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 자기돌봄을 위한 ‘나를 향한 미소’ 프로그램
노인장애장애인 복지관에서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12시까지 열려

'나를 향한 미소' 프로그램 강사를 맡은 충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정은 교수가 수강생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나를 향한 미소' 프로그램 강사를 맡은 충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정은 교수가 수강생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돌봄’이란? 말 그대로 ‘자기를 돌보는 것’이다. 이를 테면 적절한 수면을 취하고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는 것. 건강한 음식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 이처럼 생각보다 쉽고, 간단하고,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이런 일들이 당연하지 않다. 어려운 시절을 겪어 온 어르신들에게는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더 익숙하고 당연하다. 가장이니까, 엄마니까, 장남이니까, 장녀이니까. ‘나를 향한 미소’ 프로그램 강사를 맡고 있는 충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정은 교수는 말한다. “자기돌봄은 이기적이거나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자신을 소모하는 것도 아니죠. 자신을 친절하고 사려 깊게 대하는 일입니다.”

지난 12일부터 노인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 별관 3층 대강당에서는 노년기 자기 돌봄 프로그램 ‘나를 향한 미소’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12시까지 진행된다. 8월과 9월, 두 달 동안 진행된 동년배 상담사 교육에서 ‘셀프케어’ 과목은 내내 인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 돌봄 프로그램 ‘나를 향한 미소’를 따로 기획했다. 원래는 10명 내외의 인원을 모집해 복지관 202호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예상 모집인원을 훌쩍 넘긴 16명이 등록을 신청했다. 복지관은 강의실을 별관 대강당으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덕분에 신청자 전원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지난 26일에는 총 15명의 수강생들이 참여했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 김 교수는 가벼운 스트레칭을 통해 분위기를 푼다. 오늘은 조창열(76)씨가 앞으로 나와 시범을 보였다. “기대지 말고 등을 꼿꼿이 세워야 해요. 그리고 목을 눌러주면서 숨을 들이 쉬어요. 10초. 후, 내뱉고. 다른 생각은 하지 마세요. ‘지금 목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만 생각하세요.”

나를 향한 미소 강의가 진행 중이다.
나를 향한 미소 강의가 진행 중이다.

스트레칭이 끝나자 김 교수는 강의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수강생들은 ‘사회복지사 Self-Care: A부터 Z까지’라는 교재로 공부 중이다. A부터 Z까지라서 내용이 많지만 중요한 건 역시 ABC다, 지난주에는 자기인식(Awareness)에 대해서 공부했고, 이번 주에는 균형(Balance)에 대해서 배운다. 다음 주는 관계 맺기(Connection)다. “잠깐 복습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자기 자비’에 대해서 배웠었는데요. 초점을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족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며, ‘나는 건강하고 능력 있는 돌봄 전문가다’라는 마인드를 가지는 게 중요해요.”

김 교수는 수강생들에게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며 물었다. “이 그림이 뭘까요?” 수강생들이 “저글링”이라고 대답했다. 누군가는 “오재미로 해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몇 개까지 해봤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세 개까지”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이 공을 인생의 숙제, 부담이라고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누구에게나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말 못할 걱정과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들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회전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야 한다. “교재의 저자는 대학교 2학년 때 남편을 하늘로 보냈습니다. 당시 아이도 넷씩이나 있었어요. 당장 학업도 해야 하고, 애들도 키워야 하고, 돈도 벌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글링처럼 모든 공을 띄워놓고 돌려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죠.”

김 교수는 공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쥐고 있는 모든 공을 다 돌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균형감이 깨졌다고 얘기할 때 어떤 생각을 많이 할까요? 엄마로서의 역할, 직장인으로서의 역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해요.” 

완벽함, 그것은 신화다. 자기돌봄 수업은 수강생들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실패자나 낙오자라고 말할 순 없다고. 우리는 넘어지는 것에 대해 다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며,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태와 감정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의 파도가 일어 바위에 부딪히면 그 파도는 산산이 부서진다. 우리는 파도가 부서지기 전, 확 몰아쳤을 때 올라오는 감정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포착해야 한다. 단순히 화, 스트레스라고 퉁 치지 말고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왜 이런 감정이 들었는지 천천히 생각해봐야 한다.

수강생 민완식씨가 자신이 쓴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수강생 민완식씨가 자신이 쓴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수강생 민완식(78)씨에게 질문했다.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많이 있으셨겠지만 그 중 한 사례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민 씨는 “난 여기 식구가 없응께 한 번 얘기를 해 보겠다”고 답했다. 한 수강생이 “일러줄 거야!”라고 외쳤지만 민 씨는 담담히 발표를 이어갔다. “주말 저녁에 얘기를 하는데, 이럴 때 한 번만 얘기를 들으면 괜찮아요. 근데 식구가 줄잡아 계속 따라다니면서 얘기(잔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하는 과수원에 가서 일을 합니다. 일을 하면서 생각을 엄청 많이 해요. ‘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건가’하고. 그러면서 나를 달래는 거죠. 그러면 생각도 정리되고 작업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가족과 친구가 있다 해도, 결국은 ‘내’가 ‘나’를 위로해주거나 달래줄 수 있어야 한다. 김 교수는 “가족과 친구도 각자의 방식이 있고, 이 방식이 서로 다른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의 위로로는 모든 걸 채울 수 없어요. 내 마음을 알고 스스로를 달래는 게 중요해요. 민 선생님처럼 농장이나 자연을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기에 옥천은 훌륭한 환경이죠.”

총 8회차로 기획된 이번 프로그램은 11월 30일이 마지막 수업이다. 김 교수는 수업 마지막 날 수강생들이 ‘스스로에게 주는 상장’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이름하여 ‘자기 돌봄 대상’. ‘토닥토닥, 나 참 열심히 살았다’라는 의미로 스스로에게 주는 상이다. 김 교수는 말한다. “상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나’지만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살아갈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에게 멋진 문구를 선물하는 겁니다. 몇 주 안 남았지만 단어를 선택하면서 내 삶을 되돌아 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그 방향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수업자료를 훑어보고 있는 수강생들.
수업자료를 훑어보고 있는 수강생들.

미래를 위한 계획,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점이다. “어르신들은 ‘이 나이 먹고 무슨 계획이야, 뭔 미래야’라고 말씀하곤 하세요. 하지만 ‘지금’이라는 자각이 되게 중요해요. 지금 이 순간의 다음 순간도 미래에요. 10년 뒤도 미래지만 1초 후도 미래에요. 그래서 미래를 위한 계획이 꼭 필요해요. 이 순간순간이 모두 미래니까요.”

맨 앞에서 노트 여러 권을 펼쳐놓고 열심히 필기 중인 수강생 김앙배(80)씨를 만났다. 그는 손 사례를 치며 “남들보다 열심히 한다고 앞에 앉은 게 아니다”라며 “이해도 잘 안 되고, 눈이 좀 안 좋아서 앞으로 왔다”고 말했다. “이곳에 참 잘 왔다 싶어요. 동년배 상담뿐만 아니라 일반 생활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한 번도 안 빠지고 계속 나오고 있어요.”

김 교수는 “나중에 수업 사진을 받으려고 한다. 평균연령 70세 어르신들이 작은 글씨 보려고 돋보기 써가며 열심히 메모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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