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체조를 하다 옥천여중으로 전학 온 김가람씨를 만나다.
“옥천에 와서 친구들이랑 노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요”

친구가 찍어준 가람씨의 사진

 

둠벙에 놀러온 가람씨(왼쪽 앞줄)와 가람씨 친구들
둠벙에 놀러온 가람씨(왼쪽 앞줄)와 가람씨 친구들

수업이 다 끝난 후 친구들과 함께 하교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일 수도 있지만, 김가람(16, 읍 죽향리) 씨에게는 10년 동안 바라왔던 로망이었다. 그는 10년 동안 기계체조를 전공했다. 오랫동안 하던 기계체조를 그만두고 16살이 된 지금, 처음으로 친구들과 운동이 아닌 소소한 대화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삼삼오오 모여 오늘 저녁은 뭘 먹을 건지, 어디 카페를 갈 건지, 오늘 수업 시간은 어땠는지 나누는 시간이 재밌다고 말한다.

그는 7살 때 접한 발레를 계기로 기계체조에 발을 담그게 됐다. 유연성이 좋은 그를 보고 선생님께서 추천한 것이다. 7살 때부터 16살까지 한 기계체조는 그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처음에는 마냥 재밌었다. 기술 개수가 많지도 않았고, 놀면서 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어릴 때, 초등학교 2, 3학년 때 했던 운동이 제일 재밌었어요. 그때는 혼나지도 않으니까요”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일까 그는 대전선화초등학교 시절에 딴 메달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칭찬만 하면 성장하지 못할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적절한 채찍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계체조는 기술 하나하나에 점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더 날카롭게 봐야 한다. 맨몸 운동이기 때문에 다칠 위험도 크다. 그는 평균대에서 발이 빠져 넘어지기도 하고 기술을 하다가 목으로 떨어진 적도 있다. 듣기만 해도 아픈 이야기였음에도 그는 “그래도 저는 유연해서 잘 다치지 않은 편이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대전체육중학교를 다니던 김가람 씨는 올해 8월25일 옥천여자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기계체조를 그만두면서 고향인 옥천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대전체중을 다녔을 시절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가 두 달 동안 폐쇄가 된 적이 있었다. 운동을 조금만 안 해도 몸이 쉽게 굳는 그에게 두 달은 큰 공백으로 다가왔다. “두 달을 쉬니까 몸이 아예 망가져 있었어요” 그와 동시에 코치 선생님과 다양한 것들의 복합적인 상황으로 운동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니 몸이 움직여지지도 않더라고요” 그가 받았을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운동을 그만두기까지 1년의 세월이 걸렸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 코치 선생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운동은 가족과 코치보다 김가람 씨에게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둔다는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그는 누구보다 수많은 고민을 했다. 오랜 시간 끝에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리 찢는 것은 너무 쉽다며 보여준 가람씨
다리 찢는 것은 너무 쉽다며 보여준 가람씨
기계체조 대회에서 이단 평행봉 종목을 하는 가람씨

운동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운동하면서 배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꾸준히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기계체조는 그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올해 도쿄올림픽을 통해 기계체조가 유명해졌다”며 “여서정 선수가 기계체조 도마에서 큰 성과를 이뤄낸 것을 보고 같이 뿌듯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여자 도마 시합장에서 여서정 선수와 양학선 선수를 본 적이 있다. 양학선 선수는 똑같은 기술을 써도 뭔가 다른 남자 선수와 확연하게 달랐고, 자신이 짐을 옮길 때 그가 도와줬다며 있었던 일화를 소개해주었다.

운동을 그만둔 것에 대해 그는 잘 모르겠다며 그나마 조금의 아쉬움이 있다면 대학이라고 답했다. 운동을 계속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지만 그는 대학보다 더 소중한 친구를 얻었다고 말했다. 가람씨는 대전체중을 다녔을 때 “같이 기계체조를 하는 또래 친구는 없었다”며 “전부 오빠나 남자 후배 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같은 반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었다. 서로 운동이 다르고 정규 수업시간과 방과 후 시간에도 각자의 운동을 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옥천여중으로 전학 오고 나서 수업이 끝나고 마라탕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카페를 가기도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친구가 제일 소중하다며 같이 온 친구들을 자랑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날에도 그는 친구 3명과 함께 둠벙 카페를 방문했다. 사진을 같이 찍자며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은 핸드폰 케이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투명 케이스에 친구들의 증명사진을 끼워놓은 것이다. 김가람 씨의 우정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부끄럽다며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자신의 마음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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