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사랑한다’ 말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먼저 확인했다

인터뷰 중인 윤정화(20,읍 문정리)씨
인터뷰 중인 윤정화(20,읍 문정리)씨

“뭐가 사랑이었는데?”

한 번도 뱉어낸 적 없지만 종종 속으로 중얼거리던 말이다. 그들은 고작 며칠, 내가 그들의 머릿속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고백을 해왔다. 가끔은 과연 몇 번의 생각 끝에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은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찌됐든 그들의 순간적인 감정에 내 시간이 잠시라도 소모된다는 것이 별로였다. 심지어 그들은 사랑을 핑계로 앞뒤없이 직진하지 않는가. 하지만 불만의 시간이 지나면 꼭 한 번씩 반성을 하게 되더라. 감히 타인의 사랑을 판단하고 있는 걸까? 생각이 너무 많나? 내가 정의하는 ‘사랑’이 뭐길래? 생각이 많아질 때 즈음 인터뷰로 만난 정화씨의 말이 마음에 꽂혔다.

■ “내 감정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윤정화(20, 읍 문정리)씨는 고백을 한 쪽이었다. 하지만 고백을 하기 한 달 전부터 자신의 마음을 거듭 부정 했다. ‘사랑’이 아닌 다른 단어로는 도통 설명이 안되는 마음을 붙들고 씨름을 한 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아닌지를 스스로에게 먼저 증명하기 위해, 그는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사랑이 맞아?’

사랑이 아니더라도 모든 감정에 있어서 그는 “감정을 인정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씩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아 조용한 핸드폰을 보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애매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외로움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의 주변 지인들은 그에게 “외로워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그는 섣불리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정말 외로움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들이 뒤섞인 건지, 최대한 자세히 확인해보는 것이다. 확인하는 과정은 꽤나 힘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서는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쓰곤 했다.

“제가 sns 비공개 계정이 있는데요, 거기에 글을 주저리 주저리 쓰곤 해요. 실제 감정보다 더 쿨한 느낌으로 글을 써요. 글은 굉장히 쿨해보이지만 사실은 눈물을 흘리면서 쓰는 거죠 하하. 그렇게 글을 쓰고 나면 감정이 배출되는 것 같고, 생각이 정리돼서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 사랑을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  
고민해온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한순간에 사랑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는 지인들에게 짝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문득 사랑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 후로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상대에게 조금씩 마음을 표현해 나갔다. 그는 속으로 감정을 확인하는 시간들이 충분히 있었기에, 확신이 드는 순간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감정이든,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힘들지만 분명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랑이라는 확신이 들었음에도 비공개sns 계정에는 여전히 글이 올라갔다. 자신의 마음을 확인해도 상대의 마음을 모르니, 그 혼란스러움을 글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혹시라도 그 애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글을 썼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 글을 읽고 ‘혹시 이 글이 나를 향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해주길 바랐다고 했다.  

■ 쟤는 날 좋아하지 않나 봐

“솔직히 진짜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 관계가 망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마음을 표현해도 알아주지 않는 상대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해도 해결되지 않았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둘이 평소처럼 대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제가 sns에 올린 글을 읽었는지 저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 때 ‘아 얘는 날 좋아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상대의 질문이 어떤 의도인지 지는 모르지만, 모든 게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기란 힘들었다. 그래도 그 생각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예의 있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 왠지 지금 말해야 할 것만 같다  

1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왔고, 연락도 계속 하는 사이였다. 같은 반이라 매일같이 봐도 연락을 거르지는 않았다. 평소처럼 연락 하던 중, 어쩌다 새로운 대화가 오고 갔다.

“귀여워!”

귀엽다는 말이 큰 칭찬은 아니었지만 그는 나름대로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귀여워서 귀엽다고 말한 것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칭찬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답장이 왔다.

“그거 좋아하는 사람한테 하는 말 아니야?”

그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답장을 해야할 지 몰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지금 말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수많은 생각들을 접어두고 마음 가는 대로 답장을 보냈다. 그는 “이미 속으로 고민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행동은 확실한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확실히 알게 됐기 때문에, 그 순간 고백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맞아 나 너 좋아해!”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곤 했지만, 그 말만큼은 장난으로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 “그렇게 대화가 끝났어요. 엄청 애매하게요”

좋아한다는 말 다음에 어떠한 말도 오고가지 않았다. 그 애매한 상황에서 그는 저녁에 전화를 걸겠다고 말했다. 상황이 애매하니 확실한 결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녁이 됐을 때, 전화를 걸었다.

매일 듣는 목소리가 그날따라 너무 어색했지만, 그는 용기를 내서 “너만 괜찮다면 사귀자”고 말했다. 당장 답을 하지 않고,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상대의 말에 다시 한 번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둘이 만나기로 한 날까지의 기간을 ‘고백 보류 기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고백 보류 기간’이 끝나던 날, 이들은 사귀기로 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이제 이들은 대학에 간다.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원하던 대학을 가서 만족한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줄 곳 과학 관련 책들을 읽어왔을 만큼 과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충남대학교 생물과학과를 지원했고, 합격했다.

대학에 가서 하고싶은 것들이나, 목표는 없다. 그는 스스로를 닥치면 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하며, 뭐든 ‘닥치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많이 사귀어보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잠깐만 생각 좀 해볼게요”라고 말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 행복하고 싶다는 건 지금 그러지 않다는 뜻 이잖아요. 근데 행복은 엄청 큰 감정이고, 오래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건, 행복한 삶이 아니라 편안한 삶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모두가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하기 보다, 편안한 감정들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저도 그렇게 못살고 있어요. 감정기복이 심하거든요. 하하”

그는 인터뷰에서 “감정을 눌러가며 글을 쓴다”고 말했다. 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를 확인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자기 자신은 물론, 내 감정을 전달 받을 상대를 위해서도 필요했다.

사랑을 포함한 모든 감정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늘 누군가와 주고 받는 것이기에. 그의 행동에는 오랜 고민이 묻어있었다. 그래서 인터뷰 내내 그의 행동은 당당하면서도 예의 있었다. 그리고 상대를 사랑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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