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경로당·마을회관 찾아가며 키오스크·스마트폰 교육 진행
교육 받은 어르신들, “와서 이렇게 하는 게 얼마나 좋아”
강사·서포터즈 군 내 홍보 부족해 사기꾼으로 오해 받기도

디지털배움터 에듀버스가 신기 2경로당 앞 금구어린이공원에 도착했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키오스크 교육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모습
디지털배움터 에듀버스가 신기 2경로당 앞 금구어린이공원에 도착했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키오스크 교육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모습

“안녕하세요 아버님~ 저희 디지털배움터에서 나왔어요. 체험 한 번 해보고 가세요.”
지난 7일 신기2경로당 앞 금구1어린이공원에서 파란 조끼를 입은 디지털배움터 서포터즈들이 이동식 키오스크를 설치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깐 체험해보고 가시라’는 서포터즈의 권유에 어린이공원 청소를 나온 옥천시니어클럽 회원 오재호(80)씨가 키오스크 앞에 앉았다.

“아버님, 요새는 이렇게 사람을 안 쓰고 기계를 갖다놓고 주문을 받아요. 읍내 아이스크림 가게만 가도 다 이런 거 갖다 놨거든요. 그래서 나라에서 아버님들 체험해 보게 도와드리라고 해서 저희가 왔어요.”

오 씨는 키오스크를 더듬으며 한 글자 한 글자 글씨를 따라 읽었다. “아버님, ‘주문하기’라고 되어있죠? 한 번 눌러보시겠어요?” 오 씨는 서포터즈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눌러보라”고 했다. 서포터즈는 당황하지 않고 “아버님이 직접 누르셔야 된다”고 말했다. 오 씨는 잠깐 고민하더니 ‘메뉴’란을 눌렀다. 그러자 곰탕, 된장찌개, 김치찌개, 잡채 등의 음식 메뉴가 사진과 함께 나타났다. “음식이 진짜 나오지는 않아요. 그냥 체험해보시는 거예요. 드시고 싶으신 거 한 번 골라보세요.” 오 씨가 곰탕을 누르자 개수를 선택하라는 알림이 떴다. “어머님 것도 시켜드려야지. 자, 여기 더하기 모양을 누르면 두 개가 돼요.” 그러자 오 씨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그러면 두 그릇이 나온다 이거지?” 오 씨는 ‘매장에서 식사하기’를 누른 후 ‘160번’이라는 대기 번호가 적힌 영수증을 받아들었다. “이러면 곰탕 두 개 시키신 거예요. 사람 없이 주문이 들어간 거예요.” 오 씨는 “앞으론 이렇게 하면 되겠다”며 옆에 세워뒀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자리를 떠났다. 

같은 체험을 하고 번호표를 받아든 임범례(81, 읍 장야리)씨도 “해보니까 알겠다”고 말했다. “여기 와서 이렇게 하는 게 얼마나 좋아. 글씨를 누르라고 해서 눌렀는데 아주 잘 됐어요. 재밌어요.”  

금구어린이공원 화장실 청소를 하러 왔다는 진영희(74, 군북면 소정리)씨는 서포터즈의 안내를 빠르게 이해했다. “아 이제 알아들었어.” 능숙하게 음료란에서 사이다를 고르고 과일 메뉴를 훑었다. 진 씨는 누구보다 빠르게 영수증을 받아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해보니까 다 알겠는데 뭐. 이런 건 실컷 하지. 알면 쉬워.” 음식점에 사람 대신 기계만 있어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진 씨는 “할 수 있다. 어지간한 건 다 한다”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 국가 주관 사업이지만 군 내 홍보는 부족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0년 부터 시행한 디지털배움터는 국민 누구나 디지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전국에 교육 장소를 마련해 운영하는 사업이다. 그 중 에듀버스는 교육장까지 나오기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직접 마을회관, 경로당 등을 찾아가며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등의 디지털 기기 교육을 진행한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며 매일 다른 마을을 방문한다.

하지만 국가 주관 사업임에도 2년째 군 내에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강사와 서포터즈가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디지털배움터 서포터즈 박선화 씨는 “몇몇 분들은 아예 우리를 사기꾼으로 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방금 전에도 안 한다고 화를 내시고 가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일단 교육생으로 등록을 하려면 이름과 생년월일이 필요하고, 코로나 때문에 전화번호도 필요하다. 주민번호 뒷자리는 묻지 않고 제공된 정보는 한 달 뒤에 폐기되지만, 어르신들은 여전히 ‘핸드폰을 팔러 온 것’으로 오해하고 차갑게 돌아선다. 

“어제 식당에 갔는데 어르신 두 분이 못 들어가고 계신 거예요. QR코드 인증을 할 줄 몰라서요. 그냥 장부에 쓰셔도 된다고 알려드렸더니 ‘이름을 왜 쓰라고 하느냐’며 화를 내시더라고요. 제가 만약 이 조끼(디지털배움터)를 입었다면 10분밖에 안 걸리니까 알려드리겠다고 했겠죠. 하지만 당장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핸드폰을 주겠어요? 등록하려면 주민번호도 필요한데 말이에요. 그럴 때 제일 안타까워요.”

2, 3년 전부터 옥천에서도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가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박 씨는 “휴게소에 가면 죄다 키오스크다. 저만 해도 읍내 아이스크림 가게에 안 간다”며 “앞으로는 돈이 있어도 주문할 줄 몰라서 못 사먹는 시대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점원한테 물어보면 ‘저쪽에서 주문하고 오세요’ 그러니까요. ‘틀리면 어떡하지’, ‘돈이 잘못 나가면 어떡하지’, ‘내가 원하는 거 못 사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박 씨도 서포터즈 교육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며 “틀리다 보면 주눅이 든다. 어르신들 마음을 백퍼센트 이해한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배워놓으시면 참 좋죠. 한 번 가지곤 안 돼요. 여러 번 반복 학습을 해야 해요. 홍보가 잘 돼서 어르신들이 먼저 ‘이것 좀 알려줘’라고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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