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토박이 청년’ 박병석·유성현 사회복지사를 만나다
초·중·고·대학, 직장까지 20여 년 함께 해

편집자주_ 군민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인 옥천에서 청년의 목소리는 귀하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일꾼이 된 청년의 이야기는 더욱 귀하다.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박병석(38, 읍 장야리)씨와 유성현(38, 읍 문정리)씨는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옥천에서 보냈다. 존재 자체로 귀한 ‘토박이 청년’들이다. 막역한 사이이기도 한 이들의 인연 덕에 이야기는 더욱 특별해진다. 과거의 옥천을 기억하고, 현재의 옥천을 살아가며, 미래의 옥천을 기대하는 청년들을 지난달 13일 만났다.

유성현, 박병석 사회복지사
유성현, 박병석 사회복지사

■ 20여 년의 동반자

방황하던 청소년이 어엿한 성인이 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까지의 긴 세월 동안 박병석씨와 유성현씨는 서로의 벗으로 곁을 지켰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와 직장까지 같아 20년 넘게 거의 매일 얼굴을 봤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서로의 성장과정을 더 가까이서 지켜봤을지 모른다. 공통점은 수없이 많다. 취미가 비슷한 것은 물론이고 사회복지 전공인 아내와 6살짜리 사랑스러운 딸을 둔 것까지 똑같다. “주변에서 더 신기해해요. 정작 저희는 덤덤해요.”

정확히 언제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는 모른다. 어느새 옆에는 늘 서로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인가? 제가 이 친구랑 친해지고 싶어서 장난을 엄청 치고 귀찮게 했거든요. 뒷자리에서 연필로 찌르고.

그럼 이 친구가 화를 내고. 그러면서 친해진 것 같아요.”(박병석) 옥천중학교에 다닐 당시 등하굣길이 같았던 두 청소년은 학교 밖에서도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취미가 같아 지루할 새 없었다. 어떤 날은 게임을, 어떤 날은 축구를 했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만화책을 함께 보다가 만화동아리를 만들었고, 만화경진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 친구만 입상했어요. 저는 떨어졌죠. 뭐, 축하해주기만 했어요(웃음).”(박병석)

옥천고등학교 보이스카우트 기능경기대회에서 우승해 단체사진을 찍었다. 중앙에서 상장을 들고 있는 유성현, 박병석씨.
옥천고등학교 보이스카우트 기능경기대회에서 우승해 단체사진을 찍었다. 중앙에서 상장을 들고 있는 유성현, 박병석씨.

인생의 한 페이지에 서로가 또렷하게 남아있다. 두 친구는 서로를 어떻게 기억할까. “이 친구는 어릴 때부터 세심하고 꼼꼼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복지관 어르신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박병석) “학창시절 때부터 뭘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이해력이 빠른 편이었어요. 고민도 잘 들어주고 해결책도 잘 제시하는 그런 친구. 저는 제 것만 생각하는데, 이 친구는 주변에 잘 나눠주고 배려도 잘 해요.”(유성현)
친구는 인생의 길잡이도 되어줬다. 박병석씨는 재수하던 당시 고마웠던 기억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송대 의료사회복지학과에 먼저 진학한 유성현씨가 박병석씨에게 학과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학교 구경을 시켜줬다는 것이다.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 덕에 둘은 같은 대학, 같은 과 선후배로 다시 만났다. 사회복지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각자 달랐지만 같은 길을 나란히 걷게 되었다.

“친구의 영향도 있었지만 저희 할아버지가 치매여서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었어요. 대학 졸업 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일본 대지진으로 마음을 접었죠.”(박병석) “저는 친누나의 추천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노인인구가 많아지는데 사회복지가 비전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유성현)

■ 서울살이 접고 고향 사회복지사로 10년

함께 한 시간이 증명하듯 가치관도 닮아갔다. 옥천의 사회복지사가 되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마음이 그들을 같은 길로 인도했다. 2011년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에 입사한 유성현씨에 이어 다음해 박병석씨가 입사했다.

사실 처음부터 옥천에 뿌리를 내릴 생각은 없었다. 대전에서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둘은 짧지만 서울살이도 해봤다. “저는 유학이 무산된 후 공무원이 되려고 했어요. 그래서 잠깐 노량진에서 공무원 준비도 해봤고요. 영어학원이나 방과후교실 강사로 일해보기도 하고. 1년은 서울에서 살았죠.

