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면사무소 맞은편에 위치한 간판 없는 구멍가게
어머니부터 아들까지 2대째, 60년간 한 자릴 지켜오고 있는 ‘류집 슈퍼’
동네 구멍가게는 소꿉 친구들의 낙이요, 주민들의 마실터

전태형(사진 왼쪽)씨와 함께 호형호제 한다는 ‘은아아빠’ ‘고 서방’이라 소개한 또다른 이는 사진을 찍는것이 부끄럽다고
전태형(사진 왼쪽)씨와 함께 호형호제 한다는 ‘은아아빠’ ‘고 서방’이라 소개한 또다른 이는 사진을 찍는것이 부끄럽다고

남자 둘이 영화를 틀어 놓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 안쪽 작은 방에서는 다른 남자가 낮잠을 자고 있는 듯 했다.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들도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이상이 태반이다. 평화로운 오후, 늘 그래왔듯 오늘도 어제처럼 이 곳에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휴식도 취한다. 

‘류집 슈퍼’의 내부
‘류집 슈퍼’의 내부

■ “이곳은 우리의 마실터입니다”

자신들을 ‘고 서방’과 ‘은아 아빠’라고 소개한 이들은 이 가게 최고 단골들이다. 그리고 가게 사장인 전태형(56,청성면 산계리)씨와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사장은 “나보다 고서방이 우리 엄마랑 더 친해요”라며 허허 웃었다. 이들은 자주 슈퍼를 찾는다. 일을 마치거나 일을 하던 중 잠시 이곳에 와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눈다. 

“여기가 우리한테 마실터죠. 저 아랫집 청성슈퍼에는 어머님들이 많이 가고 옆 집에는 우리보다 연세가 조금 더 있으신 어르신들이 가요. 우리 같은 머시마들은 주인장이 머시마인 여기를 많이 오죠. 요즘은 이런 구멍가게 말고도 없어지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요 근처에 양조장도 있었는데 그것도 없어져서 아쉽네”

‘류집 슈퍼’의 내부
‘류집 슈퍼’의 내부

■ 잘되든 못되든 60년간 한자리에서

청성면사무소 맞은편에는 오래된 두 개의 구멍가게가 있다. 두 슈퍼 모두 간판이 없다. 면사무소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쪽이 ‘금잔디 슈퍼’고 왼쪽에 있는 곳이 ‘류집 슈퍼’다. 류집 슈퍼는 어머니가 40년도 즈음부터 시작해 2대째 운영되고 있다. 장장 60년이라는 세월, 아들인 전태형씨가 이어받아 한자리를 지켜오는 중이다. 장사가 잘되나 안되나를 따지기 보단, 그저 이 자리와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 의미를 두고 문을 여는 것이다. 40년도 즈음부터 슈퍼의 문을 열었으니 지금의 슈퍼는 그간 청성의 역사를 담아온 역사 바가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5천원으로 물건을 떼 오면 “이걸 언제 다 파나?”라고 걱정하던 때도 있었다. 그때와 지금의 화폐가치가 크게 다르니, 그만큼 오랜 시간 문을 연 것이다. 

슈퍼 앞에 놓인 오래된 뽑기 기계
슈퍼 앞에 놓인 오래된 뽑기 기계

■ 어머니를 따라 1년 만에 다시 문을 열다 

전씨는 청성초, 청산중, 청산고를 나온 청성의 토박이다. 그러다 다들 그렇듯 고향을 떠났다. 어머니로부터 슈퍼를 이어받기 전에는 경기도 일산에 살았고 의류 계통 일에 몸을 담았다. 그런 그가 20여 년 옥천을 떠나 살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까닭은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와 함께 있기 위함이었다. 

이곳 류집 슈퍼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슈퍼가 된 것은 오랜 기간뿐만은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오랜 세월 청성면 일대 관공서에 근무하는 이들의 점심을 책임졌던 것이 크다. 온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의 밥을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전씨의 말이었다.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서 한 1년은 문을 못 열었어요. 어머니도 모실 겸 다시 문을 열었죠. 장사가 당연히 쉽지는 않아요. 일단 청성에 사람들도 많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항상 문은 열어요. 농번기가 되면 일하다가 와서 목도 축이고 막걸리도 한 잔 하시라고요. 사실 여기는 슈퍼도 슈퍼인데 동네 마실터 같은 곳이죠”

동네 구멍가게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 곳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앉았다 가기도 하고, 막걸리 한 잔에 목을 축이기도 한다. 그런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사라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있어 좋다”고 말이다. 당연하게 생각되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며 세상의 변화로, 저마다의 사정으로 자리를 뜨곤 한다. 그래도 청성면사무소 앞 구멍가게들은 영원할 것처럼 예전 모습 그대로를 하고 있다. 고집 있게 흐름을 거스른 것이 까닭이 아니라, 자신들이 중요하다 여기는 것들을 따르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하루 가게를 방문하는 한 두명의 단골들에게 의미를 두고, 해가 뜨면 문을 열고, 해가 지면 파하듯 말이다.

주소 : 청성면 산계길 50
영업시간 : 해 뜰때~해 질때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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