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상주단체 해보마 소속 박득환 배우,
옥천에서의 2년을 말하다.

2년간 옥천에서 옥천주민들에게 연기를 알려주던 박득환 배우.

‘일상의 소중함’. 흔한 말이라도 마음에 제대로 와 닿기란 쉽지 않다. 마음에 한번 닿는다 한들 그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살 수 있을까. 바쁘게 살다 까마득하게 잊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옥천에 온 지 2년만에 오래전 다짐을 다시 떠올려냈다. 그 다짐을 안고 새로운 꿈도 갖게 됐다. 옥천에서 생긴 꿈을 옥천에서 이룰 거라며 웃어 보이던 그였다.  

■ 마음을 따르다보니 옥천에 오게 됐다

박득환(32, 서울)배우는 배우이자 연기 선생님으로 2년간 옥천에서 상주했다. 옥천에 오기 전에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졸업 후 서울예술공연고등학교에서 연기 교사로 근무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뿌듯했던 적도 많지만 설명 못할 상실감은 늘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배우로서 작품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커질 무렵 아무 대책 없이 일을 관뒀다. 마침 작품을 같이 해보자는 대학 동기의 제안이 들어왔다. 흔쾌히 수락하고는 작품활동을 하다, 옥천상주단체 단원이 되어 옥천에서 활동하게 됐다.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움직이다 어느새 옥천에 온 것이었다. 

■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에게 옥천은 신기한 곳이었다. 그는 “옥천에 처음 왔을 때, 옥천은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도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옥천의 첫인상은 2년간 상주하며 점차 근거 있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현수막에는 문화공연이 늘 걸려있었고, 공연을 올릴 때마다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군민연극처럼 문화예술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함께 무대를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인상깊었다. 그는 옥천에서 2년간 7개의 무대를 올렸다. 그 중 2번은 연극에 관심있는 옥천주민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했다. 연기를 배워본 적 없는 옥천주민들에게 연기를 알려주고, 동시에 배우로 무대에 섰다. 

■ 옥천인들과 함께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가 변화되고 있음을 느낄 때, 마음은 벅차 오른다. 변화되는 걸 도와주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군민배우들이 자신이 알려준 것들을 기억하고 연기에 적용할 때, 그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1부터 10까지의 크기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7이상의 소리를 질러본 사람은 드물 거라고 생각해요. 일상에서는 자기 자신을 깰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배우는 무대 위에 서야하기 때문에 자신을 깨야 하는 상황이 많아요. 제가 가르쳤던 분들은 모두 해내 주셨어요. 그 어려운 걸 해내 주니, 너무 좋았어요”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군민배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전공자가 아니기에 한번에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옥천에서 군민배우들과 무대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다시, 옥천으로 
옥천에서 마지막으로 올린 작품, <우리읍내>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그는 이 대사를 듣고 오랜 시간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금보다도 훨씬 젊었던 시절, 그는 연극 <우리읍내>를 정말 좋아했다. 작품이 주는 따뜻함이 뻔해 보였던 일상에 가치를 심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절 그는 일상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스치듯 지나친 세월 속에서 그 다짐에는 먼지가 쌓여갔다. 

잊혀진 다짐이 기억난 이유는 오로지 대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옥천에서 7개의 공연을 서 왔고, 관객으로 때로는 팀원으로 수많은 옥천주민들을 만나왔다. 단골집이 생길 정도로 식당들을 많이도 찾아 다녔다. 옥천에서의 시간 동안 그는 전부 깨어 있었다. 그토록 하고싶은 연기를 했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소중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새로운 꿈도 생겼다. 다시 옥천에서, 옥천주민들과 함께 더 끈끈하고 멋진 무대를 만들겠다는 꿈이었다. 그리고 그 날을 위해, 꾸준히 연기하며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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