람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게 돕는다는 점이다.

■ 시 하나에 위로와/ 시 하나에 사랑과/ 시 하나에 희망

황예순씨는 2017년, 시집 『금강을 걸었다』를 낸 시인이기도 하다. 옥천민예총 옥천작가회의(회장 조숙제)가 출간하는 문학동인지에도 꾸준히 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 여행 시>에서도 직접 시를 짓는다. “프로그램이 매회 주제가 다르거든요.

날빛, 행복, 사랑, 화. 그 주제에 맞게 시를 써오고 낭송해요. 나 혼자만의 약속이죠.”
매주 다른 주제로 시를 쓰고, 수백 권의 시집에서 서너 편의 시를 골라오고, 열 장 가까이 대본을 채우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라디오 한 회 준비에만 사흘이 넘게 걸리지만 그럼에도 즐겁다. “청취자들이 시를 듣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고 마음이 편해지면 좋겠어요.

삶은 이 정도면 살아볼 만하다고 그런 위로를 건네고 싶어요.”
말 속에 그의 시가 녹아있다. ‘시로 산다는 건/ 겨자씨 한 알의 작은 희망을 심는 일이란 걸/ 내 손바닥에 새겨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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