그러다가 현장 경험에 대한 아쉬움으로 옥천에 내려왔어요.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을 시작했고요.”(박병석) “서울에 취직이 됐었어요. 집을 못 구해서 춘천에 사는 누나 집에서 출퇴근을 했었는데…. 2주 다녀보니 못하겠더라고요. 도시가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유성현) 서울에서의 삶은 치열했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자 포근한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돌아온 고향은 곳곳이 배움터였다. 사회복지사가 되고 면단위 지역을 처음 방문해본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건물 하나 없고 논밭만 있는 상상 속의 농촌 풍경이었어요.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대상자 분들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고.

박병석(중앙)씨와 유성현(오른쪽)씨가 21살 당시 친구들과 장령산휴양림에 모여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박병석(중앙)씨와 유성현(오른쪽)씨가 21살 당시 친구들과 장령산휴양림에 모여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읍과 차이가 많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박병석) “면에 혼자 사시는 어르신 한 분이 기억나요.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외식하고 목욕해드리는 사업을 했었거든요. 그 분 집이 오래돼서 허름했었어요.”(유성현)

사회복지사가 된 지 10년, 고향의 선후배들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만은 흔들림이 없다. 최근 유성현씨는 동년배상담사를 관리하고 발달장애인 가족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업무를 맡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작년에 발달장애인 가족지원사업으로 싱잉볼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싱잉볼 프로그램은 큰 볼을 막대기로 두드리며 나는 소리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인데요. 가족 분들이 치유가 많이 됐다는 반응을 주셔서 기억에 남아요. 올해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박병석씨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복지관 홈페이지나 SNS를 관리하는 등의 홍보 일을 수행하고 있다. “저희 카카오톡 채널 회원 수가 약 990명이에요. 꽤 많은 편이거든요. 지역 주민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니 저도 일하는 재미가 있어요.”

■ 과거의 옥천, 현재의 옥천

옥천에 거주하는 청년 가운데 과거의 옥천을 기억하는 이들은 흔치 않다. 박병석씨는 학창시절 놀 곳이 없었던 기억을 더듬었다. “옛날에는 영화관이나 문화생활 공간이 없었어요. 어디서 놀았냐고요? 게임방 가거나 농구, 탁구 했던 기억이 나요.

아, 근데 소극장 같은 건 있었어요. 지금 기아자동차 위치에요. 공연은 몇 번 안 했지만.” 유성현씨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놀이터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놀이터가 몇 개 없었던 거 같거든요. 근데 요즘은 아파트가 생겨서 그런가. 놀이터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사는 옥천의 청년들이 고향에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6살 딸을 키우는 이들로서 양육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옥천에는 아이들이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시설이 몇 없어요. 그래서 타 지역으로 가기도 해요.

물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몇 있긴 하지만 미취학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은 잘 못 본 것 같아요.”(유성현) 박병석씨도 유성현씨의 의견에 공감했다. “어린이집 말고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대전에는 이마트에도 문화센터가 있는데 옥천에는 저희 딸 또래가 갈 만한 곳이 없죠.”

지역 청년의 목소리가 쉽게 묻히는 것은 그만큼 청년공동체가 쉬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도 또래 청년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동창회도 많이 없어졌거든요. 또래끼리 모이기 힘든 게 현실이에요.”(박병석) 그래도 지역 청년들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생긴다면 기꺼이 참여할 의향을 내비쳤다. “결혼하고 아이 키우는 아빠들, 이런 모임이 있어도 좋을 거 같아요. 정보도 공유하고 의견도 나누고.”(유성현)

마지막으로 옥천의 사회복지사로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러자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부탁하는 말로 입을 맞췄다. “노인·장애인복지관이라고 해서 노인이나 장애인 분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거든요.

청년이나 청소년들도 저희 복지관에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봉사도 많이 참여해주세요.”(박병석) “선거철에만 사회복지 쪽에 관심을 주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또 누구나 나이가 들면 노인이나 장애인이 될 수 있으니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유성현)

지난해 3월 봄, 유성현·박병석씨의 딸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동갑내기 딸들은 그들처럼 친구가 됐다.
지난해 3월 봄, 유성현·박병석씨의 딸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동갑내기 딸들은 그들처럼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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