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6일, ‘장롱 속 오래된 미래’ 발표회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종옥씨
젊은 날부터 꿈꿔오던 ‘멋’을 말하다
“여전히 꿈이 있고, 뜻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청춘이겠지요”

 

■ 난춘(暖春)

젊은 날부터 옷이 참 좋았다. 크게 보면 ‘멋’이라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누구나 그렇듯 젊은 시절은 참으로 힘들게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멋’을 부리며 사는 것에 대한 동경이 유난히 컸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본 빠알간 잠바가 어찌 그리 곱던지… 아마 그것이 ‘멋’을 동경하기 시작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뜻과는 다르게 먹고사는 것이 급한 탓에 젊을 적에는 하고 싶은 것들은 가슴 깊이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았다. 그러니 흐르는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다. 

그간의 세월을 뒤돌아 보니 꽃이 피고 지듯, 젊은 날은 다 지나갔더라. 그것이 여태 미련으로 남아 나이 70. 그간 부려보지 못했던 멋을 제대로 한 번 부려보려 했다. 
누군가는 지나가며 “나이를 그렇게 먹고 이제는 점잖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멋을 부리고 사는 데에 있어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이렇게 늙어왔어도 여전히 오늘을 ‘청춘’이라 부르고 싶거늘.

■ ‘멋’을 꿈꾸던 박종옥씨, 이제는 모델이 되다

‘청바지’, ‘청재킷’ 등 ‘진(jeans)’을 가장 좋아한다는 박종옥(70,청산면 교평리)씨. 최근에는 ‘옥천공동체허브 누구나’에서 진행한 ‘장롱 속 오래된 미래’ 발표회에도 참여했다. ‘장롱 속 오래된 미래’는 50~70대 연령층을 대상으로 본인의 추억이 담긴 옷을 직접 리폼하고 그것을 입어보며 화보를 찍어 자서전으로 남기는 프로젝트였다. 

박종옥씨는 89년 남편과 처음으로 떠난 동남아시아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입었던 청재킷을 리폼했다. 리폼은 누군가에게 손을 빌렸지만 디자인은 오로지 박종옥씨의 아이디어였다. 

사실 처음부터 시니어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길을 지나다 플래카드가 눈에 띄어 곧장 전화 통화로 일사천리로 신청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지난 6월부터 모임을 시작으로 1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박종옥씨는 자신만의 작품과 사진을 남겼다. 

“평소에도 옷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옷이 너무 좋아서 양재점을 차리고 싶어서 양재학원을 다니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제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제게는 참여 자체만으로도 큰 도전이었고 너무나 행복했어요”

■ 인생살이가 산 넘어 산이더라

박종옥씨는 청주가 고향이다. 1975년에 결혼을 하고 2년간 보은에서 살다 남편의 고향인 청산에 1977년부터 터를 잡았다. 그리고 청산에서 농기계 대리점을 운영했다. 수완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위기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찾아왔다. 본의 아니게 남편의 막내 여동생에게 보증을 섰던 것이다. 막내 여동생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자 차압이 들어왔다. 어찌하겠나. 다 갚는 수밖에. 

남편과 박종옥씨는 채무를 이행하고자 보은 마로면 방면에 약 5천 평 가량의 평야를 임대해 인삼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10년간의 고군분투를 시작으로 2010년, 빚을 모두 청산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년 뒤, 남편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유난히 야속한 해였다. 남편이 떠남과 동시에 태풍이 거세게 몰아부쳤다. 그간 애지중지 키워온 인삼밭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찌 그리 서럽던지… 어느 날에는 밭에 나와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길 한가운데서 펑펑 울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하겠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것을.

■ 힘겹게 살아온 세월에 ‘멋’은 ‘삶’의 이유가 됐다.

“멋이라는 것은 저에게 위로였습니다. 힘들게 살아오던 지난날에 그간 포기 해야했던 나의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삶의 이유가 된 것 같아요”

남편을 떠나보내고 10년. 박종옥씨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먹고사는 데에 급급하다 보니 그간 꿈꾸던 멋을 잊고 산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나이 70에 박종옥씨는 그간 꿈꾸던 멋을 부려보며 살고 싶었다. 그러다 알게된 것이 바로 ‘장롱 속 오래된 미래 발표회’였다. 디자인 수업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보니 언젠가는 큰 곳으로 나가 ‘자신의 이름을 낸 양재점’을 차려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리고 그것이 70이라는 나이를 먹은 지금에 와서는 ‘꿈’이 됐다. 

꿈은 젊은이들만이 꾸는 것이 아니다. 꿈은 기회다. 그리고 “기회는 자신만의 때가 있는 법”이라 박종옥씨는 말한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박종옥씨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못다 핀 청춘에 대한 갈망이 됐다.

■ 남들이 뭐라던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아니 무슨 배우야?”, “탤런트도 아니고 왜 저러나?”, “패션쇼를 하나?”라며 말이다. 사실 그럴 때면 상처도 많이 받았다. 젊어서부터 갈망해온 ‘멋’이라는 것이 남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 같아 서럽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대꾸를 하는 것이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뒤에서 하는 말에 신경 쓰지 않고 내가 그동안 해 온 것들에 대해 떳떳하면 그뿐이다. 

박종옥씨는 말한다. “남들이 현재에 순응하고 살 때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자부심”이라고.

젊은 사람이든, 나이를 먹은 사람이든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젊은 나이에도 도전을 마다하는 이들은 수두룩 하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이 나이에 무슨 도전이야!”라며 기회를 뿌리치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얼마나 기회가 있을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찾아온 기회에 망설임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되고 의심은 이내 포기가 된다. 그리고 포기는 언젠가 후회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박종자씨는 말한다. “차라리 해보고 나중에 후회를 하는 것이 나아요”라고.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있을 이들에게 전한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꿈이 있고, 뜻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청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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