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리로 향하는 굴다리를 지나면, 붕어빵 장수는 추억을 굽는다
올해로 7년 가화리서 붕어빵을 굽다
김이 모락모락! 팥, 슈크림으로 배를 가득 채운 붕어빵과 펄펄 끓은 어묵 맛이 일품
“내가 여기 살지는 않지만 가화리는 이미 고향과도 같은 곳”

멀리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오던 겨울이 이제는 추운 바람을 한아름 이끌어 켜켜이 쌓인 옷깃을 파고든다. 거세게 불어닥치는 한기가 참으로 매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만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 때문인지, 혹은 ‘포근함’ 때문인지 우리는 종종 춥디추운 겨울의 매서움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날이 추워지면 길가에는 ‘별미’들이 등장한다. 길거리서 한두 개씩 사 먹던 ‘붕어빵’, 갓 튀겨진 ‘강냉이’ 한 줌과 따듯한 어묵 한 꼬치는 겨울철이면 생각나는 최고의 별미요, 겨울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맛’이다.
그러나 요즘은, 기다림과는 별개로 거리 곳곳을 둘러봐도 겨울의 별미인 붕어빵과 강냉이를 비롯한 ‘뻥튀기’로 찾아보기가 참으로 힘들다. 추운 날, 하루 온종일 신경을 쏟으며 서있어야 하는 고된 노고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찾는 이들이 없어서 그런지…요즘은 그러한 추억들이 우리의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사그라드는 길거리 별미들에 대한 추억의 끈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겨울이 되면 거리로 향해, 우리들에게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추억을 굽는다.

하루 온종일 자리를 지키느라 힘들 법도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사진:박진희 인턴기자)
하루 온종일 자리를 지키느라 힘들 법도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사진:박진희 인턴기자)

■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가화리의 붕어빵 장수

“사장님 팥 붕어빵 2천원 어치만 주세요! 슈크림도 몇 개 채워주세요!”

젊은 장정 셋이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다시금 발길을 돌려 붕어빵 가게를 찾았다. 그들은 연거푸 “이야 맛있네”, “겨울은 역시 붕어빵이지”, “야! 어묵도 하나 먹을까?”라며, 너도 나도 붕어빵과 어묵꼬치를 집어 들었다. 하루 온종일 서있는 와중에 힘들 법도 하나, 그는 맛있게 먹는 세 장정들을 향해 “너무 고마워요”, “국물도 좀 퍼서 마셔요!”라며 미소를 띠었다. 

가화리를 향하는 굴다리를 지나, 마을회관을 향하는 오른쪽으로 조금만 발걸음을 향하면 가화리 마을 비석 바로 옆, ‘낭만 참 잉어빵’이라는 주홍빛 붕어빵 가게가 눈을 끈다. 방금 구워낸 붕어빵과 펄펄 끓는 어묵 꼬치들이 지나가던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이내, 무언가에 홀린 듯 지갑을 열게 한다. 

그는 이미 가화리에서는 알아주는 붕어빵 장수다. 가화리서만 올해로 7년, 단골손님들도 이미 여럿이다. 지나가던 행인 아무개씨는 “겨울이 되면 꼭 이 집을 찾아 붕어빵을 산다”며 “나만큼 오래된 단골도 없고, 이 집만큼 맛있는 집도 드물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그는 말없이 웃음을 띨 뿐이다.

하지만 해맑은 미소와는 별개로 노고도 크다. 

“왜 안 힘들겠어요. 한 번 나오면 쉬지도 못하고 매일 붕어빵을 굽느라 힘들어요. 아침부터 나와 저녁까지 서서 붕어빵을 굽다가 집에 들어가면 바로 잠이 들 정도니까…”

고향이 어디고, 사는 곳이 어디인지는 밝히고 싶지 않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서 조금은 멀리 사는데 고향은 여기가 아니어도 여기 가화리를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요.”
 

■ 차디찬 겨울, 추위가 거세게 

몰아치지만 그래도 그것은 삶이다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는 안 할 만큼 번다는 그. 하지만 어찌 부족하지 않으랴, 하루를 열심히 벌어도 가스비, 재료비 등 이것저것 빼면 남는 것도 얼마 없다. 그러나 어쩌겠나 집에서 본인을 기다리는 가족을 생각하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벌이다. 하루에 만드는 붕어빵은 약 200 여개, 그 정도면 장사가 잘 되는 편이다. 잘 되는 날이 있다면 하루 온종일 서 있어도 아무도 찾지 않는 날도 종종 있다. 혹여나 그런 날이 있다면 바빠서 팔이 떨어질 것같이 바쁜 게 훨씬 낫다.

처음 이 길에 나섰을 때 어찌 부끄럽지 않았겠는가. 참고 견디었다.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7살 손녀딸, 치매로 고생하고 있는 남편,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 아들을 생각하면 온몸이 부서져 내릴 만큼 힘이 들어도 일을 하러 나와야 한다. 사실 처음에 붕어빵 장사를 위해 거리로 나온다고 했을 때 만류하는 이들도 없었다. 가족이라고 어찌 만류하겠나, “내가 우리 집의 가장인데 뭐라도 해야 먹고살지…그게 아니고서는 힘들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에게 이 붕어빵 가게는 생계의 기둥이요, 가장으로서의 책임이다. 

그는 “여기가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겠나? 삶의 무게를 짊어진 공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루 온종일 추위와 한 판 승부를 벌이면서 바람이 거세게 불기라도 하는 날에는 가게가 다 날아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찾아드는 손님들의 ‘맛있다’, ‘이 집이 최고다’, ‘겨울에는 역시 붕어빵이다’ 몇 마디를 들으면 힘이 나기도 했다. 코흘리개 아이들이 지나가다 붕어빵 사 먹는 모습, 온종일 집에 있다가 마실을 나와 붕어빵 몇 개 챙겨가는 어르신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뜨거운 어묵꼬치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청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 추운 겨울, 그는 감사한 이들을 위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추억을 굽는다

“얼마 전에는 바람이 세게 불어서 천장이 다 날아갔어요. 그때는 저기 지엘아파트 근처에서 장사를 했었는데 다 날아가서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참으로 고마웠죠. 다들 자기 일처럼 와서 도와주는 것이 어찌 그리 고맙던지…”

그는 한동안 감사한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거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가게가 다 날아갈 뻔했을 때에도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준 주민들에게 참으로 감사했고, 신고가 들어와 장사를 못할 뻔했을 때, 내 일처럼 대신 화를 내주는 아무개씨가 있었고, 지금의 자리에서 걱정 없이 장사를 할 수 있게 도와준 정해영 이장도 그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가장 고마운 이들은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자리를 매번 찾아주는 손님들이다. 어쩌다 가게 문을 못 여는 날이 있으면 서운해 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먹고사는 일이 참으로 급급한 와중에도 찾아오는 이들에게 “찾아줘서 고맙고 맛있게 드시라”는 말을 꼭 전하는 그. 그가 굽는 붕어빵은 점점 추워지는 이 겨울, 켜켜이 쌓인 옷깃을 파고드는 추위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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